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 년간 사업차 러 방문…모스크바 미스유니버스 연결고리, 아들이 받은 러 이메일 ‘추적’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하고 있는 로버트 뮬러 특검팀이 최근 러시아인 열세 명과 러시아 단체 세 곳을 무더기 기소하면서 트럼프에 대한 압박을 한층 강화하고 나섰다. 이들 러시아인이 대선 기간 동안 미국인 아이디를 도용해 SNS를 운영하면서 트럼프에게 유리한 선거 지원 활동을 해왔다는 것이다. 이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트럼프 후보를 지지하고, 경쟁 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을 비방하는 것’이 이들의 주된 목표였다. 외국인이 어떤 식으로든 미국 대선에 개입하는 것은 엄연한 불법 행위이며, 이러한 증거를 확보한 뮬러 팀은 최근 이를 바탕으로 러시아 측 인사들을 기소했다. 한편 뮬러 특검팀은 2013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 대회 당시 트럼프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개인 서한을 보냈다는 증거를 추가로 확보하면서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편지는 트럼프가 푸틴에게 접근한 첫 번째 시도였으며, 이와 관련해서 특검팀은 트럼프와 미스 유니버스 대회로 맺어진 둘 사이의 연결고리를 파헤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끊이지 않고 있는 의문점은 과연 트럼프가 미스 유니버스 대회로 견고해진 러시아와의 관계를 대선에 어떻게 이용했나 하는 것이다.
로버트 뮬러 특검팀이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을 조사하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7월 7일 독일 함부르크 G20 정상회의에서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이른바 트럼프의 ‘미스 유니버스 커넥션’과 관련해서 대대적으로 보도한 ’뉴요커’는 최근호에서 “2013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 대회는 훗날 트럼프의 대선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또한 비단 대선뿐만이 아니라 그의 비즈니스에도 적지않은 이익을 가져다 주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트럼프는 오래전부터 호텔에서 스테이크, 그리고 보드카에서 골프 리조트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사업을 확장해왔다. 돈만 된다면 어디든 자신의 이름을 붙여 팔아왔다. 리얼리티 쇼프로그램인 ‘어프렌티스’에서도 트럼프는 “나는 거래의 기술을 마스터했다. 그리고 트럼프라는 이름을 최고 품질의 브랜드로 만들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한 바 있다.
미스 유니버스 대회 역시 이런 맥락에서 진행한 사업이었다. 이에 따라 트럼프는 늘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자신이 사업적으로 관심을 갖고 있는 도시에서 개최해왔다. 가령 트럼프가 대회를 소유하고 있던 1996년부터 2015년까지 미스 유니버스 대회는 라스베이거스, 플로리다, 푸에르토리코에서 각각 2회씩 열렸으며, 그밖에는 수영복 심사에 걸맞게 파나마시티, 상파울루, 멕시코시티 등 주로 따뜻한 기후의 나라에서 열렸다.
하지만 딱 한 번 예외는 있었다. 바로 2013년 11월 열린 러시아에서 열린 모스크바 대회였다. 이에 대해 ‘뉴요커’는 “미스 유니버스는 전형적인 트럼프의 사업 스타일을 대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컨대 속임수로 점철된 과장된 표현, 화려함과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 등이 어우러진 모습이 그렇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트럼프는 러시아에서 자신의 사업을 확장하고자 모스크바를 대회 개최지로 선정했던 것이다.
트럼프가 러시아에 처음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구소련 시절부터였다. 1987년 출간된 그의 첫 번째 저서인 ‘거래의 기술’에서 트럼프는 다음과 같이 일상적인 하루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는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지인과 전화통화를 하면서 소련 정부와의 협력하에 크렘린 도로 건너편에 거대한 고급 호텔을 건설하는 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해 말에 트럼프는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방문했다. 하지만 당초 계획했던 호텔 건설 사업은 성과를 맺지 못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수십 년 동안 트럼프는 자신의 이름을 건 건물을 올리길 바라는 마음으로 매년 모스크바를 찾았다.
