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종교배 실험…6월 고사 성적 따라 성패 갈린다
유승민 바른정당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월 13일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에서 열린 바른미래당 출범대회에서 개회를 알리고 있다. 임준선 기자
하지만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을 각각 이끌고 있던 안철수와 유승민, 두 사람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두 당이 마침내 합당에 성공해 2월 13일 바른미래당이 공식 출범한 것이다.
순탄한 결혼 생활이 가능할까? 의문부호도 꼬리를 물고 있다.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성격차가 너무 심하다” 등 외부에서는 이런 저런 이유의 이혼 사유를 쏟아내고 있다.
당장 몇달 후 첫 고비가 찾아올 것으로 보인다. 6월 지방선거에서 뭔가 보여줘야 하는 큰 숙제를 바른미래당은 안고 있는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제대로 된 성적을 내보이지 못할 경우, 2020년 총선을 걱정한 의원들이 동요를 일으키고 결국 파경을 맞고 말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도 크게 나오는 중이다.
# 마침내 웨딩마치 울리다
양가의 반대가 심했지만 일단 소박한 살림으로 결혼식을 올렸다. 원내 30석 규모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2월 13일 국회에서 수임기관 합동회의를 열어 주요 당직자 인선을 포함한 합당 안건을 의결했고 이어 같은 날 오후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출범대회’에서 합당안을 추인한 뒤 바른미래당 창당을 공식 선언했다.
합당의 주역 중 한 명인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합당과 동시에 대표직을 내려놓고 2선으로 물러났다. 초대 공동대표에는 안철수 대표 대신 국민의당 박주선 국회부의장이 선임됐다.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는 지휘봉을 놓지 않고 박주선 부의장과 함께 공동대표가 됐다.
공동대표 체제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당직은 국민의당 출신, 바른정당 출신에 사이좋게 골고루 배분됐다. 원내대표는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지낸 김동철 의원이, 정책위의장은 바른정당 출신 지상욱 의원이 맡았다. 최고위원은 바른정당 몫으로 정운천·하태경 의원과 국민의당 몫으로 김중로·권은희 의원이 선임됐다. 사무총장에는 국민의당 출신 이태규 의원이, 사무부총장에는 바른정당 출신 김성동 전 의원이 선출됐다.
당헌에 ‘자유 민주주의와 공정한 시장경제’, ‘굳건한 국가안보와 평화통일지향’, ‘진영 정치와 지역주의 극복’, ‘정의롭고 따뜻한 대한민국’을 명시했다. 당의 4대 핵심 가치로는 ▷민생이 우선인 정치 ▷굳건한 안보로 평화통일 기반을 다지는 정치 ▷정의를 통한 통합과 개혁의 정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세상을 여는 정치를 내걸었다. 당의 간판을 봐서는 중도를 표방했지만 보수 색깔을 띄고 있는 것으로 읽힌다.
정치권에서는 바른미래당이 우리 정치사에서 사상 초유의 실험에 나섰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정치공학적으로는 도저히 맞지 않는 커플이지만 합당에 성공한 사례로서, 그 결과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민주당)에서 떨어져 나온 국민의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과정을 거치며 자유한국당 탈당파가 결성한 바른정당의 결합은 ‘이종교배’다.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정치세력과 영남을 기반으로 했던 정치세력이 처음으로 손을 맞잡은 영호남 동거 정당이라는 의미도 있다. 이런 연장선에서 1990년 3당 합당 이후 최대의 정치권 지각 변동이란 지적도 있다.
특히 안철수 전 대표와 유승민 대표가 대한민국 정치권에서는 개별 정치인의 자력으로 도저히 극복하기 힘든 ‘지역구도’를 과감히 던져버리고 ‘새정치에 대한 실험’에 나섰다는 긍정적 평가도 나오는 중이다. 이 과정에서 안 전 대표와 유 대표가 보여준 ‘결기’는 두 정치인에게 따라다녔던 나약한 정치인 상(像)을 완전히 벗겨 버리고 국민들에게 ‘카리스마’ 이미지를 새로이 심었다는 시각도 있다.
# 추가적 정계개편 신호탄인가?
새해가 밝자마자 이뤄진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 즉 바른미래당의 공식 출범은 대한민국 정치구도에서 이제 양당제가 완전히 끝나는 것 아니냐는 시각으로 연결되고 있다. 30석 규모의 새 원내교섭단체가 나옴으로써 다당제의 고착화가 이뤄질 가능성이 만들어진 것이다.
20대 총선과 지난 대선을 거치며 구축된 민주당, 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4개 교섭단체 지형은 앞서 바른정당 소속이던 의원들이 지난해말 자유한국당으로 대거 복귀하면서 사라졌다. 이때만해도 자유한국당이 바른정당을, 민주당이 국민의당을 결국 흡수하는 것 아니냐는 예측이 나왔다. 본래 구도인 양당제로의 회귀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었다.
하지만 안철수, 유승민 두 정치인은 ‘합당 카드’를 들고 나왔고 결국 이에 성공하면서 3개 교섭체제의 ‘새 다당 구도’가 만들어졌다. 양당제로의 회귀가 전격 차단된 것이다.
