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최초 축구 결승 진출에 ‘영웅’ 칭호 …김신환·김판곤 등 해외 진출 한국 지도자 재조명되기도
김해시청을 이끌던 시절의 박항서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일요신문] 베트남 전역에서 수많은 인파가 거리로 몰려나와 한국인의 이름을 연호한다. 베트남기와 함께 붉은 물결 속 한류의 주인공은 한국 영화나 드라마, K-POP 스타가 아닌 박항서 베트남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다.
지난해 10월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감독에 취임했다. 시작부터 신바람을 냈다. 지난해 11월 아시안컵 예선에서 승점을 따내며 베트남을 아시안컵으로 이끌었다. 이어 올해 1월 열린 U-23 챔피언십에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두며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다. 그는 이번 대회 한국과의 첫 경기에서 패배했지만 2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이어 이라크와 카타르 등 한 수 위로 평가받는 중동 국가를 제치고 결승에 진출했다. 동남아 국가 최초 결승 진출이라는 새 역사를 썼다.
베트남은 대한민국 이상으로 축구 열기가 높은 동남아 국가 중 하나다. 리그 경기가 인기를 끌고 있고, 국가대표의 기량 향상에 대한 열망도 상당하다. 국가 주도로 어린 선수들을 영국 등 축구 선진국에 유학을 보내기도 한다. 이처럼 축구가 사랑받는 베트남에서 박 감독은 2002 월드컵을 연상케 하는 인기를 한국이 아닌 베트남에서 누리고 있다. 베트남 팬들이 거리로 뛰쳐 나와 환호하는 모습이 국내에서도 화제가 될 정도다. “현재 베트남 여행 중인데, 모든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준다”는 여행객들의 체험기도 이어지고 있다.
동티모르 유소년 팀에서 시작해 국가대표팀까지 맡게된 김신환 감독.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만큼은 축구 강국에 속한다. 일본과 함께 아시아에서 월드컵을 치른 국가이자 월드컵 성적도 역대 최고를 자랑한다. 프로축구 역사 또한 사우디아라비아 정도를 제외하면 가장 긴 편이다. 이처럼 역사와 성적 면에서 아시아 축구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은 이전부터 해외에서 활약하는 감독들을 다수 배출해왔다.
지도자 해외 진출의 시작을 알린 이는 강만영 감독이다. 프로축구 1호 스카우터로도 알려진 강만영 감독은 1994년부터 방글라데시 국가대표팀과 프로팀, 홍콩 국가대표팀 등을 맡았다.
유기흥 감독도 아시아 각 지역에서 활약한 축구 지도자다. 국가대표 선수 출신인 그는 2004년 부탄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았고 캄보디아, 네팔 등에서도 대표팀 선수들을 지도했다. 이외에도 김신환 감독이 오랜 시간 동티모르에서 활약하고 있다.
홍콩에서 감독, 기술위원장을 거쳐 국내로 돌아온 김판곤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 사진=대한축구협회
이처럼 그간 많은 지도자가 해외에서 도전을 이어갔지만 박항서 감독의 경우는 다소 형태가 다르다. 그간 다수의 감독들은 현지에서 아래부터 단계를 밟고 올라가거나 축구협회 추천에 의해 동남아 등지로 진출했다.
#박항서와 베트남의 동행
하지만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축구협회로부터 먼저 제의를 받았다. 박 감독의 20년 넘은 경력, 국가대표팀·프로팀·실업팀에서의 성과 등을 인정한 그들은 역대 최고 대우로 박 감독을 ‘모셔’갔다.
박 감독도 기대에 부응했다. 그는 데뷔전인 아시안컵 예선에서 무승부를 기록, 아시안컵 진출을 이끌어냈다. 3개월 만에 이어진 23세 대회에서는 동남아 최초 결승 진출이라는 성과를 일궈냈다.
박 감독의 선전이 좋은 성적을 노리는 동남아 국가에, 그리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국내 감독들에게 새로운 길을 제시할 수 있지 않을까.
신문선 해설위원은 이번 베트남 대표팀의 성공에 대해 “한국 지도자가 해외 무대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알린 큰 의미가 있는 상징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베트남과 같은 ‘축구 개발도상국’에 더 많은 지도자들이 한국의 기술과 전술, 노하우 등을 전수할 수 있는 기회가 더 열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박 감독을 필두로 더 많은 국내 지도자가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 것이다.
신 위원은 박 감독에 대해 “2002년 월드컵 이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지휘봉을 잡았던 당시 인터뷰에서 협회를 비판하는 조로 말했다가 주류에서 밀려난 인물”이라며 “하지만 꾸준히 축구계에서 활약했고 이번에 베트남에서 성과를 냈다. 협회와의 관계를 떠나 기본적으로 능력이 출중한 감독”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이미 중국, 태국, 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각 지역에 한국 선수와 지도자들이 활약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이 같은 추세가 더 확대될 수 있다. 지난해 K리그와 베트남 대표팀이 올스타전을 치른 것처럼 양국 축구교류도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또한 새로운 ‘한류’ 아니겠나. 몇 년 전, 베트남 현지에 초청 강연을 갔던 적이 있는데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많이 갖고 있더라. 이번 일을 계기로 산업 전반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 본다”고 강조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한국-베트남 축구 가교, 박항서 이전에 쯔엉 있었다 한국과 베트남 축구는 최근 관계를 다져가고 있었다. 그간 베트남은 일부 전문가들로부터 ‘K리그의 새로운 시장’으로 지목돼 왔다. 한국과의 관계는 베트남의 ‘영스타’ 르엉 쑤언 쯔엉의 K리그 진출로 본격적인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베트남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쯔엉은 지난 2016 시즌을 앞두고 인천 유나이티드에 입단하며 양국의 주목을 받았다. 1년 뒤에는 강원 FC로 적을 옮기며 주한 베트남 대사관에서 입단식을 치르기도 했다. 쯔엉의 한국 진출로 K리그 올스타와 베트남 대표팀 간의 친선전이 열리기도 했다. 강원 FC에서 1년간 활약한 쯔엉. 사진=강원 FC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많은 베트남 팬들이 관심을 기울였다. 인천과 강원 SNS 계정에는 수천 명의 베트남 팬들이 몰리기도 했다. 마치 우리가 과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했던 박지성에 열광했던 것처럼. 결과적으로 쯔엉은 한국 무대에서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는 베트남 동료들에게 한국 무대를 적극 추천하기도 했고, 한국 팬들에게도 베트남 축구를 소개하는 등 의미 있는 자취를 남겼다. 2년간 한국생활을 경험한 쯔엉은 이번 2018 아시아축구연맹 U-23 챔피언십에서도 박항서 감독의 지휘 아래 팀의 주축으로 활약하고 있다. 팀이 치른 5경기에 모두 선발로 나서 결승 진출에 공헌했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