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시인과 B교수의 아내에 접근 그리고 반성…이문열 소설에선 ‘악령’으로 묘사돼
최영미 시인은 지난해 12월 8일에 나온 계간 문예지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시 ‘괴물’을 발표했다. ‘En선생’이라 불리는 늙은 문인의 성추행을 고발했다. 잠잠했던 이 시가 폭발적인 관심을 받은 건 지난달 29일 서지현 검사(46·사법연수원 33기)가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e-pros)’ 게시판에 올린 글 ‘나는 소망합니다’가 미투 운동(#Me_Too)으로 번지면서부터다. 미투 운동은 지난해 10월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 성범죄 파문을 계기로 들불처럼 번진 여성들의 성범죄 피해 공개 운동이다.
서지현 검사가 남긴 글에는 서 검사가 2010년 10월 30일 한 장례식장에서 안태근 전 검사에게 당한 성추행 의혹 사건을 포함 총 15장 분량이 담겨 있었다. 서 검사는 글을 올린 직후 JTBC 뉴스룸에 나와 성추행 피해 사실을 고백했다. 여론은 폭발했다. 검찰을 넘어 여러 분야로 미투 운동이 퍼졌다. 최영미 시인의 시는 이때쯤부터 주요 소셜 미디어에 공유되기 시작했다.
최영미 시인 역시 얼마 지나지 않은 지난 6일 JTBC 뉴스룸에 출연했다. 그는 “문단 술자리에서 저에게 성추행 행동을 한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고 폭로했다. 이어 “그런데 그런 문화를 방조하고 묵인하는 분위기였다. 제가 그들의 성적인 요구를 거절해서 그들이 나에게 복수한다면 한두 명이 아니고 여러 명”이라고 했다. 최 시인은 또한 “사례가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정말 많다. 여성 피해자들이 아주 많다. 특히 독신의 젊은 여성들이 그들의 타깃이다. 그걸 문제화하면 그 여성 문인은 상을 탈 때 후보에 오르지도 못한다. 신문사 문학 담당 기자들도 일부 가해자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괴물의 정체를 최 시인은 밝히지 않았다. 일요신문은 최영미 시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인터뷰 곤란합니다.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답을 받았다.
고은 시인. 연합뉴스
의문을 자아내던 괴물의 정체는 곧 드러났다. 류근 시인의 폭로로 고은 시인의 이름이 만천하에 공개됐다. 지난 6일 류근 시인은 자신의 소셜 미디어에 “고은 시인의 성추행 문제가 ‘드디어’ 수면 위로 드러난 모양이다. 최영미라는 시인께서 지난 가을 모 문예지의 페미니즘 특집에 청탁 받아 쓴 시가 새삼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놀랍고 지겹다. 60~70년대부터 공공연했던 고은 시인의 손버릇, 몸버릇을 이제서야 마치 처음 듣는 일이라는 듯 소스라치는 척하는 문인들과 언론의 반응이 놀랍고, 하필이면 이 와중에 연예인 대마초 사건 터뜨리듯 물타기에 이용당하는 듯한 정황 또한 지겹고도 지겹다”는 글을 남겼다.
이어 그는 “소위 ‘문단’ 근처에라도 기웃거린 내 또래 이상의 문인들 가운데 고은 시인의 기행과 비행에 대해 들어보지 못한 사람 얼마나 되나. 심지어는 눈앞에서 그의 만행을 지켜보고도 마치 그것을 한 대가의 천재성이 끼치는 성령의 손길인 듯 묵인하고 지지한 사람들조차 얼마나 되나. 심지어는 그의 손길을 자랑스러워해 마땅해야 한다고 키득거린 연놈들은 또 얼마나 되나. 그의 온갖 비도덕적인 스캔들을 다 감싸 안으며 오늘날 그를 우리나라 문학의 대표로, 한국문학의 상징으로 옹립하고 우상화한 사람들 지금 무엇 하고 있나. 때마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고은 시인을 떠밀어 세계인의 웃음거리로 ‘옹립’해 놓고 뒤에서 도대체 어떤 더럽고 알량한 ‘문학 권력’을 구가해 왔나”고 했다.
고은 시인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30여 년 전 어느 출판사 송년회였던 것 같은데, 여러 문인들이 같이 있는 공개된 자리였고 술 먹고 격려도 하느라 손목도 잡고 했던 것 같다”며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해명했다.
고은 시인의 과거사가 세상에 드러나자 이문열 소설가의 단편소설 역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이문열 소설가는 1994년 ‘아우와의 만남’이라는 단편집을 냈는데 거기 ‘사로잡힌 악령’이란 제목의 짧은 소설을 실었다. 최영미 시인의 괴물은 이 소설의 악령과 같다고 알려졌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사로잡힌 악령’은 한 승려 출신 시인의 삶이 그려진 작품이다. 승려였던 주인공은 속세로 돌아간 뒤 커져가는 자신의 영향력과 유명세를 활용해 유명인사와의 만남을 이어간다. 그러는 와중 여성 작가지망생과 친구의 부인에게 관심을 보인다. 문학계의 영향력이 줄어들자 주인공은 민주투사의 길을 걸으며 1970년~80년대 저항문학의 선구자가 된다.
