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가르는 12폭포 콸콸콸
▲ 내연산 12폭포 중 바라만 봐도 가슴이 뻥 뚫리는 연산폭포(왼쪽)와 관음폭포에서 연산폭포로 가는 트레커의 모습(오른쪽). | ||
삼척 덕풍계곡이나 울진의 왕피천 등이 가이드가 필요한 전문 트레킹 코스라면 이곳 내연산은 호젓한 등산로를 따라 폭포를 감상하거나 혹은 맑은 계류에 탁족을 즐기는 초보자 중심의 트레킹 코스라 할 수 있다. 거침없는 폭포수 위로는 커다란 나무 그늘과 시원한 바람이, 그리고 넉넉한 바위 아래서의 달콤한 낮잠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아울러 특급호텔 부럽지 않은 시원함으로 여름의 대미를 장식할 폭포트레킹 명소들도 함께 소개한다.
12폭포가 있다는 내연산(710m)은 포항에서 북쪽으로 약 30km 떨어진 곳에 있다. 내연산과 함께 문수산 향로봉, 천령산 등의 준봉들이 12폭포를 중심으로 둘러 있다. 그 12폭포 주변을 일명 ‘보경사계곡’ 혹은 ‘청하골’이라고도 부른다. 트레킹은 신라시대 고찰 보경사에서 시작한다.
보경사는 신라 진평왕 때 명지 대사가 중국에서 불경과 8면 보경을 가지고 와서 못에 묻고 지은 절이라 하여 ‘보경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불이문(不二門)을 지나면 8백 년 넘은 고목이 먼저 반긴다. 아담한 경내에는 고려 고종 때 원진 국사의 공적을 새긴 원진국사비와 사리를 봉안한 원진국사부도를 비롯한 여러 문화재가 숨쉬고 있다.
보경사에서는 폭포나 계곡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계곡은 보이는데 물이 없다. 다만 차분하고 조붓한 길옆으로 작은 인공수로가 나 있다. 이는 물길을 돌린 탓이다. 원래 왼쪽 계곡으로 흐르던 물길을 보경사의 담장 옆으로 살짝 비틀어 놓은 것. 그리하여 원래의 계곡에는 메마른 바위만이 앙상하게 남아 있다.
일부는 거기까지만 보고 돌아간다. 보경사 경내를 둘러보고, 서운암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등산길로 갈까 하다가 ‘물도 없네’ 하며 돌아가는 경우다. 그나마 소문께나 들은 사람들은 1.5km 거리에 위치한 쌍생폭포에서부터 7번 폭포인 연산폭포까지 더위를 무릅쓰고 올라간다. 가보면 안다. 왜 불볕더위를 뚫고 연산폭포까지 올라서게 되는지를….
내연산 12폭포는 우리나라에서, 아니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시리즈 폭포’다. 물론 폭포 하나만의 규모로 볼 때는 설악의 대승폭포나 외국의 유명 폭포에 견줄 바가 못 된다. 하지만 내연산의 폭포는 다양하고 친근한 폭포라는 점이 색다르다. 거대한 규모에서 비롯되는 아찔함은 없지만, 적당한 높이의 당당함과 시원함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고 만다.
▲ 절경으로 꼽히는 제6폭 관음폭포(위), 폭포 뒤엔 동그란 관음굴이 뚫려 있어 독특한 비경을 자랑한다. 아래는 트레킹의 시작지점인 보경사(아래). | ||
폭포 트레킹은 보경사를 지나 서운암 삼거리에서 시작된다. 길은 순탄하기 그지없고 전 구간이 울창한 숲 그늘의 보호를 받는다. 또한 내연산은 산으로 갈수록 물이 많아진다. 첫 번째 폭포까지 30∼40분이면 충분하지만 거기까지도 탁족의 유혹을 견디는 일이 만만치가 않다. 더러는 계곡 옆의 넙적한 바위를 껴안고 누워있으니 이만큼 게으른 산행이 어디에 있을까. 하지만 빨리 가는 것보다는 ‘게으름’을 즐기는 것, 그것이 트레킹의 묘미라고도 말한다.
제1폭인 쌍생폭포는 말 그대로 쌍둥이 폭포다. 높이 5m의 자그마한 폭포 두 개가 나란히 숨을 토해내고 있어 친근한 느낌마저 든다. 더욱이 암벽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어서 흡사 넓은 수영장에 온 듯한 분위기를 낸다.
