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의 조양호 구속영장 신청은 기각하고 검찰 수사 사건은 ‘척척’ 신청하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검사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항상 화두에 오르는 내용이 하나 있다. 바로 검경 수사권 조정이다. 그리고 이 주제가 나오면 모든 검사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하는 말이 있다. 다른 건 몰라도 경찰에서 올리는 영장 신청은 말도 안 되는 내용들이 너무 담겨 있다는 것. 그래서 경찰에는 절대 영장 청구권을 줘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지휘부서에서 경찰이 신청한 영장에 문제가 많아 여러 문제를 이유삼아 반려했더니, 지휘 검찰 부서가 쉬는, 당직 검사가 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하는 주말에 몰래 영장을 신청해 받아간 경우도 있다”며 강하게 경찰을 비판한 검사도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검찰의 주장을 듣는 법원의 입장은 또 다르다. 검찰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비판이다.
영장 청구권의 의미부터 짚어보자. 영장은 수사에서 ‘성패’를 결정짓는 핵심이다. 수사의 ‘시작과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사 과정에는 피의자에 대한 기초 자료 조사(통화 내역, 계좌)를 위해 압수수색 영장을 받아야 하고, 수사가 시작된 후에는 신병 확보(체포영장)를 해야 한다. 지금은 영장 청구권이 검찰에만 있어, 경찰은 내사부터 검찰의 지휘(허락)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지금껏 보여준 경찰의 행태를 봤을 때, 경찰이 영장 청구권을 가지게 될 경우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게 검찰의 지적이다.
경찰이 자택 공사대금에 회사 돈을 끌어다 쓴 혐의를 받고 있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 대해 다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사진은 지난 9월 19일 조사를 위해 경찰청에 소환된 조양호 회장. 이종현 기자
경찰의 무리한 영장 신청이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말,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자택 공사비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은 한바탕 시끄러웠다. 경찰청 특수수사과가 조 회장에 대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신청한 구속영장을 서울중앙지검이 두 차례나 기각했기 때문. 경찰은 조 회장이 서울 종로구 평창동 자택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되던 2013년 5월부터 2014년 1월까지 공사비용 중 30억 원가량을 그룹 계열사 대한항공 인천 영종도 호텔 공사비에서 빼돌려 썼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검찰은 ‘증거가 부족하다’고 영장 신청을 반려했다.
앞에서는 ‘증거’를 이유 삼았지만 뒤에서 검찰이 내놓은 반응은 원색적이었다. 경찰이 ‘본질’을 호도해 수사 성과를 올리는 데 급급했다는 것. 관련 내용을 잘 아는 검찰 관계자는 “원래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자택 공사비는 조 회장이 아니라, 조 회장 부인과 관련이 있다”며 “조 회장과 관련 없는데 수사 성과(구속)를 내려고 억지로 영장을 두 번이나 청구하는 게 맞느냐, 성과내기식 수사의 나쁜 관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의 영장 신청 결정에 대해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것 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경찰은 비슷한 사건의 영장을 청구했는지 안 했는지도 잘 알아보고 오지 않는 것 같다“며 ”비슷한 사건에서 영장을 청구한 적이 없는데 아무렇지 않게 신청하는 걸 보면 정말 당황스럽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검찰 판단에 대해 ‘검찰 말은 맞지만, 검찰이 할 말은 아니다’는 지적을 하는 곳이 있다. 바로 법원이다. 경찰을 비난하지만, 검찰도 경찰만큼이나 ‘특수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재벌 오너 일가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를 의무적으로 하곤 한다. 지난해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은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기각됐다. 당시 수사팀은 ‘법원의 판단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발했지만, 최근 법원의 판결이 나온 뒤 법조계 관계자들은 ‘신동빈 회장이 주범이 아니었다, 구속영장 청구 사유가 아니었다’고 입을 모았다. 롯데그룹 관련 통행세를 받도록 지시한 게 신동빈 회장이 아닌, 신격호 명예회장이었다고 법원이 판단했기 때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지난 12월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횡령, 배임, 탈세’ 등 경영비리 혐의 관련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는 모습.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이런 사례는 또 있다. 얼마 전 서울북부지검에서 수사한 우리은행 채용 비리 사건도 유사하다. 당시 수사팀은 이광구 전 우리은행장에 대해 30여 명이 넘는 채용 청탁을 받아준 혐의(업무방해)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가 법원에서 기각된 바 있다. 당시 검찰은 이 전 은행장 외에 남 아무개 전 임원도 함께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법원은 두 명 모두 영장을 기각했다. 둘 다 증거 인멸의 우려가 없다는 게 주된 영장 기각의 설명이었다.
앞선 법조계 관계자는 ”구속영장 발부라는 건 실형이 선고될 만큼 중범죄거나 도주의 우려나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은행 사건의 경우 국민적 공분이 있다는 점 외에는 구속의 사유가 없다“며 ”소환 조사 후 구속영장을 결정하는 데 한 달이나 시간이 걸린 점, 한 명이라도 걸려라 하는 마음으로 둘 다 구속영장을 청구한 점, 경영진이 채용 비리로 구속된 적이 없는 점 등을 감안할 때 ‘기각되면 어쩔 수 없다’는 마음으로 한 검찰의 무책임한 영장 청구“라고 비판했다. 실제 당시 수사팀 관계자 역시 구체적인 영장 청구 사유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국민적 공분이 크다는 게 중요하다“며 비판 여론 무마용 구속영장 청구임을 시사한 바 있다.
영장이 기각됐을 때 내놓는 반응은 검찰이나 경찰 모두 비슷하다. 상위(경찰은 검찰, 검찰은 법원) 조직을 비난한다. 실제 최근 서울중앙지검은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폭로한 인사를 국가정보원 돈으로 ‘입막음’하는 데 관여한 의혹을 받는 장석명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조목조목 이유를 들어 반발했다.
정작 하고픈 말이 가장 많은 곳은 법원이다. ‘고민 끝에 결정한 사안들에 대해 검찰이 언론에 대놓고 얘기하는 게 불만’이라는 것. 한 번도 공식적으로 검찰의 주장에 반박한 적이 없는, 법원의 오랜 고민이기도 하다.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판사 출신의 한 부장판사는 ”검찰이 가끔 가지고 오는 사건을 보면 구속할 사건이 아닌데 여론 무마용 구속영장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며 ”영장이 기각되면 기자들을 불러서 법원을 비판하곤 하는데, 우리가 영장을 기각할 때는 그냥 하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려하는 것임을 잘 알면서 내부적으로 혼나지 않으려고 너무 법원을 문제 삼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우리도 할 말이 없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가끔 도가 지나치다 싶으면 검찰에 정중히 항의를 하고 그러면 곧바로 검찰도 사과를 한다“며 ”대외적으로만 검찰이 언론 플레이를 하는 셈인데, 우리는 그걸 그냥 참고 지켜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찰과 검찰, 법원이 영장 청구와 발부를 놓고 다른 입장을 가지고 있지만, 향후 ‘영장청구권’은 검찰과 경찰 간 수사권 조정 논의의 핵이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경찰 입장에서 영장청구권 획득은 수사기소 분리를 위한 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법원 관계자는 ”경찰이건 검찰이건 수사 과정에서 필요한 영장은 얼마든지 좋다, 성과를 내기 위한 억지성 영장 신청·청구만 지양했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