그의 주기적인 러시아 방문은 사람들로 하여금 트럼프가 러시아에 푹 빠져 있다는 인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사실 그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전세계 어디든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만 있다면 달려가는 천생 사업가였다. 러시아를 찾는 이유 역시 단지 러시아에 돈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구소련 체제가 붕괴된 직후 전반적인 러시아의 분위기 역시 트럼프에게는 딱 맞아 떨어졌다. 민영화로 인해 당시 모스크바에는 많은 돈이 유입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1996년 11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트럼프는 당시 재정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세금으로 9억 1600만 달러(약 9760억 원)를 손해본 상태였으며, 이미 미국 은행으로부터는 신용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어떻게든 해외로 눈을 돌려야 했다.
당시 모스크바에 도착한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늘 그렇듯이 호기롭게 두 건의 사업 계획을 발표했다. “모스크바에 2억 5000만 달러(약 2600억 원)를 투자해서 럭셔리 아파트 두 채를 건설할 것이다”라고 말한 트럼프는 동시에 호텔 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이는 거대한 건설 프로젝트로, 세계에서 가장 큰 호텔이다. 러시아 지방 정부, 모스크바 시장, 시장 측 관계자들과 협의 중에 있다”라고 말했다.
당시 이와 관련해서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과 미팅을 가졌던 트럼프는 그 자리에 두 명의 젊은 러시아 여성을 대동하고 나타나 측근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었다. 대통령과의 만남 자리에 여성들을 대동하다니 그야말로 트럼프식 거래 스타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떤 이유에선지 트럼프의 사업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21세기로 접어들면서 트럼프는 부동산 개발보다는 자신의 이름을 빌려주고 돈을 받는 프랜차이즈 계약에 더 집중했다. 계속된 파산과 투자 유치에 실패한 까닭에 사업 파트너도 줄어든 상태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에 자신의 이름이 붙은 건물을 건설하고자 하는 열망은 계속됐다. 모스크바의 한 소식통은 ‘뉴요커’를 통해 “트럼프는 항상 러시아 부호들과 접촉하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처음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러시아 시장에 진출한 것은 부동산이 아니라 보드카였다. 2007년 150만 달러(약 16억 원)에 ‘트럼프 보드카’를 계약했지만 사업은 대실패로 끝났다. 결국 ‘트럼프 보드카’ 생산은 2011년 완전히 중단됐다.
트럼프와 러시아가 금융적으로 얼마나 유대관계가 깊은지는 아직 확실히 알려진 바 없다. 하지만 트럼프가 구소련 시절부터 러시아의 투자자·사업가들과 협력하고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이와 관련, 2008년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는 한 부동산 컨퍼런스에서 청중들에게 “러시아인들은 우리 자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러시아로부터 많은 돈이 유입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면서 또한 그는 지난 18개월 동안 여섯 차례 러시아를 방문했다고도 덧붙였다. 또한 2013년 차남인 에릭은 “우리는 미국 은행에 의존하지 않는다. 우리는 러시아로부터 필요한 모든 자본을 조성했다”라고 말하기도 했었다.
당시 트럼프의 러시아 사업 파트너 가운데는 러시아 갱단의 아들인 펠릭스 세이터와 구소련 시절 대외무역부 소속이었던 테프픽 아리프도 있었다. 미국으로 이민을 오긴 했지만 이 둘은 모두 러시아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인물들로서, 트럼프 타워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부동산개발회사인 ‘베이록 그룹’의 간부였다.
2013년 모스크바 미스 유니버스 대회 당시 트럼프는 푸틴 대통령에게 개인 서한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다.
2013년에 접어들면서 트럼프는 러시아와의 관계에 대해 더욱 더 자신감을 갖게 됐다. 바로 러시아 부동산 재벌인 아갈라로프 가문과의 인연 덕분이었다. 모스크바에서 부동산 개발로 돈방석에 앉은 아라스 아갈라로프와 그의 아들이자 팝가수인 에민이 바로 그 주인공들이었다. 처음 트럼프에게 연락을 취해온 것은 에민이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부터 트럼프의 미스 유니버스 대회와 러시아의 연결고리가 시작됐다.
당시 뮤직비디오를 촬영할 계획이었던 에민은 미녀를 출연시키고 싶다는 생각에 먼저 미스 유니버스 출신을 떠올렸다. 이에 미스 유니버스 조직위원회에 연락을 취해 2012년 우승자인 올리비아 컬포를 섭외했고, 이 과정에서 2013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가 모스크바에서 열리도록 적극적인 투자를 하겠노라고 제안했다.