폭포 아래로는 바닥까지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이 큰 소(沼)를 이루고 있다. 폭포 중심부는 물이 제법 깊어 성인 남자의 키를 훌쩍 넘기지만 주변부는 바닥이 들여다보일 만큼 얕아 피서를 즐기는 사람도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줄기 폭포가 만드는 너른 계곡과 암벽이 드리운 그늘막이 만나 멋진 피서지를 만들고 있었다.
쌍생에서부터 제5폭포까지는 금방이다. 보현폭포, 삼보폭포, 잠룡폭포까지는 서로 3백~5백m 간격으로 연달아 나타난다. 물론 때로는 큰 바위에 가려 이름도 모른 채 지나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6폭’인 관음폭포에 이르기까지 덥거나 지겨울 틈이 없다. 물속의 푸르고 듬직한 산을 보며 걷는 걸음이 어디에선들 가볍지 않을까.
▲ 쌍둥이 폭포가 아기자기한 쌍생폭포. | ||
관음폭포 위로 구름다리가 걸쳐지는데 이는 관음에서 연산을 잇는 연산적교다. 30m 절벽 끝에서 시원하게 내뿜는 연산의 폭포는 그야말로 ‘절경’이다. 장쾌한 폭포 아래서 소용돌이치던 폭포수는 굽이쳐 흐르다가 이내 관음폭포로 떨어진다. 관음폭포가 사람이 노닐며 탁족을 즐기는 곳이라면, 연산폭포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속까지 뻥 뚫리는 호탕한 멋이 넘쳐난다.
대부분은 연산의 비경에 감탄하고 다시 보경사로 내려간다. 하지만 진짜 숨은 비경은 연산에서 1.5km 거리에 있는 은폭포와 그곳에 이르는 계곡길이다. 우선 관음폭포 앞의 다리를 건너면 가파른 등산로가 나오는데 한 5분 정도만 올라가보자. 그곳 바위 언덕은 연산폭포와 학소대의 절벽 끝이다. 폭포를 둘러싸던 아찔한 절벽들과 마주선 채 멀리 보경사로 뻗은 산줄기들을 굽어볼 수 있는데 이는 산 정상의 조망도 부럽지 않을 선경이다.
연산에서 은폭포까지는 전혀 새로운 길이 등장한다. 나지막하고 얕은 원시계곡이 펼쳐지는 것이다. 이곳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청정하고 고아하다. 등산로가 뚜렷하지 않지만 계곡을 따라가기만 하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
탐사를 하듯 걷다가 문득 영화 속 원시 밀림의 그것처럼 순간적으로 등장하는 은폭포. 보경사에서 겨우 두 시간 남짓을 올라왔을 뿐인데, 은폭포의 경치는 ‘숨은 그림 찾기’의 마지막 한 점처럼 사람을 애타게 만든다. 풍경은 고요하지만 이글거리는 폭포수와 깊은 소(沼)의 긴장감이 서로 접전을 보여주는 까닭이다.
은폭포 주변은 종주 산행을 하는 등산객 외에는 오가는 이가 거의 없다. 어쩌다 한두 사람 쉬었다가 떠나고, 그외엔 내연산 정상에 오르는 등산객들이 전부다. 남은 시명폭포나 복호폭포를 보고 싶다면 폭포 왼쪽 향로봉 이정표를 따라 가면 된다. 하루코스로는 은폭포에서 내려가는 것을 추천한다.
★먹거리: 보경사 입구에는 도토리묵, 더덕, 산채비빔밥 등 토속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많다. 등산객이 많지 않은 주중에는 김밥 대신 일반 한식도시락을 판매한다.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대구-영천 I.C-28번 국도를 타고 포항-포항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영덕 방면으로 직진하면 송라면-왼쪽으로 보경사 입구 이정표가 나온다. 부산 방면에서는 경주I.C에서 빠져나와 포항으로 가다가 7번 국도를 타고 영덕 방면으로 가면 된다.
보경사 종무소 054-262-1117, 송라면사무소 054-243-6001
★폭포 트레킹코스: 보경사-쌍생폭포-보현폭포-관음·연산폭포-은폭포(2시간 30분)
추천 등산코스: 보경사-연산폭포(1시간 20분)-은폭포-내연산-보경사(5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