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권 행사 피하기냐 수익성 따른 결정이냐
국민연금이 이르면 올해 하반기부터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것으로 알려진다. 박은숙 기자
특히 국민연금이 올 하반기 중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기관투자자들 사이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세계 3대 연기금인 국민연금은 현재 600조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굴리고 있다. 특히 국민연금은 삼성전자, SK, LG, 포스코, 현대자동차, 롯데 등 대기업 지분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준섭 KB증권 애널리스트는 “2014년 스튜어드십 코드가 공표된 일본은 한동안 도입이 지지부진하였으나 2015년 공적연금인 GPIF가 스튜어드십 코드를 도입하고 외부 위탁운용사에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요구하면서 자산운용업계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급물살을 탔다“며 ”2016년 말 기준 214개 기관이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하고 있고 GPIF의 도입으로 인해 투자대상 기업들의 ROE, 배당성향 및 배당수익률이 개선된 바 있다“고 분석했다.
재계 관계자들 중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정부의 지나친 경영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는 사람도 있다. 대기업 한 관계자는 “국민의 세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은 손실을 내지 않는 것이 워낙 중요하다보니 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장기투자, 인수합병 등 중요한 사안에 반대 입장을 계속 표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대기업 관계자는 “정권과 정책의 변화에 따라 너무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며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함께 기업에서도 경영권 방어를 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도입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우려를 표했다.
반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당연한 결정이라는 의견도 있다. 고령화로 인해 개인을 대신해 투자를 담당할 기관투자자의 역할이 중요해진 데다 투자 기간이 긴 노후자금 규모가 커지다 보니 기관투자자들의 장기투자가 크게 늘어나는 추세기 때문이다. 김준석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기관투자자가 고객이 맡긴 자산 운용에 있어 적극적 의결권을 행사하는 절차와 기준을 만드는 건 당연한 일이고 특히나 점점 늘어나고 있는 장기투자는 기업의 경영적 판단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며 “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에 대한 법률이 존재하긴 하지만 모호한 기준만 있을 뿐 실제적인 도입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국민연금이 주요주주로 있는 기업들의 지분을 매각해 눈길을 끈다. 국민연금은 엔씨소프트, KT, 포스코, BNK금융지주, 네이버 등의 최대주주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10월 10일~12월 28일 BNK금융지주 주식 318만 6439주를, 지난 12월 29일에는 KT 주식 69만 5501주, 포스코 주식 20만 678주, 엔씨소프트 주식 4만 4487주를 연달아 처분했다. 국민연금이 지난해 말부터 중소형주와 코스닥 종목의 지분을 크게 늘리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반면 네이버 주식은 11만 3325주 매입했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앞의 대기업 관계자는 “최대주주로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건 국민연금 입장에서는 굉장히 부담되는 일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국민연금의 최근 행보를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연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준석 선임연구원은 “현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지분 매각은 수익성에 따른 결정으로 보는 게 맞다”고 말했다.
한편 국민연금은 아직 일일이 주주권을 행사할 기초 체력이 되지 않는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김준석 선임연구원은 “사안에 대한 찬반이 팽팽한 경우 국민연금의 선택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이를 지금으로서는 수많은 기업의 안건을 제대로 검토할 여건이 안 되고 주주총회도 3월에 몰려 있기 때문에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며 “외국의 경우처럼 정보가 충분하고 지분율이 높은 기업에 대한 판단은 국민연금이 직접 하고 나머지 건에 대해서는 결정을 돕는 컨설팅업체에 판단을 의뢰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