통합에 따른 원내 의석수 변화로 민주당과 한국당의 원내 전략도 더 복잡해졌다. 바른미래당이 분명한 캐스팅보트 세력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구도를 감안할 때 향후 정치권은 더 큰 변동성을 쌓아갈 것으로 보인다. 국회 내에서 확실한 주도 세력이 없기 때문에 ‘주도 세력화’에 대한 갈증 때문에 정계개편이 상시화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진행된 이번 정계개편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바른미래당의 출범으로 국회 의석수는 민주당 121석, 한국당 116석, 바른미래당 30석, 민평당 14석, 정의당 6석, 민중당·대한애국당 1석, 무소속 4석(정세균 국회의장, 이정현·손금주·이용호 의원)으로 재편됐다. 민주당과 민평당, 정의당, 민중당에 정세균 국회의장을 포함해 상대적으로 진보 성향에 가까운 손금주, 이용호 의원까지 포함한 범진보 의석수는 145석이다. 반면 바른미래당을 범보수로 분류한다면 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을 합치면 146석, 이정현 의원과 대한애국당까지 합치면 148석으로 재적(293석) 과반을 넘어선다.
그러나 바른미래당 소속 비례대표 이상돈, 박주현, 장정숙 의원은 공식적으로 민평당 합류를 희망하지만 탈당할 경우, 의원직을 상실해 당적을 유지하고 있다. 때문이 이들은 범진보로 분류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 사실상 국회내에서 양 진영의 세력은 백중세다.
한 현역 의원은 “바른미래당이 중도 성향을 내세우지만 민평당이 떨어져 나감으로써 표의 확장성을 위해선 향후 점점 보수 쪽으로 기울어갈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집권 여당으로서 원내 1당 확보가 절실한 민주당 입장에서도 또 다른 세력을 모아야 한다. 글자 그대로 진보 세력 결집인데, 향후 원내 세력의 극대화를 위한 여야의 이합집산이 더 심해질 수 있을 것으로 보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 바른미래당의 향후 생존 가능성은?
바른미래당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는 6월 지방선거의 문턱을 넘어야한다. 6·13 지방선거에서 세과시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방선거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낸다면 제대로 된 정당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길이 생긴다.
초대 당 대표가 된 유승민 공동대표도 취임 일성으로 지방선거 승리를 약속했다. 유 대표는 2월 13일 오후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린 출범대회에서 “전국의 모든 광역과 기초 지역에 후보를 내겠다”고 선언했다.
지방선거와 관련해 최대 관심사는 안철수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와 당선 여부다.
안 전 대표는 합당 하루 전인 2월 12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지방선거 승리와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당의 미래를 위해 다른 역할이 주어지면 열심히 할 것이다. 내일부터 당 대표는 아니지만, 바른미래당의 성공과 미래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다. 이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이 마무리되고 새로운 지도부가 출범하고 나면 이제 저도 거취를 고민해보겠다”고 언급, 출마 가능성을 열어뒀다.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각종 여론조사에서 50% 안팎의 높은 지지를 받으면서도 박원순 시장에게 후보 자리를 양보했기 때문에 이번에 도전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그 인기가 유지될지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보는 이가 많지 않다. 만약 안 전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한다면 정치인 안철수로서의 위상은 물론, 바른미래당도 치명타를 입게 된다.
여론조사 지지율이 높게 나오지 않는다면 ‘최후의 수단’을 쓸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서울시장 후보를 못 구하고 있는 자유한국당과의 일시적 선거 연대다. 서울시장 후보가 마땅치 않은 한국당으로서는 안철수 카드를 통해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안도 있는 것이다.
유승민 대표는 지방선거 출마보다는 당 공동대표로서 본부 지휘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유 대표는 최근 기자와 만나 “대구시장에는 나가지 않겠다. 정치를 처음 하는 참신한 경제전문가를 대구시장으로 내세우기 위해 지금 훌륭한 인물을 열심히 찾고 있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대구시장 후보 인물난에 빠진다면 당에서 유 대표까지 대구시장 후보로 밀어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오지만 실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당선을 확신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의석 한 자리를 날리는 모험을 감수하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바른미래당 입장에서는 이번 지방선거가 쉽지 않은 싸움이다. 당의 간판 후보가 될 안철수 전 대표조차 당선을 확신하기 어려울 정도로 후보난은 물론, 후보 경쟁력도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안 전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에서 패하고 다른 광역단체장 자리도 얻지 못한다면 바른미래당은 급격히 무너질 수 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창당일이 2016년 2월 2일, 2017년 1월 24일이라 각각 2년, 1년 만에 당의 간판을 내리는 것만 봐도 신생 정당이 정치판에서 살아남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바른미래당에 대한 ‘공격’도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바른미래당이 과감하게 지역 구도를 버렸지만 근본적으로 우리 정치 지형은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어 이 부분에서 표를 많이 잃어버릴 가능성도 있다.
우선 자유한국당이 영남에서 ‘배신자 프레임’을 가동해 파상공세를 펼치면 보수적 유권자들이 중도로 발을 옮겨줄지가 미지수다. 호남에서도 새로이 만들어진 민평당이 지역 정서에 기대고 있어 바른미래당의 입지는 좁다. 민평당은 호남의 3개 광역단체장 싹쓸이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 전직 국회의원은 “바른미래당이 지역주의 타파를 기치로 내걸었으니 수도권에서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젊고 패기 있고, 인지도까지 갖춘 후보를 수도권에서 낼 수 있다면 민주당과 한국당의 양당 구도에 염증을 갖고 있는 표심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방선거 출마 희망자들이 ‘고정표’를 갖고 있는 민주당과 한국당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해 제대로 된 후보가 바른미래당의 문을 노크하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안철수-유승민이라는 전국적 지명도를 가진 정치인들이 설 연휴때부터 ‘바른미래당’ 바람을 본격적으로 일으키는 작업에 총력전을 편다면 의외의 폭풍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많은 자리를 얻지는 못해도 바람몰이에 성공한다면 민주당이나 한국당 의원 일부를 흡수하는 세력으로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경철 매일신문 서울 정경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