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충남 연고 옮긴 SG골프, 최정 9단 지역연고 지명 ‘잡음’
2018 여자바둑리그 각팀 감독들이 한 자리에 모여 선전을 다짐했다.
[일요신문] 2018 엠디엠 한국여자바둑리그가 지난 24일 선수 선발식을 갖고 네 번째 시즌 준비를 마쳤다.
올해 여자바둑리그는 지난 시즌 8개 팀에서 한 팀 늘어난 9개 팀이 참가한다. 특히 올해는 여자바둑리그 4년째를 맞아 보호 연한이 풀린 상위 랭커들이 대거 드래프트 시장에 나와 많은 관심이 쏠렸다. 지난해 부광약품에 소속돼 있던 여자랭킹 1위 최정 9단은 충남 SG골프로 팀을 옮겼고, 포스코켐텍을 우승으로 이끌었던 김채영 3단은 부광약품으로, 랭킹2위 오유진은 인제 하늘내린에서 부안 곰소소금으로 옮기는 등 큰 변화가 있었다.
그런데 선수선발 과정에서 여제(女帝) 최정 9단의 행방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게 나와 선수선발의 내막을 따라가봤다.
한국여자바둑리그는 프로야구처럼 지역연고제를 채택하고 있다. 여기에 선수 보호 연한을 두어 지역연고 선수 외에는 한 팀에서 3년 이상 뛰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출범 4년째를 맞은 올해는 처음으로 보호 연한이 풀리는 해. 따라서 큰 폭의 선수 이동이 있을 걸로 예측됐는데 과연 뚜껑을 열고 보니 물밑부터 작업이 뜨거웠다.
2018 여자바둑리그 선수선발식 전경.
사단은 랭킹1위 최정 9단을 두고 벌어졌다. 부광약품에서 3년을 뛰고 드래프트 시장에 나온 최정에게 모든 팀들의 시선이 쏠린 것은 당연한 일. 그런데 올해 지역연고를 경기에서 충남으로 옮긴 SG골프가 최정 9단을 지역연고 선수로 지명하면서 시끄러워졌다.
오정아를 지역연고 선수로 지명한 서귀포와 김다영을 1지명으로 묶은 여수 거북선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이 일제히 반발한 것은 당연하다. 일단 SG골프의 주장은 이렇다. 최정이 충청도 출신이고 SG그룹의 모기업인 충남방적이 이름에서 보듯 충청도에 연고를 두고 있으니 자신들이 최정의 연고권을 주장하는 것은 하등의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다른 팀들의 생각은 다르다. 일단 SG골프의 저의를 의심스럽게 생각한다. 2016년 여자바둑리그에 뛰어든 SG골프는 처음 경기도를 연고지로 선택했다. 그런데 지난해 갑자기 경기도에서 충남으로 연고를 옮기더니 올해 최정을 자신들의 지역연고 선수라고 주장하는 것은 명백히 최정을 얻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것이다. 만일 충남이 원래 연고 지역이라면 창단 때부터 충남으로 출발했어야 하는데 경기로 출발했다가 도중 충남으로 옮긴 것은 누가 봐도 최정을 공짜로 얻기 위한 술수라는 것이다.
또 최정이 출생만 충청도에서 했을 뿐 실질적으로 자란 곳은 경북과 전남(데뷔 때 최정의 부친이 이렇게 밝혔다)여서 최정의 충남 연고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3명 출전에 2승이면 승리하는 여자바둑리그에서 최정 9단이 있느냐 없느냐는 팀 전력상 천지 차이다. 최정은 2016년 14승 2패를 거둬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2017년에도 16승 2패로 다승1위를 기록했다. 쉽게 말해 최정을 보유하고 있으면 세 판 중 한 판을 거저먹고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결국 갑론을박 끝에 최정 9단을 올해까지만 충남 SG골프 선수로 인정하되 내년엔 지역연고 제도를 다시 손보는 것으로 봉합됐지만, 이 문제는 내년에도 팀 간 첨예한 대립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왜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일까. 여러 문제가 산적해 있지만 전문가들은 (재)한국기원(총재 홍석현)이 바둑리그를 비롯해 여자바둑리그, 시니어리그, 프로암리그 등 많은 리그제를 도입했으면서도 타 스포츠 종목처럼 ‘구단제’를 도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는다.
한국바둑리그가 10년을 넘고 여자바둑리그도 4년째에 접어들지만 국내 바둑계는 단 하나의 구단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역시 리그제를 운영 중인 중국이 중국기원 관여 없이 중국 갑조리그를 구단제로 운영하고 있는 것과는 상반되는 상황이다.
한 바둑 관계자는 “타 종목과 달리 프로기사가 한국기원에 소속돼 있는 우리 현실에서 한국기원이 구단제를 도입하기 어려운 것은 안다. 하지만 리그가 고스톱 판도 아니고 매년 선수가 이리저리 바뀌고, 팀이 전력 향상을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 기형적인 제도는 하루빨리 고쳐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마 무대인 내셔널바둑리그도 전력 강화를 위해 기존 보유 선수를 포기하거나 타 팀의 좋은 선수에게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해 영입하려는 노력을 한다. 그런데 한국기원에서 운영하는 모든 리그는 제비뽑기를 잘하는 것 외에 전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감독이 할 수 있는 최선이 오더를 잘 짜 상대 에이스에게 5지명 선수를 붙이는 것이니 갈수록 팬이 외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익명을 요구한 여자바둑리그의 한 관계자도 “사실 우리 팀 구단주는 여자바둑리그에 처음 들어올 때 타 종목처럼 당연히 구단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고 한다. 선수도 뽑고 연봉과 보너스도 지급하고, 어린 선수를 뽑아 잘 관리해서 유망주를 키울 계획이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막상 참가하고 보니 ‘참가비’ 일정 금액만 한국기원에 납부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구조여서 허탈했다고 한다. 드래프트에서 감독이 제비뽑기를 잘하는 것 외에 전력을 강화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재)한국기원이 입버릇처럼 ‘구단제’를 말하면서도 단 한 건도 성사되지 않고 있는 것은 운영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구조 탓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오너가 없다보니 절박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고, 이사장이나 총재도 직함에나 관심을 둘 뿐 바둑 발전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올해 여자바둑리그에서도 도입에 실패한 ‘구단제’. 과연 팬들은 언제쯤이나 돼야 볼 수 있게 될지 궁금하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