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 담당자 처조카 채용 등 썩을 대로 썩어…‘은행 손해 입증 쉽잖아’ 법리 다툼 여지는 남아
심상정 의원실에서 공개한 2016년 우리은행 채용 청탁 의혹 리스트. 출처=심상정 의원실 블로그
처음 의혹이 제기된 것은 지난해 국정감사 때였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우리은행 2016년 신입사원 공채 때 국가정보원, 금융감독원, 은행 전·현직 고위 인사나 주요 고객의 자녀, 친인척 등을 특혜 채용했다고 폭로했다. 심 의원이 공개한 리스트에 따르면 이상구 전 금감원 부원장보 등 금융당국 핵심 관계자들이 우리은행 측에 지인 채용을 청탁했고, 이들은 전부 채용됐다(이상구 전 부원장은 금감원 채용 비리 사건으로 1심에서 김수일 전 부원장과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구속은 면한 상태다).
논란이 불거지자 우리은행은 자체적으로 내부 감찰을 실시했다. 그리고 뻔한 결론을 내놨다. 큰 문제가 없었다는 것. 채용 추천 명단은 인사부 채용 담당팀에서 작성한 것이 맞지만, 구체적인 합격 지시나 최종 합격자를 부당하게 변경하거나 형사상 업무방해를 한 행위 등은 없었다는 해명이었다. 또 문건에 이름을 올린 우리은행 내 추천자 대부분은 외부 추천인의 청탁을 받았다기보다는 평소 친분 등을 감안해 이들 자녀 등에 대한 합격 여부를 알아봤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우리은행의 내부 감찰에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국정감사와 검찰 수사에서 나온 내용들을 종합하면, 당시 우리은행은 내부 감찰 과정에서 21명을 조사했는데, 전직 임원이나 퇴직 예정 임원은 아예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 그리고 문제가 된 2016년 외에는 추가로 감찰을 진행하지 않았다.
이광구 당시 은행장 역시 감찰 과정에서 상식 밖 답변을 내놓았다. 인사부 채용담당팀에서 작성된 특혜 채용 문건은 인사담당 부장, 인사담당 상무, 인사담당 부행장까지 보고됐는데, 은행장은 사실을 덮기 위해 애매한 답변을 내놨다. 내부 감찰 때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형사 책임을 지지 않는 얘기를 한 것.
이 과정에서 우리은행 내 만연한 청탁 문화도 드러났다. 우리은행 내부 감찰팀장 격인 이 아무개 검사실장은 지난해 한 대학 부총장의 청탁이라며 대상자 명단을 은행에 전달했는데 실제로는 본인의 처조카였다. 허위로 청탁 사실을 꾸며내, 친척을 채용시킨 것이었다.
논란이 확대되자, 금감원은 우리은행 채용 비리 의혹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그리고 검찰은 서울 중구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 이 전 행장의 사무실과 전산실, 인사부, 경기 안성 연수원 등을 압수수색해 인사 자료를 확보하며 수사에 본격 착수했다. 검찰은 수사 범위를 더 넓히며 우리은행 내 채용 비리 의혹들을 확인했다. 2016년 외에 2015년과 2017년까지 채용 과정을 전수 조사했고, 이광구 전 은행장 등 임직원들이 총 30명을 부정하게 채용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정황을 포착했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20일에는 이 전 행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11월 2일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난 이광구 은행장에 대해 검찰은 두 달여가 지난 17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 사이 은행장직에서 사퇴한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은 검찰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던 진술 태도를 바꿔 혐의를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구체적인 진술 내용은 확인해 줄 수 없다”면서도 “사회적으로 공분을 자아낸 사건이지 않냐, 국민 법감정 등을 감안해 구속영장 청구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기관 인사팀 관계자는 “높은 사람들이 넌지시 ‘XXX이라는 애가 됐는지 알아봐라’고 얘기하면, 붙여야 한다는 사인으로 인식할 수밖에 없지 않냐”며 “내부 직원들 자녀들이 지원하는 경우도 많은데 챙겨야 하는 사람은 연필을 사용해 따로 표시를 하는 방법으로 사인을 주고받은 뒤 향후 문제 소지를 없애기 위해 지우개로 지운다”고 귀띔한다.
국민적인 공분은 상당하지만, 법조계의 시각은 다소 다르다. 법리적으로 다툼의 여지가 있다는 것. 특히 이미 코스피 등에 상장된, 민영화된 은행에서 ‘채용’에 은행장이 관여한 게 어떻게 은행에 손해를 끼쳤는지를 검찰이 입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대형로펌 소속의 한 변호사는 “나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화가 나지만, 누군가가 청탁한 A라는 사람을 채용한 덕분에 은행의 예금 실적이 100억, 200억 원 늘어난다고 하면 그건 해당 은행으로서도 득이 되는 상황”이라며 “설사 예금과 같은 실적을 가져 오지 않는다고 해도 좋은 학교에 좋은 스펙을 가진 친구가 청탁까지 받아서 채용이 되면, 그 청탁이 회사의 업무를 방해했다고 보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번 리스트 외에도 이광구 전 은행장에게 청탁을 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한 금융당국 관계자 역시 “명문 대학교를 나와서 학점도 잘 받고 좋은 곳에서 인턴도 했던 내 아이가 우리은행에 지원해 채용됐는데, 굳이 왜 청탁을 하겠냐”며 “내가 설사 이 전 은행장과 관계가 없다 해도 됐을 것”이라고 해명하기도 했다.
때문에 법조계 일각에서는 예금보험공사가 최대 주주인 탓에, 관의 영향을 많이 받는 우리은행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가능해도 국민은행이나 신한은행과 같은 민간 성격이 짙은 금융기관들은 채용 비리 수사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산업은행이나 기업은행처럼 ‘준공무원’ 성격이 있는 곳과 일반 은행은 우리도 적용하는 룰이 다르다”며 “우리은행 역시 민영화됐지만, 예보가 최대주주인 점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