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올림픽 후원·UAE 출장 등 정부 현안 적극 협조 관계 개선 시도
지난 몇 달간 허 회장은 특별한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허 회장은 지난해 6월 방미 경제사절단에 참여하고 7월 문재인 대통령의 호프미팅에도 참석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 경제사절단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고 지난해 12월 방중 경제사절단에는 이름을 올렸지만 개인 사정으로 정택근 ㈜GS 부회장이 대신 참석했다.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허 회장의 움직임이 단연 눈에 띈다. 지난 8일 허 회장은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GS타워에서 칼둔 칼리파 알 무바라크 UAE 아부다비 행정청장을 약 30분간 만났다. 면담 후 허 회장은 UAE를 비롯한 중동 국가 출장길에 올랐다.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허 회장과 칼둔 청장의 만남은 여러 뒷말을 낳았다. 정부가 UAE와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GS를 연결고리로 활용한다는 것. GS 관계자는 “면담 내용이나 출장 일정에 대해서는 모두 비공개”라면서도 “겨우 30분 만나서 대단한 이야기를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조심스러워 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 사진공동취재단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으로서 허 회장에게 정부와의 관계 개선은 절실한 일이다. 문재인 정부는 각종 행사에서 전경련을 배제해 ‘전경련 패싱’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뿐만 아니라 삼성, 현대자동차, SK, LG 등 대기업이 전경련을 탈퇴하면서 전경련 회장으로서 허 회장의 위상이 약화된 것이 사실이다.
허 회장은 지난해 3월 ▲한국기업연합회(한기련)로 명칭 변경 ▲회장단 회의 폐지 ▲경영이사회 신설 ▲7본부를 1본부 2실로 축소 ▲연 2회 재무현황 공개 등 전경련 혁신안을 발표했다. 회장단 회의 폐지, 본부 축소 등 일부 혁신안은 이행했지만 명칭 변경은 정부 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의 정관 변경 승인이 필요하다.
전경련은 오는 2월 정기총회에서 명칭 변경안을 승인하고 산업부에 관련 정관을 제출할 것으로 알려졌다. 나아가 탈퇴 기업들의 복귀도 종용할 것으로 전해진다. 권태신 전경련 상근부회장은 지난해 2월 혁신안 발표를 앞두고 “우리가 경제 발전에 큰 역할을 하면 언젠가는 4대그룹도 전경련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탈퇴 기업 입장에서 굳이 전경련에 재가입해 구설에 오를 필요가 없다”며 “전경련이 정부에 인정받고 국민 정서가 해소된 이후에나 생각할 일”이라고 전했다.
전경련의 명칭 변경과 탈퇴 기업 복귀를 위해서는 정부와 관계 개선이 필수적이다. 정부와 UAE의 관계가 주목받으면서 허 회장도 UAE 출장을 계기로 중동 사업 확대와 정부와 관계 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허 회장은 지난 2일 GS그룹 신년사에서 “신사업을 발굴하고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데 매진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10일 전경련은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와 공동으로 ‘평창올림픽 후원기업 다짐회’를 개최했다. 다짐회에는 허창수 회장과 이낙연 국무총리, 주요 후원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고성준 기자 joonko1@ilyo.co.kr
허 회장과 정부의 관계 회복을 위한 또 다른 매개는 평창동계올림픽이다. 허창수 회장의 주도로 전경련은 지난 10일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와 공동으로 ‘평창올림픽 후원기업 다짐회’를 개최했다. 다짐회에는 허창수 회장과 이낙연 국무총리, 주요 후원기업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전경련 탈퇴 기업 관계자인 이인용 삼성전자 사장, 양진모 현대자동차 부사장, 박영춘 SK 부사장, 이규홍 서브원 대표 등이 참석한 것도 눈길을 끈다. 다짐회에 참여한 전경련 탈퇴 기업 관계자는 “평창올림픽 후원 기업이기에 참여했지 전경련과의 관계 때문이 아니다”라며 “다른 후원 기업들이 다 참석하는데 우리만 빠지면 그게 더 이상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전경련 측에서 자리를 요청한 것”이라며 “재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전경련의 요청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고 전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정부와 관계 개선을 바라고 일시적으로 진행한 행사가 아니라 수년 전부터 해온 일”이라며 “이낙연 총리까지 참석한 규모 있는 행사이기에 전경련 탈퇴 기업들도 참여한 것 같다”고 전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정부와 관계 회복은 원하지만 정부에 뭔가 바라고 움직이는 건 아니다”라고 털어놨다. GS 관계자는 “(허 회장의 행보에 대해)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롯데와 한진의 공통점…전경련에 남아 성화 봉송까지 평창동계올림픽을 후원하는 대표적인 기업으로 롯데와 한진을 꼽을 수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10일 평창동계올림픽 후원기업 다짐회에 직접 참석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회장을 제외하면 주요 대기업 총수 중 유일하게 참석한 것이다. 신 회장은 지난 14일 서울 송파구 잠실역 사거리에서 강남역 방향으로 약 200m 구간을 성화 봉송 주자로 달리기도 했다. 전날인 13일에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광화문 세종대로 구간에서 성화 봉송 주자로 달렸다. 두 기업은 전경련 비탈퇴 기업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신 회장과 조 회장은 전경련 부회장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두 기업이 전경련의 주요 회원사인 것은 맞지만 롯데와 한진 모두 이전부터 올림픽에 관심이 많았다”고 전했다. 4대그룹을 비롯한 많은 대기업이 전경련을 탈퇴하면서 전경련의 주 수익원인 기업 후원금이 대폭 줄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롯데와 한진마저 전경련을 탈퇴하면 후원금이 더 줄어 전경련 경영에 영향이 갈 수밖에 없다. 전경련에서 두 기업의 발언권도 세질 것으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동빈 회장은 롯데를 대표하기도 하지만 대한스키협회장도 맡고 있어 평창동계올림픽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며 “재계를 대변하는 단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전경련에 남은 것이지 전경련 경영이나 위상 회복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