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네가 잘해줘야 한다. 4관왕이 목표니까”
박석민 씨(26)는 2000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대학교 2학년까지 14년간 활동하다 2013년 돌연 은퇴한 옛 스케이트 국가대표 선수다. 그는 스피드 스케이팅 매스 스타트가 국제대회 정식종목으로 처음 채택됐던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매스 스타트 경기에서 이 종목 최초의 페이스 메이커였다.
2017년 9월 21일 일요신문은 한국빙상경기연맹의 페이스 메이커를 활용한 특정 선수 밀어주기 의혹(관련 기사) 관련 사실을 확인코자 박석민 씨에게 한 차례 접근했었다. 박 씨는 익명으로 사실만 확인해 줬다. 최근 또 다시 페이스 메이커와 특정 선수 밀어주기 문제가 불거지자 일요신문은 박석민 선수를 다시 찾아가 실명 인터뷰를 요청했다. 긴 침묵을 깨고 그가 나왔다. 인터뷰는 2월 22일 25분, 23일 4시간, 28일 4시간에 걸쳐 오전 1시에서 4시 사이 마포구 일대 길 위와 식당, 카페 등에서 이뤄졌다.
─ 2월 26일자 서울신문 보도를 보면 백철기 감독이 특정 선수 밀어주기가 없었다고 했다. 매스 스타트에서 페이스 메이커였던 정재원 선수의 “희생이 아닌 팀 플레이였다. 나도 팀 추월서 이승훈 선수의 도움을 받았다”는 발언이 문제가 됐다. 언론에서 “특정 선수 밀어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백 감독이 낸 해명이었다. 페이스 메이커의 역사가 궁금해서 매스 스타트가 정식 종목인 양대 대회 동계아시안게임과 동계올림픽 영상을 다 찾아 봤다.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와 2017년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등 딱 3회 진행됐더라.
“맞다. 내가 2011년 세계 최초로 매스 스타트가 정식 종목이 된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매스 스타트 국가대표였다. 페이스 메이커로 출전했었다.”
─ 페이스 메이커는 종목마다 미세한 차이가 있다. 매스 스타트의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설명해 달라.
“일단 앞에서 공기 저항을 막는다. 그럼 뒤에 오는 선수들은 공기 저항을 덜 받아 체력을 비축할 수 있다. 페이스 메이커가 지치면 페이스 메이커의 비호를 받던 선수는 비축된 힘으로 막판 속도를 최대로 끌어 올린다.”
─ 경기를 보면 그냥 다들 똑같이 달리는 것처럼 보이던데.
“시청자 분들은 우리가 얼마나 큰 저항을 받는지 잘 모르시더라. 스피드 스케이팅에서 공기 저항은 매우 심하다. 간단하게 말해 보자.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는 평균시속 45㎞/h 최고시속 60㎞/h 쯤으로 달린다. 운전할 때 60㎞/h로 달리면 공기 저항 때문에 머리가 휘날리고 눈이 잘 안 떠진다.
우리가 고글을 왜 쓰는지 아는가? 달릴 때 공기 저항이 눈을 말려서 건조하게 만들고 저항 때문에 눈을 뜨기가 어렵다. 그 이유 때문에 고글을 착용한다.”
─ 앞에서 뛰면 뒤에 선수는 편한가. 공기 저항은 뒤에 있는 선수도 안 받는 건 아니다. 공기 저항과 체력 소모 등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다.
“완주까지 체력 100개가 필요하다고 가정해 보자. 맨 앞에서 뛰면 보통 체력 40개를 공기 저항 때문에 소비한다. 뒤에서 뛰면 앞에서 공기 저항을 막아줘 체력 10개 정도만 공기 저항에 쓰면 된다. 결국 맨 앞에 선 선수는 다른 선수가 체력 90개를 가지고 경기를 뛸 때 페이스 메이커는 체력 60개만 가지고 완주해야 한다. 그게 초반에 달리는 선수의 고충이다.”
