‘엄마 품처럼 포근’ 여행자들의 힐링캠프
길이 23km의 인레호수. 보이는 산이 깔로 트레킹이 끝나는 지점이다.
[일요신문] 인레호수 보트 선착장입니다. 여기도 겨울입니다. 바람이 불고 날씨가 쌀쌀합니다. 일년에 한두 번은 한국서 온 손님들과 이곳을 찾곤 합니다. 미얀마 중부사람들은 바다 대신 인레호수로 갑니다.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드넓은 호수를 가르며 끝없이 달립니다. 그간 엉킨 마음을 호수에 풀어놓는 여행입니다. 양곤에서는 고속버스로 10시간, 만달레이에서는 8시간이 걸립니다. 물론 항공도 있습니다.
인따족은 ‘물위의 밭’에서 수경재배를 한다.
제가 사는 도시에서는 한국 사람을 만나기 어렵지만 인레호숫가 마을 낭쉐에 오면 자주 마주칩니다. 그만큼 미얀마를 여행하는 이들에게 이곳은 바간과 더불어 꼭 찾는 힐링캠프입니다. 이곳은 ‘깔로 트레킹’으로도 유명합니다. 깔로는 독일인이 쓴 베스트셀러 소설의 무대로 고즈넉한 마을입니다. 여기서 산을 넘고 평원과 마을을 거쳐 인레호수로 내려오는 1박2일 코스입니다. 가이드가 동행하여 고산족 마을에서 하루를 쉬어가는 트레킹입니다. 황톳길, 파인트리, 순박한 아이들과 소떼, 장작을 지펴 만든 음식들, 유럽 배낭족들과의 만남 등. 소박하고 아늑한 전원을 걷는 트레킹입니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수상학교, 신발장, 수업 모습.
인레호수를 가르는 보트투어는 호수 위에서 사는 특별한 부족, 인따족의 삶을 보는 일정입니다. 나룻배 한 대당 20달러입니다. 한쪽 다리로 노를 저으며 망태기로 물고기를 잡는 어부, 잎담배 만드는 공방, 은세공과 직조품 공방들이 물 위에서 활기차게 일을 합니다. 그중에서도 꼭 봐야 할 것은 수경재배와 수상학교입니다. 대나무 부력으로 만든 ‘물 위의 밭’에서는 토마토와 야채들이 싱싱하게 자랍니다. 보트로 밭을 이리저리 끌어다 옮기기도 합니다. 수상학교에서는 초중고 아이들이 나룻배를 타고 와 공부를 합니다. 이렇게 물과 함께 사는 이 부족은 30만 명 가까이 됩니다.
은세공 공방(왼쪽)과 호수마을의 전기공사.
보트투어가 끝나는 오후에는 선착장 마을 낭쉐를 둘러봅니다. 바로 앞에는 레드 마운틴이 보입니다. 미얀마산 와인을 만드는 공장이 있습니다. 산중턱에 오르면 인레호수가 아스라이 내려다보입니다. 호숫가는 차나 오토바이로 돌 수 있도록 좁다란 길이 있습니다. 한 바퀴를 도는 데 거의 한나절이 걸립니다. 길이가 23km나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자전거 마니아들이 트레킹 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두워지면 낭쉐 시내에는 야간시장이 10시까지 열립니다. 아펙스 호텔 앞 공원입니다. 공예품들과 옥제품들, 그리고 샨주의 길거리 음식을 파는 포장마차가 불을 밝힙니다.
수경재배 밭 사이로 가는 투어.
이곳 인레호숫가는 유럽 배낭족들로 붐빕니다. 놀랍게도 아주 긴 여행일정을 소화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들은 어떤 마음으로 길을 떠났을까요. 여행하며 만나는 사람 중에는 슬픔을 안고 떠난 사람들도 있습니다. 라오스 중부 고원호수에서 만났던 프랑스인 실비아, 언젠가 이곳 호수에서 우리 일행과 만난 한국청년. 모두 실연의 아픔을 겪으며 긴 여행을 떠났던 것입니다. 여행은 그 아픔을 치유해주고 다시 용기를 내서 살 수 있게 해주는 걸까요. 그렇다고 믿고 싶습니다.
수상상점.
한국어학당에는 세린이라는 미얀마인 교사가 있습니다. 결혼해 아이가 둘입니다. 이곳 인레호수가 고향입니다. 수상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 도시로 나가 외대 한국어과를 졸업했습니다. 오늘 세린이 다닌 학교에 가봅니다. 그에게 요즘 아주 슬픈 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달에는 이곳 고향 호수로 휴가를 보냈습니다. 붉은 산과 바다 같은 호수, 뭉게구름과 웃음 짓는 아이들 속에서 슬픈 시가 생각납니다. 시인 나석중의 ‘호수의 연가’입니다.
나는 알고 있지요/세상의 눈물이란 눈물은 다 받아주어서/세상의 연인들 혼자 와 쓸쓸히 서성대는 것을
당신의 얼굴에 웃음 스치는 것 잠시 보았지만/나는 알고 있지요/당신이 지금 많이 아프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지요/언젠가 내가 당신에게 던진 물수제비가/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퉁퉁 튀어가는 것을(중략)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
레드 마운틴 와인공장에 온 여행자들. 멀리 인레호수가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