아갈라로프를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는 특유의 과장된 영업 기술을 발휘했다. 대회를 개최하려는 경쟁도시가 모스크바 말고도 열여덟 군데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당시 경쟁 도시는 단 한 군데도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갈라로프는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개최하기 위해 2000만 달러(약 213억 원)를 투자했으며, 이에 고무된 트럼프는 “그는 러시아 최고의 부자다”라는 등 과장된 칭찬을 늘어놓으면서 한껏 자랑했다. 하지만 이 역시 사실은 아니었다. ‘포브스’ 순위에 따르면 아갈라로프 가문의 순자산은 17억 달러(약 1조 8000억 원) 정도로, 러시아 부호 가운데 51위였다. 러시아 경제 전문가인 ‘애슬랜틱 카운실’의 앤더스 애슬런드는 “러시아의 대부호라고 하면 보통 석유 등 천연자원 개발 기업들이 많다. 부동산 개발자들은 확실히 그에 비해 떨어지는 2등급들이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아갈라로프 가문이 소유한 부동산들은 대부분 모스크바 외곽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러시아 내에서의 영향력도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었다. 때문에 아갈라로프를 통해 푸틴과 줄이 닿고자 했었던 트럼프의 바람은 헛된 것이었다. 아갈라로프는 푸틴 정부에 어떠한 영향력도 미치지 못했으며, 오히려 푸틴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형편이었다.
모스크바에서 미스 유니버스 대회를 개최하는 김에 푸틴과 인연을 트길 기대했던 트럼프는 당시의 이런 바람을 트위터에 올리기도 했었다. “푸틴이 11월에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참석할까? 만일 참석한다면, 푸틴은 내 절친이 될까?” 그러면서 대회가 열리기 직전 ‘레이트 나이트’ 쇼에 출연해서는 푸틴을 만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한 번 만난 적이 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이는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MSNBC에 출연해서도 역시 “푸틴과는 어떤 사이냐”는 질문에 “나는 푸틴을 잘 안다. 분명히 말하지만 푸틴 역시 오늘 우리가 개최하는 대회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푸틴은 훌륭한 업적을 세웠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세계 지도자 가운데 최고라고 여길 것이다”라고 추켜 세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이 역시도 사실이 아니었다.
트럼프가 이렇게 호언장담한 만큼 당시 사람들은 푸틴이 미스 유니버스에 참석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푸틴은 결국 대회장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당시 트럼프는 대회에 참석해줄 것을 요청하는 개인 서한을 푸틴에게 보냈지만 푸틴은 이에 응하지 않았고, 짤막한 메모와 함께 위로금이 든 상자만 트럼프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가 죽을 트럼프는 아니었다. 그날 밤 심사위원들과 함께 나란히 첫 줄에 앉아 대회를 지켜봤던 트럼프는 대회가 끝난 후 ‘부동산위클리’를 통해 애프터 파티에 대해 설명하면서 “러시아의 거의 모든 올리가르히들이 그 방에 있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의 주장과 달리 사실 그날 밤 파티에 참석한 올리가르히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러시아에서 머무는 이틀 동안 트럼프는 과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묵었던 리츠칼튼 호텔 스위트룸에서 묵었다. 그리고 그 이틀이 훗날 대선에서 트럼프의 발목을 붙잡는 꼴이 되고 말았다. 소문에 따르면 당시 매춘 여성들을 고용해 호텔방에서 파티를 열었던 트럼프는 일부러 오바마를 모욕하기 위해서 침대에 소변을 보도록 하는 ‘골든 샤워’ 파티를 열었다. 그리고 당시 이를 몰래 카메라로 녹화해둔 러시아 정부 측이 대선 당시 트럼프와 ‘적절한’ 타협을 얻어내기 위해서 이를 이용하고 있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았다.
만일 트럼프가 평범한(?) 사업가로서만 지냈다면 모스크바 미인대회는 자그마한 사건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 6개월 후, 대선 출마를 발표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그후 미스 유니버스 소유권을 WME-IMG에 매각하긴 했지만 모스크바 대회, 더 나아가서 러시아와 관련된 의혹은 현재까지 끊이지 않고 있는 상태다.