─ 종합하면 맨 앞에서 달리는 선수만 체력 60개를 가지고 뛰는 거고 나머지 뒤에 따라오는 모두는 체력 90개를 가지고 뛴다. 그럼 맨 앞만 아니면 한국 선수나 다른 나라 선수도 다들 동일한 조건으로 달리는 거 아닌가. 특정 선수 밀어주기의 논리가 완성될 수 없지 않나. 맨 앞 선수 빼놓곤 다 실력으로 승부해야 할 텐데.
“맨 앞 선수를 제외하고 모두 동일한 조건이다. 다만 ‘작전’이 들어간다면 말이 달라진다.”
─ 작전은 뭔가.
“매스 스타트를 잘 보면 페이스 메이커가 무릎을 잡고 늘어져서 천천히 달리거나 다시 막 달려 나가거나 한다. 코치진의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잘 생각해 보자. 속도가 일정할 때 드는 체력 소모량이랑 낮은 속도에서 갑자기 끌어 올릴 때 드는 체력이랑 같은가? 인터벌 운동이 그냥 달리기보다 칼로리가 많이 소비돼서 다이어트 할 때 많이 쓰지 않는가? 그거랑 같다. 차도 일정 속도에서 달리면 연비가 좋다. 정지 상태에서 일정 속도까지 올릴 때 연비는 매우 낮아진다. 그만큼 에너지를 소비하게 된다.
코치진의 지시에 따라 속도를 늦추고 늘리면 따라 오는 선수는 긴장하게 된다. 작전인 줄 알고 놔두면 막 도망가서 갑자기 불안해 따라가게 된다. 속도를 갑자기 올리면 체력이 빨리 고갈된다. 맨 뒤의 우리나라 선수는 우리 작전이 뭔지 아니까 느긋한 마음으로 체력을 일정 속도에 맞춰 조절하니 체력을 최소로 사용할 수 있다.”
─ 이제야 명쾌하다. 결국 맨 앞에서 공기 저항을 막는 것 하나와 다른 선수 힘을 빼주는 것 둘을 수행하면 맨 뒤의 특정 선수는 일정하게 체력을 조금씩만 사용할 수 있다. 결국 결승점에 가까워지면 그 특정 선수는 출전 선수 가운데 가장 많은 체력을 가지고 있는 선수가 된다. 맞는가.
“정확하다.”
─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때 세계 최초 페이스 메이커였다. 당시 페이스 메이커 지시를 누가 했나.
“한체대 교수님이 했다.”
─ 그 분이 감독이나 코치였나.
“아니다. 한체대 교수지만 빙상연맹 고위급 임원이라 국제경기나 전지훈련 자주 온다.”
─ 어디서 언제쯤 말했나.
“시합 전날이니까 2011년 2월 1일 오후 1시쯤이었다. 경기장에 라운지와 카페테리아가 있었다. 한체대 교수님이 나와 내 친구를 불러 놓고 ‘너네가 잘해줘야 한다. 최대한 체력 비축하게 도와 줘라’라고 했다.
그 외 경기장에서 훈련하다 마주치면 계속 나와 내 친구에게 ‘너네가 잘해줘야 한다. 4관왕이 목표니까’ 계속 말했다.”
─ 페이스 메이커를 하라는 종용하거나 노골적 지시가 아니다. 은연 중에 흘린 거 아닌가.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빙상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무서워하니까. 어릴 때는 얼마나 무서웠겠나. 인생이 걸렸는데. 듣자 마자 ‘저렇게 하라고 말씀하시는구나. 무조건 잘 들어야지’라고 생각했다.
세월이 지나고 나중에 알아 보니까 그 분이 직접 뭘 하라고 이야기한 걸 들은 유일한 사람이 나와 내 친구더라. 요즘 그 분은 그런 말조차 안 한다고 하더라. 다들 감독이나 코치의 입을 빌어 이야기한다고 생각한다.”
─ 왜 무섭나.
