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동계아시안게임 골드로 관심 증대…‘한국 컬링 메카’ 경북 의성센터 건립 한몫
공식 연습에서 신중하게 투구중인 대한민국 여자 컬링대표팀 김경애. 연합뉴스
[일요신문] 많은 우려속에서도 순항중인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개회식 이전부터 열린 컬링 종목 예선 경기로 막을 올렸다. 자연스레 대한민국 대표팀 경기에 많은 시선이 쏠렸다. 믹스더블(혼성 2인 경기)에 나선 장혜지-이기정 조는 대회 분위기를 주도하며 스타덤에 올랐다. 경기를 지켜보던 이들은 선수들의 표정과 몸짓 하나에도 집중했고 자연스레 컬링 종목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믹스더블 경기 외에도 컬링은 남녀 각각 단체전 경기를 치른다. 흥미로운 점은 이번 대회에 나선 컬링선수 12명 전부가 경상북도체육회 소속이라는 것이다. 경북체육회는 어떻게 국가대표 엔트리를 ‘독점’할 수 있었을까.
올림픽 초반 분위기를 주도한 컬링 믹스더블 대표팀 장혜지-이기정 조. 연합뉴스
올림픽에 나선 컬링 국가대표팀 12인 전원을 배출한 경북체육회의 비결을 들어보기 위해 지난 13일 오후 체육회 사무실을 찾았다. 선수들이 올림픽이라는 큰 대회에서 주목을 받아 ‘축제 분위기’가 연출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사무실 분위기는 오히려 차분했다.
김응삼 경북체육회 체육진흥부장은 “처음 대표팀이 꾸려졌을 땐 도내에서 축제 분위기였다. 그리고 지금 대회에서 우리 선수들이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으니 보람도 느껴진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기쁜 내색도 잠시, 그는 “성과에 대한 부담감도 있는 게 사실이다. 선수들도 부담을 느낄 것이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지 않나. 우리도 선수들에게 부담을 줄까봐 현장에 전화도 안하고 멀리서 지켜만 보고 있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대표 선발 과정
대한민국 컬링은 지난 2014 소치 대회에서 처음으로 올림픽 무대에 선을 보였다. 당시 올림픽에 나선 팀은 경기도(여자)와 강원도(남자) 팀이었다. 당시 대회에 나섰던 선수들도 컬링이 생소한 대중들에게 신선함을 어필하며 관심을 끈 바 있다.
소치 올림픽에 나서지 못하게 된 당시 경북 팀은 실망이 컸다. 저변이 넓지 않은 국내 컬링 무대에서 경북은 태권도의 한국, 유도의 일본과 같이 ‘컬링 종주 지역’이라고 자부해왔기 때문이다. 김 부장은 “당시 국가대표 선발전이 있기 전까지 우리가 국내 대회에서 4관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5번째 대회인 대표 선발전에서 딱 한 번 졌다. 그렇게 국가대표에서 탈락했다”고 설명했다. 이 과정은 선수들에게 아픔인 동시에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한 선수들은 4년의 준비를 거쳤다. 일부 멤버의 교체가 있기도 했다. 4년 전 팀의 주축 선수였던 김민정 감독은 여자팀 지휘봉을 잡고 대회에 나섰다.
그 사이 선발전 방식이 변경됐다. 풀리그로 진행됐다. 한두 번의 실수가 있더라도 만회할 기회가 주어졌다.
종목도 추가됐다. 소치 대회까지 올림픽에서 남녀 단체전만이 치러졌지만 믹스더블 종목이 새로 추가됐다. 이 과정에서 경북 팀의 발 빠른 대처가 돋보였다. 김 부장은 “소치 대회가 끝나고 1~2년 후에 믹스더블 종목이 추가되는 것이 확정됐다. 우리는 해외 단체와 교류 중이어서 이를 미리 알게 됐다. 즉시 우리 팀에 믹스더블 팀을 구성했다. 남들보다 빠르게 준비를 했기에 믹스더블에도 우리 팀을 출전시킬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 컬링의 성지, 의성
이처럼 경북팀이 국가대표팀 선수 전원을 배출할 수 있었던 데는 의성군에 있는 컬링센터의 존재가 절대적이다. 의성컬링센터는 대한민국에 최초로 지어진 컬링 경기장이다. 김 부장은 컬링센터에 대한 자랑을 침이 마르도록 늘어놨다.
“우리 컬링센터가 국제규격이라고 하는데 다른 것보다도 아이스 수준은 국내 최고를 자랑한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캐나다와 원격으로 아이스가 관리된다. 물론 진천 선수촌에 있는 링크도 수준은 높지만 아이스만큼은 의성이 뛰어나다고 자부한다. 자연스레 선수들 기량도 늘 수 있다.”
컬링센터는 2010년과 2016년 국제대회를 개최하며 의성이라는 소도시에도 외국인들이 방문하게 만들었다. 사진=의성군청
경북도내에 컬링 시설을 만들자는 공감대는 2003년 형성됐다. 후보지가 의성으로 좁혀졌고 관계자들의 캐나다 견학 등 절차를 거쳐 2006년 컬링센터를 완성할 수 있었다.
