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크로 사용해 조작” VS “문슬람 댓글도 문제”…지방선거 박빙지역 승패 좌우할 수도
대책단이 제공한 매크로 프로그램 시연장면 동영상 캡처화면.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여야 모두 상대 진영이 댓글조작을 시도하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디지털소통위원회 댓글조작·가짜뉴스법률대책단(대책단)은 지난 1월 31일 네이버 기사 댓글조작을 위해 매크로(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하는 프로그램)를 사용한 의심 정황을 수집해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했다.
대책단 조용익 단장은 “댓글조작이 있었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있었다. 조작이 의심되는 정황들을 모아 경찰에 수사 의뢰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조작이 있었다면 주도하는 세력은 어디라고 보느냐는 질문에는 “그것은 우리도 알 수가 없다. 짐작되는 곳이 있어도 증거도 없이 짐작을 말할 수는 없다. 다만 일부 야당 지지성향 사이트에서 매크로를 이용하는 방법 등을 설명한 게시물은 여러 차례 발견했다. 조직적인 움직임이라고 의심할 만한 정황은 분명히 있었다”고 말했다.
대책단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1월 17일에는 새벽 2시가 넘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30분가량 댓글에 대한 ‘공감 수’가 기계적으로 늘어나는 모습이 포착됐다. 대책단은 네이버 공감 조작 매크로 프로그램을 구해 테스트해봤더니 프로그램을 사용했을 때 지난 1월 17일과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대책단 측은 당시 프로그램을 테스트했던 동영상도 공개했다.
네이버 댓글은 공감 수가 많은 댓글을 상위에 노출시키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공감 수가 중요하다. 또 특정 사이트에서는 댓글 작업을 하기 위한 아이디를 사고파는 게시글도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재 네이버는 댓글 조작을 막고자 계정 1개로 하루에 쓸 수 있는 댓글을 20개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3일간 네이버 포털사이트 정치 기사를 모니터해봤다. 최초 송고 시에는 여당에 유리한 댓글들이 달렸으나 몇 분 사이에 이를 비판하는 댓글로 완전히 뒤바뀌는 사례가 몇 차례 목격됐다.
반대 사례도 있다. 같은 시각 SNS에서는 여당 지지자들이 해당 기사 링크를 게시하며 댓글 작업을 독려하고 있었다. 야당 지지자들은 이를 ‘문슬람이 양념 친다’고 표현한다. 문슬람은 문재인+이슬람의 합성어로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들이 이슬람교 신도들처럼 맹목적이라는 점을 비판하는 단어다. 양념은 문 대통령이 지난 대선 경선 과정에서 지지자들의 악성댓글을 ‘경쟁을 더 흥미롭게 하는 양념 같은 것’이었다고 발언하면서 생긴 신조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한국당) 대표는 지난 1월 “문슬람 댓글은 적법한가”라며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여당 지지자들은 달빛기사단, 문꿀오소리 등의 커뮤니티, SNS계정 등을 통해 댓글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운영자가 특정기사의 좌표(기사 링크)를 게시하면 회원들이 몰려가 댓글을 다는 방식이다.
달빛기사단 SNS 운영자가 팔로워들에게 댓글 비공감 클릭을 유도하는 장면.
이들은 점조직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달빛기사단만 해도 비슷한 이름의 커뮤니티나 SNS계정이 수십 개에 달한다. 달빛기사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네티즌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유미현 씨다. 트위터에서 ‘사월이’(@windofapril)이란 아이디로 활동하고 있는 유 씨는 지난 1월 실명으로 언론 인터뷰에 나서기도 했다.
언어 치료사인 유 씨는 인터뷰에서 “언론 기사들을 24시간 모니터링하며 밤새 댓글방어를 한다”고 밝혔다. 유 씨는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하는 일”이라며 “오히려 민주당 의원들 후원금도 낸다”고 밝혔다. 일요신문도 인터뷰를 요청하려 트위터를 통해 메시지를 보내봤지만 유 씨는 다짜고짜 기자 계정을 차단해버렸다.
일요신문은 다른 달빛기사단 SNS페이지를 운영하고 있는 관리자와 인터뷰를 진행해봤다. 관리자는 평범한 고속버스 운전기사였다. 민주당 권리당원이긴 하지만 정치권과는 별다른 인연이 없는 일반 시민이었다.
관리자는 “장거리 운전을 하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다. 시간 날 때마다 글을 올리고 회원들을 관리한다”고 말했다. 달빛기사단으로 활동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당연히 보상도 없고 보상을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좋아서 하는 일이고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일”이라며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신 일이나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팠다.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서 시작한 일”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 지지자들의 조직적인 댓글이 민심을 왜곡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우리는 불법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것도 아니고 회원들이 아무런 보상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댓글을 달고 있다. 우리의 의견을 적극 표출하는 것뿐이지 민심 왜곡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문 대통령과 여당이 지금까지 비판받을 만한 잘못을 한 게 없지 않나. 우리의 목소리가 민심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댓글은 여론에 정말 영향을 끼칠까. 여론조사전문기관 리얼미터 권순정 조사분석실장은 “당연히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수가 하는 행동을 따라하려는 군중심리가 작용해 여론이 변화하는 것이냐는 질문에는 “이런 현상을 군중심리라고 하기는 그렇고 원래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판단하려는 심리가 있다”고 말했다.
권 실장은 “댓글은 주로 20~50대에 영향을 미친다. 인터넷을 거의 이용하지 않는 60대 이상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면서도 “특정 진영을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댓글이 몇 주 동안 계속된다고 하면 대통령 지지율로 따졌을 때 2~3% 정도는 쉽게 움직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댓글조작 논란이 일자 네이버 한성숙 대표는 지난 2월 22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뉴스와 댓글 정책을 전면적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한 대표는 “지난해 네이버가 수많은 정보가 유통되는 플랫폼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을 뼈저리게 느꼈다”며 “아직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댓글 서비스를 바꾸는 방안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특히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라 여야 모두 댓글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댓글만으로 선거 판세를 아예 뒤집을 수는 없겠지만 박빙인 지역의 경우 얼마든지 승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 실제로 조작이 일어나고 있다면 이를 방지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