“어릴 때는 막연한 무서움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모두의 인생이 걸린 일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운동선수는 평생 학업도 제대로 안 하면서 운동만 한다. 한체대를 가서 병역특례를 받고 실업팀을 찾아 은퇴까지 계속 운동하는 게 30대까지의 유일한 목표다.
그런데 그 분의 말을 잘 듣는 감독이나 코치들이 실업팀 상당수에 포진돼 있다. 선수가 대학을 졸업하고 생업을 유지하려면 실업팀을 가야 하는데 그 분이 만약 막으면 실업팀을 갈 수 있는 확률이 줄어들 수밖에 없지 않겠나? 인사권자가 제일 무서운 법 아닌가.”
─ 그건 너무 막연한 추측으로 생긴 두려움 아닌가.
“이제까지 한체대에서 예쁨을 받는다고 알려진 선수들은 그 교수의 최측근이나 아주 친한 사람이 포진된 실업팀으로 자주 갔다. 특정 선수를 언급할 순 없지만 잘 정리해 보면 다 나온다. 그 교수의 예쁨을 받았던 사람 다수가 특정 실업팀에 가 있다면 모든 경기는 교수 영향권 아래의 실업팀과 한체대의 텃밭이 된다. 경기 독식이 손쉬운 구조다.
실업팀은 스타 선수를 받으면 홍보할 때 좋고 한체대는 스타 만들기를 할 수 있는 기초 선수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학교다. 좋은 선수를 받으려면 실업팀이 교수에게 잘 보여야 한다.”
─ 경기 독식이 가능한 구조라고 했다. 한체대 대학생 수업이 끝나면 초중고 학생들도 한체대에서 훈련을 받는다고 아는데. 한체대 소속 초중고 학생들도 전국 시합이나 국가대표로 올라오는 일이 있지 않나.
“맞다.”
─ 사과부터 해야 할 것 같다. 미안하다. 일요신문이 2월 20일 김보름, 이승훈 선수가 편애를 받아 밀어주기의 수혜자라는 기사를 냈다.(관련 기사) 기사 말미에 “이승훈 선수를 밀어주느라 힘을 다 뺀 박석민과 고태훈 선수는 각각 8위와 10위로 밀려났다. 이승훈 선수보다 어린 두 선수는 이후 빙상계를 떠났다”고 썼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걸 이승훈 선수 때문에 떠났다고 이해했다. 기자를 향한 악성 댓글이 달리는 건 감내하겠지만 박석민 선수를 낮게 평가하는 사람들의 댓글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그 중 사람들이 박석민 씨 예전 기록을 들춰 대며 실력이 안 돼 떠났으면서 왜 이승훈 선수 때문인 것처럼 썼냐고 하더라. 어떻게 생각하나.
“고등학교 2학년 때 성적이 제일 좋았다. 러시아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 500m, 1500m, 3000m, 5000m 전종목 다 타서 종합 5위했다. 3000m는 주니어 한국 신기록을 세웠다. 여상엽 선수의 기록을 10몇 년 만에 깼다. 한체대 코치 2명이 우리 집까지 찾아와 한체대에 입학하라고 했었으니까.”
─ 왜 일찍 은퇴했나.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때를 예로 들면 쉽게 이해 가능할 거 같다. 그때 나와 내 친구는 쉬질 못했다. 남자 매스 스타트 연습을 한 뒤에 우리 둘만 따로 빠져 나와 남자 팀 추월과 여자팀 매스 스타트 팀, 여자 장단거리 연습 경기를 끌어줬다. ”
─ 당시 팀 추월은 모태범과 이규혁 선수가 나가지 않았나. 박석민 씨가 팀 추월 경기를 왜 도와줬나. 여자 선수들도 그렇고.
“남자가 체격이 좋아 더 빠르니까 여자 선수들 앞에서 달려 주면 여자 선수들의 속도를 높여주는데 도움이 된다. 팀 추월은 모태범과 이규혁, 이승훈 선수가 출전했는데 모태범과 이규혁 선수는 단거리 경기 연습하느라 이승훈 선수와 계속 팀 추월을 연습을 해 줘야 했다.”