선거 기간 중에도 트럼프는 계속해서 푸틴에게 아첨을 하거나 경의를 표하는 식으로 모스크바의 편에 섰으며, 아갈라로프 가문과도 계속해서 인연을 이어나갔다. 2016년 4월, 에민 역시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내 친구다. 우리는 여전히 연락을 주고 받고 있으며, 1년에 몇 차례씩 만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선 후보 시절에도 트럼프는 여전히 러시아 건설 사업을 추진해나갔다. 2015년 10월에는 러시아의 부동산 개발자인 세이터의 제안에 따라 모스크바에 건설될 예정인 오피스 타워에 트럼프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와 관련, 당시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헨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세이터는 “내가 푸틴을 이 계약에 참여하도록 하겠다. 그리고 우리가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도록 도와주겠다. 친구여, 그 녀석(트럼프)은 미국의 대통령이 될 것이고, 우리가 그걸 설계할 것이다. 푸틴의 모든 인력을 동원해서 그렇게 만들 것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했는지에 관한 명확한 증거는 아직 알려진 것이 없다. 가장 직접적인 증거라고 하면 2013년 미스 유니버스 대회로 맺어진 인연에 따라 에민의 홍보 담당자인 롭 골드스톤이 트럼프 주니어에게 보낸 이메일이 있다. 당시 이메일에서 골드스톤은 “러시아, 그리고 트럼프를 지지하는 정부의 입장에서 클린턴에게 불리한 정보를 제공해주겠다”라고 말했다. 이에 트럼프 주니어는 “그게 사실이라면 좋다”라고 답장했다.
그리고 6일 후, 트럼프 주니어와 트럼프의 사위인 자레드 쿠슈너, 당시 선대위원장이었던 폴 매너포트는 트럼프 타워에서 러시아 출신의 변호사인 나탈리아 베셀니츠카야가 이끄는 한 무리의 러시아 방문단을 맞이했다. 하지만 당시 만남에 대해 트럼프 측은 “입양 정책에 대해 논의한 무해한 자리였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뮬러 특검 측은 당시의 만남에 대해 현재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 외국인이 미국 대선에 개입하는 것은 엄연히 불법이며, 설령 그것이 상대 후보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렇기 때문이다. 따라서 최근 뮬러 특검이 러시아인을 기소한 것은 외국인이 미 대선에 미친 영향력을 드러내고, 그것을 기획한 인물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면서 ‘뉴요커’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트럼프는 사업적인 거래를 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행해왔던 과장된 속임수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았다. 하지만 뮬러 특검팀의 수사로 인해 전례없는, 그리고 뒤늦은 심판의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라고 예견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미스 유니버스와 ‘도널드 픽’ 돈 되는 나라 미녀들 ‘떼어논 당상’ 미국에서 열리는 대표적인 미인대회들로는 미스 아메리카, 미스 USA, 미스 유니버스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미스 유니버스와 미스 USA는 트럼프가 1996년 인수한 상업적인 대회로, 미스 아메리카와는 성격이나 특징 면에서 여러 모로 차이가 있다. 미인대회의 원조격은 미스 아메리카다. 하지만 1950년 우승자였던 욜란데 베트베제가 대회 후원사였던 ‘카탈리나’사의 홍보 무대에 수영복을 입고 오르는 것을 거부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오페라 가수였던 베트베제는 “나는 가수이지 핀업걸이 아니다”라고 완강히 거부했고, 이에 분노한 ‘카탈리나’사는 후원을 철회하고 다른 미인대회를 창설하는 데 앞장섰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탄생한 미인대회가 바로 미스 유니버스와 미스 USA였다. 제1회 미스 유니버스 대회는 1952년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개최됐다. 이런 까닭에 미스 아메리카와 미스 유니버스는 대회 운영적인 측면이나 미녀 선발 기준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미스 아메리카의 경우 참가자들이 진정한 재능을 겨루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우승자에게는 장학금을 제공하면서 다차원적으로 여성들이 이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지만 미스 유니버스는 이와 다르다. 