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선 도전 시사 박원순 독주…‘홈런 아니면 아웃’ 안철수 등판할까
서울시장은 그 권한과 위상을 볼 때 ‘소통령’이다. 한 해 살림살이 규모만 올해 기준으로 약 31조 8000억 원이다. 곳간이 넉넉하다보니 씀씀이도 통 크게 할 수 있다. 최근 화제가 됐던 미세먼지 대중교통 무료정책만 해도 하루 평균 50억 원 가까운 비용이 들었다. 사흘에 모두 150억 원가량이 쓰여 다른 지자체들의 부러움을 샀다.
서울시장은 인구 1000만 명의 서울시 행정을 지휘하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정치적으로 대권에 가장 근접해 있는 자리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버스 중앙전용차로 도입과 청계천 복원 등의 불도저식 정책 시행을 통해 서울시청에서 청와대로 간 사례는 서울시장 자리의 무게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월 17일 출입기자단과의 신년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거물급 정치인’이 많이 나올 것으로 보인다. 여당은 물론, 야당도 마찬가지다. 대선에 나왔던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등판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현직이어서 ‘현직 프리미엄’을 가질 수밖에 없는 박원순 시장이 여당의 공천권을 따내고 3선에 성공,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서울시장을 발판으로 대권을 향한 꿈을 키울지도 관심거리다.
# 인산인해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예선이 더 치열하다. 출마 희망자가 넘쳐나면서 치열한 당내 경선의 문턱부터 넘어야 하는 것이다. 우상호 의원이 당내에서는 처음으로 1월 21일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우 의원은 현직인 박원순 시장부터 잡아야 한다고 보고 박 시장을 향해 잇따라 강펀치를 날리고 있다.
우 의원은 2월 1일 한 라디오방송에 나와 서울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 가격 급등과 관련해 박원순 서울시장 책임론을 제기했다. 재건축 무더기 허가 탓에 집값이 급등했다는 것이다.
우 의원을 비롯해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인사는 모두 6명에 이른다. 박원순 현 서울시장과 박영선 민병두 전현희 의원, 정봉주 전 의원 등이다.
박 시장의 경우, 구체적인 출마 선언 시기를 내놓고 있지 않지만 출마가 확실시되고 있다. 박 시장은 1월 25일 서울시내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오찬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 “국회의원을 하라는 분, 아무 직 없이 네트워크를 꾸리라는 분, 총리를 하라는 분들이 있었다”면서도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경남지사를 권유한 분도 있었지만 자칫하면 정치공학적으로 보이고 오만하게 비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으로 읽힌다.
박 시장은 ‘내 뒤에 문 대통령이 있다’는 뉘앙스까지 풍기고 있다. 박 시장은 당내 경선 때 문재인 대통령 지지층의 표심이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문재인 대통령과 서울시는 밀월기”라며 긴밀한 관계임을 부각시키면서 당내 경선 승리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박 시장은 또 국무회의 때 서울시장이 배석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발언에 대해 일일이 답변한다고 얘기하면서 “문 대통령이 저를 배려한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박 시장은 현직인 점을 고려해 다른 주자들에 비해 빨리 출마를 공식화할 의향은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직 서울시장인 만큼 자칫 선거 때문에 행정 공백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데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비교적 여유 있게 다른 주자들을 앞서고 있는 만큼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 시정에 대한 비판은 물론, ‘서울을 걷다’ 행사 등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는 박영선 의원은 2월 중 출마를 공식 선언할 예정이지만 구체적인 시기는 아직 정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민병두 의원 역시 2월 초에 출마 선언을 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고 이미 1월 25일 자신의 싱크탱크 격인 ‘미래전략연구소’ 창립 심포지엄을 열면서 출마 시동을 걸었다.
전현희 의원은 이달에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만큼 동계올림픽 폐막 직후에 출마선언을 할 계획이다. 정봉주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에 나설 것으로 측근들은 보고 있다.
정봉주 전 의원의 경우, 대중적 인기가 만만치 않아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다. 문재인 정부 첫 특별사면을 통해 피선거권이 회복된 정 전 의원은 통합민주당 소속으로 17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현재 당적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다. 그는 지방선거에 출마하려면 더불어민주당 입당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정 전 의원의 한 지인은 “정 전 의원은 서울시장 쪽으로 마음을 굳혔을 것”이라고 했다.
# 인물난 제1야당
여당과 달리 자유한국당은 그야말로 인물난을 겪고 있다. 그러나 지방선거까지 시간이 급한 만큼 구체적 후보 조율이 상당 부분 이뤄지고 있다. 일단 가장 많은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것은 김병준 국민대 교수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실장으로서 문재인 정부를 가장 잘 아는 최적의 대항마라는 이유에서다.
김 교수는 탄핵 사태 이후 새누리당 ‘구원투수’로 비대위원장 자리에 오를 가능성도 있었으나 당내 사정으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김 교수는 “자유한국당의 지속적 요구에 계속 거절하기만 하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며 의지를 밝혔으나 친 홍준표계 인사에게 자리가 넘어감으로써 정치 전면에 나설 기회를 얻지 못했다.
김 교수와 관련,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는 “문재인 정부와 각을 세우기 딱 좋은 인물”이라며 서울시장 후보로 꼽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교육부총리에다 청와대 정책실장까지 역임하면서 당시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사이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때 청와대 근무 경험자들은 “김 교수는 참여정부 때도 문 대통령과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정확한 이유를 자세히는 모르지만 김 교수로서는 정책입안 등 ‘능력 면’에서 문 대통령이 ‘한 수 뒤진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이들은 분석했다.