이문열 소설가는 책을 펴내며 서문에 “독자 여러분에게 당부할 게 하나 있다. ‘사로잡힌 악령’을 읽다 보면 어떤 특정한 시인이 떠오를지 모르나 소설은 어디까지나 소설로 읽어 주길 바란다. 내가 더 관심을 가졌던 것은 악에 대한 우리의 심리적 대응 방식이었지 작품의 인물이 아니다”라고 적은 바 있었다.
당시 진보 문인단체인 민족문학작가회의는 당시 이 작품을 가지고 이문열 작가에게 항의했다. 이문열 작가에게 항의했던 민족문학작가회의는 1974년 11월 18일 생겨난 ‘자유실천문인협의회’의 후신이다. 고은 시인은 협의회 대표간사였다. 1987년 9월 17일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민족문학작가회의로 간판을 바꿔 달고 남북통일운동에 주력했다. 북한의 ‘조선작가동맹’과 남북 작가회의를 추진했다. 지금은 한국작가회의란 이름으로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결국 단편집 ‘아우와의 만남’은 ‘사로잡힌 악령’을 삭제한 뒤 다시 세상에 나왔다. 그런 까닭에 현재 판매되는 ‘아우와의 만남’에는 ‘사로잡힌 악령’이 실려 있지 않다. ‘사로잡힌 악령’ 재공개 의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문열 소설가는 “당시 항의 때문에 작품을 내렸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사실 내가 스스로 삭제하자고 했다. 시대를 풍자한 이야기가 퍼지면서 한 사람을 가리키는 소설로 보이는 게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다”며 “다시 낼 일은 없다. 누굴 감싸는 게 아니다. 다만 등단 직후 어릴 때 뒷일을 미처 깊이 생각하지 못했다. 시대의 이야기가 아닌 개인의 이야기로 내 소설이 읽히는 건 여전히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최영미 시인의 괴물과 마찬가지로 이 소설 역시 사실에 기반을 두었다는 게 문학계의 정설이었다. 그 중심에는 A 시인이 있었다. 일요신문이 인터뷰한 문학계 인사 3명의 증언에 따르면 고은 시인은 1964년 A 시인의 아내에게 접근했다. A 시인이 부산에서 지내며 기러기 아빠 노릇을 할 때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데 A 시인이 부산에서의 일을 모두 마무리하고 서울로 돌아 왔을 때 아내는 이미 집을 떠나고 없었다. 그 이유가 고은 시인 때문이라고 한다. 문학계에서도 당시의 일이 꽤 알려져 있었다.
문학계 인사들은 A 시인 외에 고은 시인과 연관된 사건이 하나 더 있다고 밝혔다. 고은 시인은 문학계에서 유명했던 대학교수 B의 아내에게도 다가갔다. 인사들은 “고은 시인이 B 교수의 아내에게 접근했던 건 그가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시절이었다. 이를 지켜 본 B 교수의 동생이 이 사실을 B 교수에게 털어놨다. B 교수는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왔다. 결국 B 교수는 쉰도 안 된 나이에 간질환으로 사망했다. 유학 갔다가 돌아온 뒤 과음으로 죽기 전 몸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았었다”고 했다.
비난의 화살은 고은 시인에게 쏠리고 있다. 하지만 한 원로 작가는 한걸음 떨어져 보자고 했다. 익명을 원한 그는 “문학계에서 고은 시인의 글이 노벨상 감으로 평가 받는 건 아니다. 다만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고은 시인을 노벨상 후보로 치켜세우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염원이 층층 쌓여 탑이 세워졌다. 그가 탑에 올라서자 떨어지는 높이 역시 자연스레 높아졌다. 그냥 조용한 시인이었으면 적당히 비판받고 끝났거나 알려지지 않았겠지만 올라간 만큼 떨어지는 상처와 충격도 더 크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지금은 이런 말을 하는 자체도 비난 받을 세상이다. 고은 시인을 보호하는 것으로, 혹은 문단의 추악한 모습을 두둔하는 것으로 보일까 두렵다. 하지만 A 시인과 B 교수 이야기는 고은 시인이 뉘우치며 스스로 주변 문인에게 반성의 의미로 알렸던 내용이다. 수십 년 전 뉘우치는 목소리에서 나온 고백이 지금에서야 비판 받는 건 참 안타까운 일이다. 아흔이 다 돼가는 늙은 문인에게 너무 가혹한 잣대는 들이대지 않았으면 한다”고 전했다.
일요신문은 고은 시인에게 여러 차례 연락했지만 아무런 답을 받을 수 없었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괴물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K의 충고를 깜박 잊고 En선생 옆에 앉았다가 Me too 동생에게 빌린 실크 정장 상의가 구겨졌다. 몇 년 뒤, 어느 출판사 망년회에서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 En이 내게 맥주잔이라도 던지면 새로 산 검정색 조끼가 더러워질까봐 코트자락 휘날리며 마포의 음식점을 나왔는데, 100권의 시집을 펴낸 “En은 수도꼭지야. 틀면 나오거든 그런데 그 물은 똥물이지 뭐니“ (우리끼리 있을 때) 그를 씹은 소설가 박 선생도 En의 몸집이 커져 괴물이 되자 입을 다물었다.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 괴물을 키운 뒤에 어떻게 괴물을 잡아야 하나. 최영미,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