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행’ 이어 ‘외압’ 주장…잘못된 내부문화 인정 불구 “검찰 명예 추락 안돼” 분위기 팽배
서지현 검사 성추행 피해부터 수사 부당 외압 행사 논란 주장까지, 현직검사의 내부 폭로가 잇따르자 국무총리까지 나섰다. 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작심한 듯 검찰을 비판했다. “검찰의 존재를 걸고 진실을 규명하라”고 강도 높게 경고했고, 검찰도 여론을 예의주시하는 모양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있는 법무부와 대검찰청 역시 조속하게 사건을 마무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검찰 내에서도 “잘못한 것은 털고 가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더 이상 검찰의 명예가 땅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분위기가 더 지배적이다.
서지현 검사, JTBC 뉴스 화면 캡쳐
의혹 제기 방법 중 조직 입장에서 ‘가장 아프다’는 내부 폭로가 처음 나온 것은 지난달 29일. 서지현 검사(사법연수원 33기)가 포문을 열었다. 서 검사는 검찰 내부 게시판(이프로스)에 글을 올린 데 이어, JTBC 뉴스룸에 출연해 검찰 내 성추행 문제를 공론화했다. 서 검사의 폭로에 검찰은 발칵 뒤집혔다. 문무일 검찰총장은 조희진 검사장을 필두로, 조사단을 꾸려 사건을 확인하라고 지시하며 사건 수습 의지를 내비쳤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서 검사 폭로가 공론화된 지 일주일도 안 돼 폭로가 또 벌어졌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서 검사의 피해 사실을 알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여부를 놓고 공방이 불거지던 4일 저녁, 이번에는 ‘수사 부당 외압 의혹’이 터진 것. 한 현직 검사가 ‘강원랜드 채용 비리’ 수사 과정에서 현직 검찰 간부와 자유한국당 권성동 의원 등으로부터 부당한 외압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부당 외압 의혹을 제기한 안미현 검사. MBC 인터뷰 화면 캡쳐
이번에 나선 검사는 현재 의정부지검에 근무 중인 안미현 검사(사법연수원 41기). 안 검사는 MBC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춘천지검에서 근무할 당시 강원랜드 채용 비리 사건을 인계받아 수사하던 과정에서 검찰 윗선으로부터 부당한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당시 춘천지검장이 김수남 당시 검찰총장을 만나고 온 뒤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을 불구속으로 재판에 넘기라’고 지시했다”며 “부장검사로부터는 청탁자 명단에 있던 권성동 자유한국당 의원 등에 대한 증거를 삭제하라는 지시를 받는 등 부당한 외압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안 검사는 수사에 압력을 행사한 배경으로 권성동 의원 외에도 현직 고검장 등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안 검사 사건은 검찰 내에서 단순한 폭로가 아니라는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검찰의 존재 이유인 ‘수사’ 과정의 문제를 공론화했기 때문. 검사들은 정상적인 지시였는지, 부당한 외압이 있었는지에 따라 사건의 파장이 달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불법적인 청탁에 따른 외압이 있었다면, 이에 관여한 관계자들의 형사 처벌도 가능하다.
지난해 있었던 사건인 만큼, 대검찰청 등은 수사 과정에 문제가 없었음을 설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춘천지검은 논란이 불거진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수사팀과 춘천지검 지휘부는 안 검사에게 일방적으로 증거목록을 삭제하라고 요구한 사실이 없다”며 ‘사실무근’ 입장을 밝혔고, 권성동 의원은 “수사 과정에 압력을 행사한 사실이 전혀 없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며 “안 검사가 인사 불만이 있어 그런 것(폭로) 같다”고 반박했다.
안 검사 폭로는 검찰 조직 전체와 한 검사 간의 사실공방으로 번지는 흐름이다. 검찰과 지목된 정치인의 ‘부인’에 안 검사 측 대리인인 김필성 변호사는 “본질은 권력형 비리 수사에 외압이 있었고, 이 외압 때문에 담당 검사가 제대로 수사할 수 없었다는 것”이라며 추가 입장을 내놓았다. 또 안 검사 측은 “권성동 의원 등은 피고인이 아니라 증거기록을 볼 수 없는 위치였는데도, 자신과 관련된 증거를 정확히 알고 삭제를 요구한 사실이 문제”라며 수사 기록 유출 의혹까지 제기했다.