─ 팀 추월은 8바퀴다. 3200m면 장거리 경기다. 모태범과 이규혁 선수는 단거리 선수 아니었나. 매스 스타트에서 뛰었던 박석민 씨와 친구가 되려 장거리 선수인데.
“코치가 나한테 ‘원래 이승훈 선수랑 너랑 또 한 명이 같이 팀 추월 타기로 돼 있었는데 단거리 선수 하나가 자기 타고 싶대더라. 넌 빠져야겠다’고 하더라. 그냥 그렇게 하래서 그렇게 했다.”
─ 그럼 박석민 씨는 당시 이승훈 선수와 매스 스타트 연습을 한 뒤 이승훈 선수가 쉴 때 여자 선수들을 도와줬다. 그런 뒤 나가지도 않을 팀 추월 3200m도 이승훈 선수와 같이 연습해 줬다. 언제 쉬었나?
“거의 못 쉬었다. 근육통이 가시지 않아서 힘들었다. 팀 추월 한 게임만 해도 근육통이 생기니까 이틀은 쉬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국가대표가 된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대학생 시절까지 내 생활은 계속 이랬다. 몸이 망가지는 게 보였다. 기록은 고등학교 때보다 안 좋아졌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걸어 나왔다.”
─ 그만 둘 때 학교에서 안 잡았나?
“그 분이 쇼트 트랙으로 옮길 생각있냐고 묻더라. 난 스피드 스케이팅을 사랑했다.”
네덜란드 대표팀도 매스 스타트에서 페이스 메이커를 쓰자 “이게 뭐 어때서?”라는 여론이 생겨났다. 매스 스타트에서 페이스 메이커를 쓰는 건 우리뿐만 아니다. 네덜란드 팀도 했다. 옛 네덜란드 빙상 국가대표 A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우리도 작전은 쓴다. 다만 누가 할래 묻고 자진한 사람만 받는다. 시킨다는 건 상상할 수 없다. 국가대표 선수가 다른 종목 선수의 연습 파트너가 된다는 것 역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박석민 씨 인터뷰 요청부터 수락 받는 데까지 설득은 6일이 걸렸다. 인터뷰는 네 차례 나뉘어 총 8시간 진행됐다. 기사가 나오기 전날 새벽 3시까지도 “내 맘은 항상 떳떳하고 인터뷰 당당하게 하고 싶다. 난 완전히 떠났다. 빙상으로 돌아갈 일도 없다. 누구 눈치도 보지 않는다”면서도 “다만 망설이는 건 내 문제가 아니다. 난 만 20살 때 몸이 이미 망가져 기록도 나오지 않았고 메달도 못 땄다. 빙상을 떠난 뒤 6년을 방황했고 어느덧 만 26살이다. 특례를 받지 못해 군대도 가야 한다. 그런데 내가 방황할 때 날 위로해주고 아껴주던 사람이 자꾸 눈에 밟힌다. 내가 다시 방황할까 봐 걱정하며 말리는데 쉽사리 인터뷰에 응할 수 없었다. 이제 겨우 마음 잡았는데 내가 불안해 보이나 보다. 내가 밖으로 나서면 분명 ‘누군가’가 나와 친했던 내 친구 선수들을 못살게 굴고 경기를 망치게 할 거라는 게 눈에 보인다. 그게 가장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왜 나왔냐?”는 질문에 그가 답했다.
“정재원 선수가 매스 스타트에서 페이스 메이커로 경기를 뛴 뒤 인터뷰 한 걸 보고 결심했다. 그가 4년 후 베이징 올림픽에 대해 ‘당연히 시상대 생각을 한다. 개인 종목에서도 1등이 아니라도 시상대에 설 수 있다면 기쁠 것’이라고 말하더라. 그 말이 아팠다. 그 말은 내가 2011년 아스타나•알마티 동계아시안게임 때 했던 말과 똑같았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금메달을 획득한 뒤 페이스 메이커였던 정재원 선수 손을 잡아주는 이승훈 선수.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