경북체육회 소속인 현재 국가대표팀 선수들에게 의성컬링센터는 홈 경기장과 같다. 이들 대다수는 의성여고, 의성고 출신으로 학생 시절부터 컬링센터를 드나들었다. 센터 건립 이전까지 대구지역 일반 아이스링크 등을 전전하며 컬링 훈련이 이뤄졌다. 아이스링크 운영이 끝나는 밤 11시까지 기다려야 훈련을 할 수 있었고 일정을 마치고 나면 새벽 2~3시는 기본이었다. 새벽 5시가 넘어 귀가한 선수들은 녹초가 되기 일쑤였다. 김 부장은 “그런 선배들의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현재 선수들의 영광도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왜 경북일까
왜 경상북도는 컬링에 관심을 갖고 훈련장을 짓게 됐을까. 이에는 김경두 전 경북과학대 교수의 역할이 컸다. 레슬링을 전공하고 체육 교사로 재직하다 대학 강단에도 선 그는 레슬링에서 손을 떼며 컬링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컬링이라는 종목이 국내에서 전혀 알려진 바 없던 시절이었다. 김 전 교수의 동생인 김경석 씨는 체육교사로 근무하며 현재 컬링 국제심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번 올림픽에서도 심판으로 나선다.
경북과학대 학생들을 위주로 팀이 꾸려졌고 이들은 2003년 아오모리 동계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하는 ‘사고’를 쳤다. 대한민국 동계스포츠 단체종목 사상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이었다. 이는 경북 내에서 컬링에 대한 관심을 증폭 시키는 계기가 됐다. 금메달에 따른 병역 혜택도 관심 증대에 한몫 했다. 이 금메달이 의성컬링센터의 건립까지 이어지게 됐다.
이처럼 오랜 기간 컬링에 공을 들여온 경북도이기에 전원을 국가대표로 배출한 결과는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김 부장은 “앞으로는 이런 상황이 다시 나오기 힘들고 나와서도 안 된다. 한국 컬링의 수준이 높아지면 경쟁도 치열해진다. 자연스레 다양한 지역에서 국가대표가 배출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현재 한창 대회를 치르고 있는 선수들에 대해서는 “우리가 일정을 짠 것도 아닌데 믹스더블이 대회 첫 경기로 배치되며 우리 선수들이 주목을 받았다”면서 “아이를 입시 현장에 보낸 부모 마음 같다. 기도를 할 것이냐 잔치를 할 것이냐인데, 기도하는 마음에 가까운 것 같다. 좋은 결과 위해서 국민들도 많은 응원 보내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월드클래스 코치’가 돕는 컬링 대표팀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 참가하고 있는 컬링 대표팀에는 세계적 수준의 코치가 합류했다. 캐나다 출신 짐 코터 코치는 대회 직전 믹스더블 대표팀을 지도했다. 코터 코치는 컬링 경력 20년 이상의 캐나다를 대표하는 선수다. 코터 코치뿐만이 아니다. 대회 이전에는 지난 소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라이언 프라이가 대표팀 선수들을 찾았다. 이 같은 해외 우수 지도자 초청은 오랜 시간 지속돼 온 컬링 대표팀의 전력 강화 방안이다. 이번 대표팀 엔트리 12인 전원을 채운 경상북도체육회의 김응삼 체육진흥부장은 “경북체육회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외국인 지도자 초청을 도입했다”면서 “국가대표팀도 과거부터 외국인 지도자 초청을 해왔다. 과거엔 컬링연맹 예산만으로 진행됐지만 더 수준 높은 지도자를 모시기 위해 우리도 지원금을 보태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 |
컬링만의 커뮤니케이션? 가족으로 얽히고설킨 컬링 대표팀 컬링 대표팀 12인은 전원이 경상북도체육회 소속이다. 이들을 지도하는 국가대표 감독 또한 기존 실업팀 지도자가 그대로 지휘봉을 잡았다. 그야말로 경북체육회 컬링팀이 국가대표팀에 ‘이식’된 것. 축구나 야구 등 다른 종목은 여러 팀의 우수 선수를 선발해 팀을 구성한다. 반면 컬링은 기존 팀이 그대로 국가대표 자격을 얻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는 종목 특성상 선수간 커뮤니케이션과 호흡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의도를 알아차려야 하는 컬링은 유난히 ‘가족 선수단’이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이번 대표팀 또한 마찬가지다. 가장 가까이서 호흡을 맞추는 여자팀의 김영미-김경애는 자매지간이다. 이들은 의성여고 시절부터 주니어 대표팀 등을 함께 거쳐왔다. 믹스더블의 이기정과 남자팀 이기복은 쌍둥이 형제다. 이들은 소양중에서 컬링을 시작해 춘천기계공고 시절에도 호흡을 맞췄다. 믹스더블 장반석 감독과 여자팀 김민정 감독은 부부 사이다. 또한 김민정 감독은 동생이 대표팀에 발탁돼 가족 2명이 대표팀에 있다. 김 감독의 동생 김민찬이 남자팀 선수로 경기에 출전한다. [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