임은정 검사
이 와중에 검찰 내부를 향한 폭로는 계속됐다. 검찰 조직에 대해 쓴소리를 서슴지 않던 임은정 서울북부지검 부부장검사(사법연수원 30기)도 나섰다. 임 검사는 다시 성 비위 사건을 꺼내들었다.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15년 전 직속상사인 부장검사로부터 성추행 피해를 겪은 사실을 공개한 것. 2003년 5월 대구지검 경주지청에서 근무할 때 회식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해당 부장검사로부터 강제 키스를 당하고, 집 현관문을 계속 두드리는 등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2005년 당시 “부장검사가 2차(성매매)를 가는 것을 문제 삼았음에도 검찰이 이를 처벌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단장 조희진 검사장)을 꾸려, 조직 내 성 비위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은 임 검사 사건도 살펴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조사단 측은 “특정인(임은정 검사) 사건을 배제할 생각이 없다”며 검토 대상이라는 입장을 내놨는데, 6일 오전에는 임 검사를 앞선 서지현 검사 폭로 건의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조사를 진행했다.
검사들은 개별 사건에 대해 말을 삼가는 분위기다. 그러면서도 “문제가 있어 언론 등에 드러난 것은 개선해야 한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더 이상 검찰 내부 문제가 확산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그리고 두 사건을 바라보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내부 폭로’라는 점은 유사하지만, 사건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서지현 검사 폭로의 경우 잘못된 내부 문화를 인정하는 분위기다. ‘가해자가 잘못했다’는 게 명백하기 때문에 검찰이 제대로 사실관계를 확인해 개선책을 내놔야 한다고 것. 한 검찰 관계자는 “서지현 검사는 성추행에 따른 인사 불이익을 주장하지만 사실 그건 피해자가 추측으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주장이다. 그보다 앞선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추행 사실 자체에 대해서는 목격자들도 많아 이견이 없지 않냐”며 “인사 여부와 상관없이 성추행은 그 행위 자체만으로 잘못한 것이고, 우리 조직이 남성 중심적으로 흘러가다보니 그런 문제점이 만연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안 검사의 폭로에 대해서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외압으로 느낄 수는 있지만, 불법적인 ‘지시 개입’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하는 듯하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다른 검사들 역시 “아직 경력이 짧은 안 검사가 검찰 구조를 잘 모르는 채 폭로한 것 같다“고 우려하고 있다.
안 검사보다 연차가 다소 높은 한 검사는 “사법연수원 41기가 검찰 조직을 제대로 알 수 있겠냐. 특수 사건의 보고 체계를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비판했는데, 현직의 한 부장검사는 “수사팀과 지휘부의 입장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수사 지휘를 외압으로 혼자 판단해 감찰 요청 등 내부로 해결하지 않고, 외부에 알리는 것 자체가 부적절해 보인다”고 설명했다.
심지어 다른 고위 간부급 검사는 “안 검사가 조직의 허락 없이, 언론을 통해 정치인과 스스로 싸움을 벌이는 것 아니냐”며 “이번 사건은 수사 내용을 언론에 대놓고 언급했다는 점에서 조직 차원에서 향후 안 검사에 대한 징계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현장 검사들의 반응과 달리, 간부들은 적폐 논란 등으로 악화됐던 여론이 더 나빠져 검경 수사권 조정에 악영향을 줄까 노심초사하는 분위기다. 대검찰청 관계자는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부에서 터진 폭로는 데미지가 더 오래 간다”며 “한두 명의 사실관계가 확인이 안 된 얘기가 언론에 나가면, 일반 국민들은 이를 검찰 전체의 모습으로 받아들이지 않냐”고 우려했다. 법무부 관계자 역시 “평창 올림픽 이후 본격화될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이런 내부 폭로는 경찰은 물론 청와대로부터도 공격을 당해도 방어할 수 없는 엄청난 ‘허점’”이라며 “6일 열리기로 했던 국회 법사위가 권성동 위원장에 대한 여당의 반발로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지 않았냐. 정치권에서 이번 사건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우리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