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TF 구성 새 컨트롤타워 세우기?
삼성생명은 얼마 전 임원 인사·조직개편을 통해 ‘금융경쟁력 제고 TF’를 신설했다. TF장에는 미전실 출신 유호석 전무(55)를 임명했다. 전자 계열사, 비전자 제조 계열사에 이어 금융 계열사까지 총괄 TF를 만든 것이다.
이재용 부회장 석방 직후 단행된 삼성 금융계열사 인사에서 옛 미래전략실 출신 인사들이 요직에 두루 배치됐다. 사진은 삼성생명 서초사옥 전경. 고성준 기자
금융권은 이 TF가 사실상 옛 미전실처럼 삼성의 금융계열사들을 총괄하고 현안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고 있다. 눈에 띄는 점은 유호석 전무를 비롯해 옛 미전실 금융일류화추진팀 멤버들이 이번 인사에서 전면으로 나왔다는 대목이다. 금융경쟁력 제고 TF 외에도 미전실 출신 임원들이 이번 인사에서 많이 승진했다. 전무에서 승진한 이승재 삼성생명 부사장과 장석훈 삼성화재 부사장, 상무에서 승진한 박종문 삼성생명 전무가 모두 미전실 금융일류화팀 출신이다. 이승재 부사장은 금융일류화추진팀에서 기획전무를, 장석훈 부사장은 인사전무를 담당했다.
장석훈 부사장은 삼성증권 최고재무책임자(CFO)를 맡기로 했다. 전영묵 부사장이 삼성자산운용 대표로 이동하면서 공석이 된 자리다. 장 부사장은 1995년 삼성증권에 입사해 2010년 전략인사실장, 2013년 말 삼성화재로 옮겨 인사팀 담당 임원으로 승진한 대표적 ‘인사통’이다. 재무 전문가는 아니지만 미전실 출신이 CFO를 맡으면서 금융경쟁력제고 TF와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도 최인철 삼성생명 상무와 남대희 삼성화재 상무가 일제히 전무로 승진했다. 상무로 승진한 조태현 삼성생명 수석도 미전실 출신이다.
금융계열사 부사장 중에서는 정준호 삼성카드 리스크관리실장(부사장)이 미전실 금융일류화추진팀 출신이다. 최신형 삼성생명 CPC전략실장(부사장)도 미전실 전신인 전략기획실에서 근무했다.
박종문 삼성생명 전무도 금융일류화추진팀에서 경영지원을 담당했다. 미전실이 해체된 후 그는 지난해 6월 삼성생명 CPC전략실장으로 발령이 났다. 최인철 전무도 미전실 커뮤니케이션팀 임원을 하다 삼성생명 기획실 담당으로 보직을 이동했다.
남대희 전무는 2010년부터 삼성생명 커뮤니케이션실을 이끌다 2014년 삼성전자로 이동하면서 미전실 업무를 담당했다. 지난해 3월 미전실이 해체되면서 삼성생명으로 복귀했다가 삼성화재 기획실로 자리를 옮겼다. 조태현 상무는 미전실에서 삼성생명으로 적을 옮긴 이후 줄곧 영업지원단장을 맡아왔다.
금융일류화추진팀은 2004년 그룹 내 금융경쟁력 강화를 위한 태스크포스(TF)로 출범했다. 2015년 말 TF에서 미전실 소속 정식 팀으로 편입됐다. 이곳에서 금융계열사의 지배구조 개편과 금융지주회사 전환, 보험계열사의 자본확충계획 등 핵심 사안이 진행됐다.
삼성 안팎에서는 미전실 출신 임원들을 중심으로 계열사 개편은 예고된 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여러 회사들의 이슈를 조율해야 하는데, 이런 업무를 담당했던 미전실 출신 중용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삼성그룹이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고 미전실이 해체된 이후 1년여간 쌓인 인사 적체 피로감을 해소하고 조직을 일신하는 효과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기존 미전실 주역들이 새로운 TF를 구성하며 새로운 컨트롤타워를 세우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된다. 부피만 줄어들었을 뿐 미전실 출신 TF장이 모여 그룹 전체 현안을 논의하면 이전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TF가 내년 시행을 앞둔 금융당국의 금융그룹 통합감독제도에 선제 대응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내년부터 금융지주사가 아니면서 금융계열사를 두고 있는 금융그룹에 대해 통합감독을 한다고 예고했다. 이에 따라 내년부터 삼성과 현대차 등 7개 금융그룹을 통합 감독하기로 했다. 기업집단 소속 금융그룹의 동반 부실화를 막기 위한 정책으로, 감독 대상 기업들 입장에선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삼성은 규제 대상 기업 중 가장 고민이 큰 곳이다.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들의 지분이 복잡하게 얽힌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은 금융그룹 통합감독이 시행되면 이 같은 구조 탓에 자본 확충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때문에 비금융 계열사의 지분 처리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삼성 측은 이러한 시선을 다소 불편해하는 눈치다. 삼성 금융사 관계자는 “TF는 금융계열사끼리 협의체 개념으로 운영될 예정으로, 앞으로 금융계열사의 공통 현안을 조정·협의하고 중장기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시너지 창출 방안을 마련하는 일을 담당할 계획”이라며 “제2의 미래전략실이나 컨트롤타워의 역할을 하기보단 금융사 중장기 사업 운영을 이끌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영복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