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비서관’ 최도술·정상문·이재만 이어 김백준 구속되는 ‘수난사’
문재인 대통령은 측근이 배치되는 관례를 깨고 상대적으로 연이 없는 이상도 총무비서관을 임명했다. 사진=청와대 제공
그 핵심에 대통령의 핵심 측근, 소위 ‘집사’가 있다. 측근 중 측근을 가리키는 집사는 보통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일정이나 비용 등을 관리하고 대통령이 되면 청와대로 입성해 ‘총무비서관’, 혹은 ‘부속실장’ 등을 역임한다. 참여정부 이후 이 총무비서관 자리는 비극의 연속이었다. 대부분 구속됐거나 현재 수사 중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 오래 몸 담았던 한 중견 정치인은 “원래 총무비서관만큼은 건드리지 않는 게 정치권 불문율이다. 그런데 이게 무너진 다음부터는 지난 정권 적폐를 들여다볼 때 정치인의 속살을 가장 잘 아는 총무비서관부터 불러 수사를 한다”고 말했다.
문민정부 출범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집사’는 홍인길 총무수석이었다. YS정부는 총무 책임자의 직책이 비서관이 아닌 수석급이었다. 홍 수석은 대통령의 6촌 동생인 데다 오랫동안 상도동계에 몸담아 정치자금을 관리해왔다. 동지에 더 가까운 집사였고 당시 수석급이었기 때문에 그 파워가 막강했다.
하지만 좋은 시절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1996년 YS정부 재임기 15대 총선 부산 서구에서 출마해 당선됐지만 1년 뒤인 1997년 한보사태에 연루돼 구속됐고 의원직을 상실했다. 하지만 이때에도 다음 정권인 DJ정부에서 홍 전 수석을 수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2000년 홍 전 수석은 8·15사면으로 풀려나오게 된다.
DJ 정부에서는 홍 전 수석 비리사건을 이유로 총무수석을 총무비서관으로 한 단계 격을 낮췄다. 또한 예상을 깨고 첫 총무비서관에 여성인 박금옥 씨를 앉혔다. 박 전 비서관은 임기 5년을 다 채워 DJ정부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총무비서관이었다. 박 전 비서관은 1월 중순 주노르웨이 대사에 임명됐다 건강상의 이유로 사퇴한 바 있다.
역시 박 전 비서관도 노무현 정부 출범 이전, 이후에도 검찰 조사를 받지 않았다. 실제로 ‘돈 문제’에서 깨끗했을 수도 있지만 앞서 중견 정치인의 말처럼 이는 어느 정도 ‘관례’이자 ‘도의’인 점도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야당 출신 한 전직 의원은 “당시는 지금처럼 정치권이 깨끗해지기 전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올 수가 없는 곳이었다. 봐줬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친구를 총무비서관에 앉힌 케이스다. 최도술 전 총무비서관은 고교 시절 독서실에서 총무를 하다 노 전 대통령과 만난 사이다. 이 때문에 당시 정계에는 “독서실 총무가 친구 덕분에 청와대 총무 됐다”는 말이 돌았다.
최 전 비서관이 총선 출마를 위해 자리를 비우면서 임명된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도 노 전 대통령과 서로 이름을 부르는 막역한 사이다. 정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과 2년간 고시공부를 같이 하기도 했다. 그는 친구인 노 전 대통령 덕에 4급 감사담당관에서 총무비서관으로 직급이 수직 상승할 수 있었다.
물론 두 전 비서관의 끝은 모두 좋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 재임 시기인 2004년 최 전 비서관은 대선 직후인 2002년 SK로부터 약 6억 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정 전 비서관은 지금까지 총무비서관 구속 케이스와는 조금 다르다. 본격적인 총무비서관 잔혹사의 신호탄이라고 볼 수 있다.
2009년 MB정부에서 정 전 비서관은 대통령 특수활동비 12억 5000만 원을 빼돌린 혐의로 구속됐다. 정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 퇴임 뒤 건네주려 했다’고 진술해 당시 노 전 대통령 측을 충격에 빠트렸다. 총무비서관이 입을 열면 대통령 몰락이 시작된다는 공식의 시작이기도 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 측을 대변했던 문재인 대통령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정 비서관이 거짓말할 사람은 아닌데 (혐의 사실을) 인정했다고 하니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면서도 “정 비서관은 압박한다고 해서 사실과 다르게 진술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황망함을 드러냈다. 정 전 비서관의 이 같은 진술 이후 약 한 달 뒤 노 전 대통령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현재 총무비서관, 부속실장의 연이은 구속으로 코너에 몰렸다. 먼저 입을 연 쪽은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었다. 지난 17일 꿈쩍도 안하던 MB가 갑작스레 자처한 자신의 사무실 기자회견을 열고 입장을 발표한 배경도 정치권에서는 ‘성골집사’ 김 전 실장이 검찰에서 입을 열기 시작했기 때문으로 봤다. 김 전 실장은 검찰에서 ‘국정원 특활비를 이명박 전 대통령이 알았을 뿐 아니라, 그 비용이 환전돼 이 전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에게 전달됐다’는 내용을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도 최근 닫혀 있던 입을 열고 있다. 김 전 기획관은 국가정보원에서 특수활동비를 받는 과정에 MB가 일정한 관여를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내놓았다고 전해진다. 두 ‘집사’가 무너지면서 MB가 오는 3월 검찰에 소환된다는 ‘3월 소환설’도 힘을 받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문고리 3인방이라는 핵심 측근들이 있었다. 이들 측근이 빠르게 입을 열면서 박 전 대통령의 몰락은 가속화됐다. 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검찰 조사에서 “대통령 지시로 특활비를 받았다”고 시인했다. 안봉근 전 제2부속비서관은 국정원 쪽에서 추가 상납 의사에 “금일봉이라든지 많이 쓰실 것 같다”며 동의만 했을 뿐이라는 입장으로 자신은 빠져나갔다.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도 “최순실 태블릿 PC 속 문건을 최순실에게 전달한 게 맞다”고 쐐기를 박았다.
여기에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은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설립과 출연은 물론, 현대자동차와 케이티 등을 통한 이권 개입도 박 대통령이 결정하고 지시했다’, ‘단 하나도 내가 판단하고 이행한 것이 없고 박 대통령이 모두 지시했다’고 증언했다. 또한 대통령 지시사항을 꼼꼼하게 기록한 ‘안종범 수첩’은 결국 박 전 대통령 탄핵의 결정타를 날리기도 했다.
반면 당시 노 전 대통령의 씁쓸함을 목격했기 때문일까. 문재인 대통령은 관례적으로 최측근 인사를 배치하는 총무비서관 자리에 큰 연이 없는 관료 출신인 이정도 총무비서관을 앉혔다. 베일에 싸여 있는 막대한 양의 대통령 특수활동비를 전문 행정 공무원에게 맡겨 파격을 줬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그 사람만 입을 열면 모두 다친다’는 말은 반대로 보면 ‘그 사람만 입을 닫으면 없던 일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말은 쉽지만 특정인 1명이 모든 걸 안고 가는 건 대단히 힘든 일이다. 또한 시대가 점점 옛날과는 달라지고 있다. 이번에 문재인 정부 총무비서관 내정은 차라리 비극을 끊기 위해서는 불가근 불가원(가까워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멀어서도 안된다) 정도가 적절하다는 반성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귀띔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