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실수 등 평창행 좌절은 성장통일 뿐…4년 뒤 베이징서 일낼 것”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국가대표 조현민. 고성준 기자
[일요신문] 생후 28개월부터 눈 위를 내달린 ‘스노보드 신동’. 최연소 국가대표. 평창올림픽 메달 기대주.
대한민국 스노보드 국가대표 조현민의 앞에 놓인 수식어다. 그는 지난 5월 역대 최연소로 국가대표팀에 합류해 주목을 받았다. 단순히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것만이 아니었다. 합류 직후부터 성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의 메달 전망을 밝게 했고, 코칭스태프도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 1월 뜻밖의 비보가 전해졌다. 조현민의 평창행이 좌절됐다는 소식이었다.
조현민의 평창행은 기정사실화된 일처럼 보였다. 여전히 만 15세의 어린 나이이지만 대회 참가에는 어려움이 없어보였다. 일각에서는 ‘메달 색깔만이 문제’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하지만 올림픽 참가 포인트를 쌓아야 할 월드컵 대회에서 실수가 반복됐다. 꿈꾸던 메달 유망주에서 졸지에 평창 올림픽을 지켜만 봐야 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대회 참가가 좌절되고 약 2주의 시간이 흐른 지난 7일 만난 조현민은 이제는 담담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날 인터뷰는 스노보드 선수 조현민을 만든 그의 아버지 조원채 씨도 함께했다. 조현민은 평창올림픽 참가에 실패한 데 대해 “실망스러웠다. 스스로 자책을 많이 했다”며 “미련이 남기도 한다. 하지만 빨리 잊고 다음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 조 씨도 “현민이도 속상했지만 나도 아팠다. 열흘 동안 밥도 못 먹고 집에서 나오지도 않았다. 현민이가 10년이 넘게 보드를 탔다. 어떻게 보면 이번 대회를 위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 꿈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최연소 국가대표로 뽑히며 신동빈 대한스키협회장으로부터 격려금도 받은 조현민. 이종현 기자
다른 종목의 동료들도 조현민의 탈락에 놀랐다. 평창 대회에서 스노보드 슬로프스타일과 빅에어 종목에 나서는 이민식은 조현민의 탈락 소식에 눈물까지 흘렸다. 조현민은 “그렇게 안타까워하는 모습에 오히려 내가 놀랐다. 평소 해외 대회가 있으면 응원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 표현을 할지는 몰랐다. 덕분에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프리스타일 스키 하프파이프 종목의 장유진, 이강복 등도 소식을 듣고 조현민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처럼 많은 이들에게 그의 대회 탈락은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조현민은 지난해 5월부터 국가대표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평창올림픽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9월 뉴질랜드에서 열린 생애 첫 월드컵에서 17위를 차지하며 기대감을 높였다. 국내 선수 중에선 최고 기록이었다. 이번 올림픽에는 최근 2년간 성적을 집계해 올림픽 포인트 30위 이내에 드는 선수만 참가가 가능했다. 남은 3번의 월드컵에서 당시 성적만 유지해도 무난히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조현민은 지난해 12월 미국에서 열린 월드컵부터 슬럼프를 겪었다. 미국에서 최하위권인 42위, 곧이어 벌어진 중국 월드컵에서도 최하위 27위를 차지했다. ‘신동’이라던 조현민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조현민(왼쪽)의 아버지이자 코치 역할도 맡고 있는 조원채 씨(오른쪽). 고성준 기자
조원채 씨는 성적 하락의 원인 중 하나로 장비 교체를 꼽았다. 조현민은 저조한 성적을 기록할 당시 낮은 점수를 받은 것이 아니라 경기 중 넘어지며 평가받을 기회 자체를 날려 버렸다. 이에 조 씨는 “대회를 앞두고 급작스럽게 장비 교체를 시도해 아이가 적응을 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팀에서 현민이에게 보드 데크 교체를 요구했다. 현민이는 원래 ‘플랫’이라고 불리는 평평한 데크를 사용하는데 ‘정캠’이라는 약간 구부러져 있는 데크로 교체했다. 그런데 정캠을 사용한 대회에서 모두 넘어졌다”고 설명했다.
2개 대회 연속 넘어지는 실수로 최하위권에 그치자 조 씨는 아들에게 기존 형태의 데크를 보냈다. 익숙한 데크를 사용한 조현민은 지난 1월 미국 콜로라도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18위를 기록했다. 평창올림픽 출전 희망을 이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1월 20일 스위스 락스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또 다시 넘어졌다. 대회에 참가한 35명중 33위였다. 올림픽 출전은 물거품이 됐다. 조원채 씨는 “이전에 두 번 실패했던 전적이 현민이에게 심적 부담이 됐던 것 같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조현민은 국가대표에서 해외 훈련 일정을 이어오다 지난 5일 귀국했다. ‘평창 올림픽 모드’로 들어간 대표팀을 잠시 떠나게 됐다. 덕분에 10년 넘게 자신을 가르쳤던 아버지의 코칭을 오랜만에 받게 됐다. 하프파이프에서 코치와 선수로 재회한 부자는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조 씨는 “2월 말에 다시 국가대표에 복귀할 텐데 그때까지 다시 기초를 잡는 시간으로 생각하고 가르치겠다”고 말했다. 조현민도 “오랜만에 아버지한테 코칭을 받아서 재밌다”며 웃었다. 부자는 이날도 오전 내내 눈 위에서 ‘한바탕’했다.
대표팀 기간이 그에게 상처였던 것만은 아니다. 조현민은 “이전까지 아버지와 둘이서 운동을 하며 돈이 많이 들어갔다. 하지만 국가대표로 활동하면서 아버지가 지출을 줄일 수 있었다”며 아버지 걱정을 했다.
스노보드 국가대표 조현민. 고성준 기자
또 대표팀에서 생활하며 ‘체중 감량 스트레스’가 있었다고 전했다. 조현민은 “국내에서 체력 단련 등을 할 때부터 ‘살 빼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개인적으로는 통통한 내가 보드를 타는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말을 듣고 섭섭하기도 했다. 그래도 미국에서 먹는 라면 맛은 잊을 수가 없다”며 웃었다.
그런가 하면 촬영을 위해 챙이 달린 모자를 벗어달라는 사진 기자의 요청에 “외모에 자신이 없어서…”라고 답하며 사춘기 중학생다운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끝으로 조현민은 “이전에 철이 들었어야 하는데 지금(올림픽 탈락 이후)에서야 철이 든 것 같다. 지금은 나아졌지만 처음엔 분한 마음도 있었다. 감정은 추스른 채 그걸 잊지 않고 스노보드에 집중할 것이다”며 자신을 지켜봐달라고 당부했다.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조현민은 아직 만 15세의 스노보더, 대표팀 내 최연소 선수다. 그의 눈은 이미 앞으로 4년 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향해 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