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방·달방 노후화돼 화재에 취약, 저소득층 거주자는 범죄피해에도 노출돼
지난 20일 서울 종로5가 한 여관에서 화재가 발생해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사진=고성준 기자
지난 20일 사고가 난 서울장여관은 도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모텔이나 숙박업소와는 조금 다르다. 대부분의 투숙객은 잠시 머물다 가는 숙박객이 아니었다. 한 달에 보증금 없이 40만 원 안팎의 월세를 지급하고 장기간 생활하는 장기 투숙객이었던 것. 사실상 2~3평 크기의 서울장여관은 ‘쪽방’과 다를 바 없었다. 이 때문에 쪽방과 달방의 화재 및 범죄 취약성이 문제로 부각됐다.
앞선 5일에는 종로5가에서 지하철 한 정거장 떨어진 돈의동 쪽방촌에서 이 아무개 씨(68)가 화재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 씨는 휴대용 가스 버너로 라면을 끓이다 졸았고, 목조 건물에 불이 옮겨 붙어 세상을 떠났다. 쪽방이나 노후화된 여관은 특히 화재에 취약하다.
쪽방촌 입구로 들어서면 목조 문이 달린 쪽방 골목이 나온다. 사진=금재은 기자
쪽방촌에 거주하는 인구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알기 어렵다. 서울의 경우 용산구 동자동, 남대문 일대, 영등포, 창신동 등에 쪽방촌이 형성되어 있다. 쪽방촌의 경우는 중장년층과 노년층 주거자가 다수다. 쪽방촌 주거민들은 경제활동을 하는 비율이 적고, 기초수급대상자가 많다. 이런 탓에 외부의 관심과 사회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서울에서 세 번째로 큰 쪽방촌인 영등포 쪽방촌은 영등포역 번화가인 롯데백화점에서 5분 거리에 있다. 쪽방촌 입구로 들어서면 창고같이 자물쇠가 달린 문들이 주르륵 펼쳐진다. 오래된 1~2층짜리 건물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건물을 쪼개어 여러 개 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곳 영등포 쪽방촌에는 54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줄지어 늘어선 문 안쪽마다 각자의 쪽방이 있다.
영등포 쪽방촌 초입의 한 건물 문을 열고 들어서니 여섯 개 남짓한 방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왼편으로는 공용 화장실이 있고 오른편에는 작은 부엌이 있다. 쪽방 주민 이 아무개 씨(60)는 그 중 한 방을 쓰고 있다. 이 씨는 해당 건물에서는 가장 오래 산 사람으로 7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다.
이 씨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람 한 명이 눕기에 빠듯한 좁은 방이 나온다. 영하 16도의 날씨지만 난방이 되지 않는 방 안에는 가스버너, 미니냉장고, TV, 옷걸이 등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그는 건설 용역업에 종사하는 일용직 노동자다. 그러나 다리를 다친 뒤로는 그 마저도 일감을 따내기 힘든 상황이다. 그가 하루 일당으로 손에 쥐는 돈은 10만 2000~10만 3000원. 한 달에 열흘가량 일을 나가고 있다.
이 아무개 씨가 공배한 방에는 옷가지와 취사도구 등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사진=금재은 기자
한 달 방세는 보증금 없이 25만 원이다. 이 안에 수도세와 전기료 등 모든 공과금이 포함되어 있다. 1년 내내 냉난방이 되지 않아 불편하지만 이 가격에 구할 수 있는 방이 없기 때문에 이 씨는 이를 감내하고 있다.
그에게 가장 힘든 일은 1~2평 남짓한 방에서 취사를 하며 그 냄새가 빠지지 않는 것이다. 방 바깥에 주인 아주머니가 쓰는 주방이 있지만 저렴한 방세를 내고 있기 때문에 세입자들은 각자 방에서 취사를 하고 있다. 이 씨는 “끼니를 방에서 모두 해결하는데 취사 냄새가 도무지 빠져나가지 않아 힘들다. 창문이 없어 환기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 씨의 방 옆 주인들은 모두 기초생활수급대상자고, 쪽방 주민 대부분 60~80대 이상 노인들이다. 쪽방촌 대부분은 난방이 되지 않아 겨울철에는 비닐포장재로 바람을 막고, 좁은 방에서 실내 취사를 하고 있다. 난방 대신 전기장판을 겨울 내내 사용한다. 환기를 할 만한 창문도 없다. 목조 건물이 대부분인 쪽방은 불이 나면 바로 옮겨 붙기 십상이다 .
서울 시내 노후화된 여관에는 장기 투숙객을 받는 곳이 많다. 사진=고성준 기자
영등포 쪽방촌도 화재경계지구로 지정되어 있다. 하지만 여섯 명 이상이 거주하는 한 쪽방 건물 안에는 먼지가 낡은 소화기 한 대만이 비치되어 있다. 그마저도 구비되지 않은 곳도 수두룩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돈의동 쪽방촌 화재사고 당일 현장을 찾아 “쪽방촌 건물들이 화재에 취약하다.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