김 교수는 자유한국당의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는 것에 대해 일단은 부담스럽다는 입장이지만 손사래는 치지 않고 있다. 그는 “(서울시장 후보를 제안하는) 여러분들이 개별적으로 찾아와 종용한 것이 사실”이라며 “나를 찾아온 사람들에게 한국정치가 어디로 가는 것이 바람직할지에 대해서만 이야기해 줬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역사회와 시장경제가 잘 자라는 토양을 만드는 길이라면 서울이든 지방이든 무관하다”고 말해 출마 의지를 내비쳤다는 해석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병준 교수는 1월 17일 자유한국당 제2기 혁신위원회 행사에도 참석해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을 낳았다. 그는 이날 혁신위가 국회에서 개최한 ‘신보수주의 국가개혁 심포지엄-대한민국의 길을 묻다’ 행사에 나와 ‘국가개혁의 올바른 방향 모색’이라는 주제로 강연하면서 문재인 정부에 대해 날선 비판을 했다.
그는 “국가 권력으로 무엇이든지 하려는 것이 문제다. 시장이나 공동체가 충분히 할 수 있음에도 국가가 칼을 들고 나선다. 가상화폐 이야기를 하는데 왜 법무부가 먼저 나오는 것이냐. 그것이 국가주의를 깔고 있는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의 실정을 파고들었다.
그는 또 “가상화폐 문제처럼 국가가 칼을 아무 데나 들이대고, 안보는 국가가 나서야 하는데 ‘코리아 패싱’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패권주의도 (우리나라 정치권에서) 문제다. 권력을 잡으면 폐쇄적이고 배타적으로 운영하려 한다. 대중영합주의도 문제다. 정치는 국민을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매일 같이 국민이 원하는 것, 여론이 이야기하는 것을 따라가기 급급하다”며 문재인 정부를 몰아붙였다.
자유한국당 한 핵심 관계자는 “일단 김병준 교수가 가장 유력하다. 대안도 없다. 본인 결심만 남은 것으로 보이며 본인도 결국 결심을 할 것으로 본다. 황교안 전 국무총리 얘기도 나오는데 국정농단 탄핵사태의 공범이라는 집중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어 가능성이 없는 카드”라고 말했다.
# 다른 정당도 ‘거물급’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손을 맞잡고 출범하게 될 미래당은 물론, 정의당에서도 서울시장 선거에 ‘거물’을 내보낼 것으로 보여 서울시장 선거는 결과를 마지막까지 예측하기 힘들 전망이다.
미래당의 경우, 안철수 현 국민의당 대표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박지원 국민의당 전 대표도 1월 22일 페이스북에 “형님(안철수)은 서울시장 출마 이야기가 솔솔 나오고, 동생(유승민)은 당대표(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라며 안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측했다.
미래당 성공 여부는 이번 지방선거에 달려있는데 안철수 대표가 나오지 않을 경우, 서울시장 승리 가능성이 없는 만큼 안 대표는 결국 나올 수밖에 없을 것으로 국민의당·바른정당 안팎에서는 관측하고 있다. 안철수 대표는 서울시장, 유승민 대표는 당권을 쥔다는 구도다.
그러나 안 대표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오면 ‘정치적 도박’을 거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길 가능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이어서 안 대표가 입을 타격이 클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권 한 관계자는 “서울시장 선거는 격전이 예상되는 만큼 정당 파괴력이 아닌 안 대표의 개인적 지지도만으로는 쉽게 당선을 따내기 힘들 것”이라며 “낙선하게 된다면 안 대표가 정치적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고 했다.
정의당은 당내 스타 의원인 노회찬 원내대표를 서울시장 선거에 내보낼 것으로 보인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1월 30일 6·13 지방선거에서 노회찬 원내대표를 서울시장에, 심상정 전 대표를 경기지사에 각각 내보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의당이 이미 여러 차례 선거에서 상당 수준의 득표력이 검증된 거물급 인사를 지방선거에 차출하겠다는 최종 결정을 내릴 경우, 진보진영 표 분산이 불가피하다. 이렇게 되면 더불어민주당표 분산이 나타나 선거 양상에 변화를 줄 수도 있다.
특히 정의당의 거물급 후보는 자유한국당 후보에게 어부지리를 던질 수도 있다. 진보진영의 표 분열이 나타나면 고정표가 존재하는 보수정당이 열매를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한 현역의원은 “모든 선거에서 정의당 후보가 민주당 후보의 발목을 잡은 사례가 많다. 그때마다 정의당에 후보 단일화를 제안하지만 거절당하는 때가 더 많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도 과거 전례의 재판이 될까봐 민주당으로서는 상당히 걱정스럽다”고 털어놨다.
한편 이정미 대표는 1월 30일 한 라디오방송에 나와 “노 원내대표와 심 전 대표는 정의당의 ‘최강 병기’”라며 “이 최강 병기를 쓸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론조사에서 두 사람의 지지도가 괜찮게 나오기 때문에 당 대표로서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원 의석 수가 적은 정의당으로서는 두 명의 의원이 지방선거에 나가버리면 의원직 사퇴를 감수해야 해 이 부분에 대해서는 큰 위험을 안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