캐나다 작가인 캔디스 새비지가 미인대회의 흥미로운 역사를 연구한 ‘뷰티퀸’에서 지적한 것처럼 “새로운 미인대회들은 여성들의 재능은 우스꽝스러운 헛소리라고 배제한 채 오로지 순수하고 단순하게 ‘미’를 강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미스 유니버스 대회의 운영자였던 트럼프는 대회 기간 동안 참가자들에게 추파를 던진 것을 자랑스레 떠벌리곤 했다. 1996년 트럼프가 미스 유니버스 운영권을 사들이면서 이런 성격은 더욱 두드러졌다. 이는 트럼프의 성향 때문이기도 했다. 트럼프는 처음부터 여성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숨기지 않았다. 미인대회를 사들였을 때 트럼프는 하워드 스턴과 가졌던 인터뷰에서 “당시 많은 여성들이 의사가 된 것을 아주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나는 그런 것에 대해서는 별로 흥미가 없다”라고 말했다. 트럼프에게 미인대회란 그저 외적인 미모를 뽐내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트럼프는 수년 동안 미스 유니버스 운영에 대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수영복은 더 작아졌고, 하이힐은 더 높아졌고, 시청률은 더 올랐다.” 트럼프는 대회 기간 동안 참가자들에게 추파를 던지는 것을 자랑스럽게 떠벌리곤 했다. 가령 스턴과의 인터뷰에서는 “나는 대회가 시작되기 전에 무대 뒤로 가서 참가자들이 옷을 갈아입는 모습을 지켜보곤 한다. 여자들은 전부 다 알몸으로 서있다. 거기에는 남자라고는 나 말고 아무도 없다. 나만이 허락이 됐다. 왜냐, 내가 대회의 소유주이고, 따라서 내가 점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트럼프의 입김은 심지어 심사위원에게까지 미쳤다. 이른바 ‘도널드 픽’이 있다는 소문은 대회 참가자들이나 심사위원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떠돌았다. ‘도널드 픽’이란 트럼프의 취향이나 이익에 따라 후보가 선발되는 것으로, 예선에서 1~9위는 심사위원의 총점에 따라, 그리고 나머지 여섯 명은 트럼프가 직접 뽑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노골적으로 트럼프의 사업에 이득이 되는 나라 위주로 선정되는 일이 다반사였고, 간혹 이해할 수 없는 나라가 최종 후보에 포함되는 일도 많았다. 2013년 모스크바 대회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1라운드 예선 결과는 몇몇 심사위원들에게는 충격이었다. 당초 자신들이 선정했던 결선 진출자 명단과 발표 내용이 상당히 어긋나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인사는 “충격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황당했다”라고 말했다. 참가자들 역시 누구 때문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대회 시작 하루나 이틀 전 트럼프가 아무런 예고 없이 불쑥 리허설이 열리는 무대를 방문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한 참가자는 “트럼프는 여성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악수를 하거나 잡담을 하곤 했다. 그러면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트럼프 뒤를 따라오고 있던 폴라 슈거트(미스 유니버스 조직위원회 회장)에게 몸을 돌려 귓속말을 하곤 했다. 그러면 슈거트가 이를 받아적곤 했다”라고 회상했다. 2012년 미스 캐나다 대표로 참가했던 에드와 아보아는 “트럼프는 모든 참가 여성들에 대해 일일이 코멘트를 달았다. 가령 ‘나는 그 나라에 가본 적이 있다’ ‘우리는 거기에 트럼프 타워를 건설하고 있다’는 식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렇게 트럼프가 칭찬했던 나라의 후보는 대회 성적도 좋았다고 말했다. 또한 미스 자메이카였던 케리 베일리스 역시 “최종 결승 진출자가 발표되었을 때 그 명단은 마치 트럼프가 사업을 하고 있는 나라 명단인 것처럼 보였다. 아니면 앞으로 사업을 하고 싶어하는 나라이거나 말이다”라고 말했는가 하면, 미스 싱가포르였던 쉬림은 “결승 진출자들은 트럼프가 뽑았다. 그가 실세였다. 우리는 그것을 ‘트럼프 카드’라고 불렀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미스 유니버스 조직위 측은 “대회 규정에 따라 트럼프를 포함한 회사 경영진들은 결승 진출자 선정에 관여할 수 있다”고 해명한 바 있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