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실세 유씨, ‘레이저웰더 사업’ 고위층에 손써 경쟁입찰을 수의계약으로…
포스코 그룹의 비선실세로 통하는 유 아무개 씨가 각종 이권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종현 기자.
검찰은 유 씨가 수주를 대가로 포스코 협력업체들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들여다보고 있다. ‘일요신문’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유 씨는 협력업체로부터 받은 청탁을 실제로 포스코 고위관계자에게 전달했다. 또 포스코 관계자들과 수시로 내부 사업에 관한 연락을 주고 받았으며 식사자리와 골프 회동 등을 가진 것으로 파악됐다. 포스코 임직원들은 유 씨를 ‘회장님’이라 부르며 최고위층의 동선과 내부 정보를 보고하기도 했다.
수년 동안 유 씨와 관련된 회사가 수의계약 방식으로 포스코의 일감을 따낸 것은 한두 건이 아니다. 유 씨가 지분을 보유하고 있던 한 중소기업은 수의계약을 통해 포스코로부터 17억 원 규모의 사업을 수주했다. 그럼에도 포스코는 유 씨 관련 의혹이 회사와는 무관한 일이라며 선을 그어왔다.
그런데 최근 유 씨가 포스코의 입찰에 적극 개입, 수의계약을 통해 실제 사업 수주로 이어진 정황이 포착됐다. 그 예로 ‘레이저웰더’ 사업을 들 수 있다. 포스코는 2008년 정준양 전 회장 지시로 철강절단 설비 시스템인 레이저웰더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2013년에는 파이벡스라는 별도의 회사를 설립하고 레이저웰더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레이저웰더는 연구개발을 완료하고도 4년 동안 단 한 대도 팔리지 않아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었다. 수십억 원 상당인 레이저웰더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상용화 경험이 없는 회사를 선택하는 데는 부담이 따르는 데다 기존 시장은 해외제품이 이미 선점하고 있다. 이런 난관에도 불구하고 파이벡스는 2016년 12월 포스코에 제품을 판매, 상용화에 성공했다.
포스코는 당초 경쟁입찰로 제품을 구매하고자 했으나, 입찰 방식을 수의계약으로 바꿔 파이벡스에 바로 발주를 넣었다. 파이벡스 관계자는 “포스코가 사주지 않으면 기술력이 뛰어나도 상용화 경험이 없는 우리가 경쟁입찰을 따내기는 쉽지가 않은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포스코가 자체 경영판단에 의해 수의계약으로 계열사의 제품을 구매하는 것은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제3자가 개입하고 이권을 챙겨 논란이 되고 있다. 포스코는 당초 경쟁입찰에서 수의계약으로 계약방식을 변경했다. 여기에 발벗고 나선 것은 파이벡스와 아무 관련이 없는 중소기업 A 사다.
<A사와 유 씨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발췌 및 재구성> #2016년 12월 5일 A 사 : 이번주 포스코에서 입찰을 할 것 같습니다. 구매에서 역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유 씨 : 네 열심히 해봐야죠. 구매담당그룹장이 누구죠? ◯◯전무에게는 얘기했구요. A 사 : 구매담당은 △△그룹장입니다. #2016년 12월 26일 A 씨 : 회장님 파이벡스에 낙찰되었답니다. #2016년 12월 28일 유 씨 : 우선 이 일로 5개 보내주시면 좋겠는데요. |
A 사는 유 씨에게 파이벡스가 입찰을 따낼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청탁했고, 유 씨는 대가로 금품을 요구했다. 공교롭게도 수주를 따낸 뒤 파이벡스는 A 사를 하도급사로 선정했다. 누가 하도급사로 선정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A 사가 먼저 나서서 청탁을 한 것이다. A 사 대표는 “파이벡스가 이전 하도급업체와 사업을 진행하다 실패하고 우리한테 와서 도와달라고 해서 함께 사업을 진행한 것뿐이다”고 말했지만 청탁 의혹에 대해서는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파이벡스 설립 전 포스코가 레이저웰더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먼저 하도급을 맡겼던 B 업체 역시 유 씨가 지분 일부를 보유하고 있던 회사로 드러났다. 중소기업 B 사는 2010년부터 5년간 포스코로부터 310억 원가량 수주를 받은 거래관계가 있다.
포스코 측은 “필요에 따라서는 자체적 판단 하에 수의계약을 하는데 이것이 법적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며 “기술력이 우수한 업체를 판단해 계약을 맺은 것이지 유 씨의 청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유 씨는 사업 수주를 위해 전방위로 줄을 댔다. 레이저웰더 사업을 두고 유 씨는 구매담당 전무와 실무자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럼에도 경쟁입찰방식으로 구매가 진행될 것 같자 황석주 포스코알텍 사장과 정준양 전 회장에게 읍소하며 파이벡스의 제품을 구매해 줄 것을 요청했다.
황 사장과 유 씨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종합하면 이들은 사업계약을 전후해 통화는 물론 사적인 식사자리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또 포스코의 구매담당 전무가 파이벡스 대신 경쟁입찰을 통해 해외제품을 구매하려고 하자, 황 사장에게 ‘전무가 잘못된 보고를 받고 있어 문제’라는 내용의 지적사항을 전달했다.
포스코 측은 “실무진에서부터 보고를 올리고 그것에 따라 의사결정이 이뤄진다”며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경영판단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영농단 의혹에 대해 포스코는 유 씨와 전현직 회장들과의 특수관계를 부인하며 단순한 동문사이뿐이라고 주장해왔다.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부부와 황석주 포스코알텍 사장, 브로커 유 씨가 2016년 야외에서 찍은 사진(사진 왼쪽부터). 일요신문 입수
정준양 전 회장은 “(유 씨와의 의혹에 대해)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황석주 사장은 “유 씨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가 아니고, 친한 사이가 아니다”며 “청탁이 아니라 기술의 국산화에 뜻이 있어 내게 그런 얘기를 꺼낸 듯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일요신문’에선 청탁이 이뤄지던 2016년에 함께 찍은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을 입수했다. 정 전 부회장 부부와 황 사장, 그리고 유 씨가 야외에서 촬영한 사진이다.
포스코 역시 수년 전부터 유 씨의 존재를 파악했으며, 자체 감사까지 벌인 것으로 확인됐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포스코 내부 문건에 따르면 포스코는 2015년 11월 유 씨 관련 감사를 진행했다. 내부 감사를 통해 유 씨가 구매·투자 부서 등에 접촉해 사업 승인이나 협상 승인 과정에 개입하려고 한 사실을 파악한 포스코는 내부 관계자가 유 씨를 따로 만나 주의를 주는 등 조치를 취했다.
정준양 전 회장은 서울대사범대부속고등학교-서울대학교 출신으로 유 씨와 고등학교 대학교 동문이다. 동문관계인 이들이 사적인 관계를 이어가는 것은 잘못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포스코 내부에서 유 씨에게 따로 주의를 주고, 경영농단 관련 투서까지 들어왔는데도 정 전 회장과의 부적절한 관계는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포스코 임원들이 눈치껏 알아서 유 씨를 모실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포스코 전 고위관계자는 “포스코 전 회장 등과 유 씨가 사적인 만남을 이어가고 식사자리 등을 가진 것은 맞다. 또 이런 자리에 계열사 임원들도 종종 함께했었다”면서 “유 씨의 청탁이 실제로 다 이루어졌는지는 당사자만이 알 것이다. 주인없는 회사다보니 안팎으로 경영농단이 벌어지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결국 유 씨와 관련된 의혹은 검찰 수사 대상이 됐다. 과연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 것인지에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