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래시 세례받으면 누구든 멘붕…검찰 “그걸 노렸어~”
지난해 3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만들어진 포토라인.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14일 서울중앙지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2013년 2월 24일 퇴임 후 5년 17일, 1844일 만이고 전직 대통령으로서는 5번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 취재는 삼엄한 통제 속에 진행됐다. 소환 당일 서울중앙지검 청사 정문은 폐쇄됐고, 사전에 허가받은 취재인원만 비표를 받아 출입할 수 있었다. 그나마도 두 분류로 나뉘어 포토라인 근접해 위치할 수 있는 기자의 수가 제한됐다. 이러한 취재진 통제 규정은 지난해 박근혜 전 대통령 소환 때와 똑같은 방식이 적용됐다고 한다.
서초동 청사에 들어서기에 앞서 이 전 대통령은 포토라인에 서서 “저는 오늘 참담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A4 용지에 미리 준비해온 대국민 메시지를 읽었다. 이 모습은 영상과 사진으로 전 국민들에게 전달됐다.
지난 14일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한 이명박 전 대통령이 포토라인에 서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정치권 및 재계 유력인사 등이 검찰과 법원, 경찰에 출석할 때마다 어김없이 들어서는 포토라인. 어떤 이들이 포토라인에 서고, 어디에 설치가 되는 걸까.
법원이나 검찰청, 경찰청은 명확히 정해진 세부규정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청사마다 사정이 다를 수는 있지만, 포토라인과 관련해 따로 정해진 내규 규정은 없다”며 “유력 정치인이나 경제인의 소환 일정이 정해지면, 출입기자단에 공지를 먼저 보낸다. 그럼 언론사 사진기자들이 풀을 구성해 신청한다. 그럼 사진기자와 방송기자 대표들이 청사 관계자와 협의를 통해 정한다”고 설명했다. 협의 과정에서는 그동안의 전례와 현장의 상황 등이 참조된다.
서울고등법원 관계자는 “포토라인은 보안 문제다 보니 법원보안관리대가 담당한다. 기일이 잡히면 보안관리대에서 포토라인을 설치한다. 세부규정은 따로 없다. 상황과 동선에 따라 판단해 정한다”며 “포토라인이 그어지면 그 안에서 기자단이 자체 협의를 통해 자리 잡는다”고 밝혔다.
이어 이 관계자는 포토라인이 설치되는 직급이나 지위가 따로 정해졌는지에 대해서는 “그런 것도 없다. 다만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는 사건에 설치한다”고 전했다. 사진기자들 역시 “따로 정해 놓지 않고, 중요인사일 경우”라고 설명했다.
청사 실무진과 조율을 통해 포토라인이 그어지면 기자들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본격적인 눈치싸움에 들어간다. 일반적으로 라인 맨 앞에는 사진기자들이 차지한다. 이들은 땅바닥에 낮게 앉는다. 그 뒤 2열 역시 사진기자들의 몫인데, 작은 의자나 낮은 사다리를 두고 앉는다. 3열에 와서야 방송기자들이 위치할 수 있다. 이들은 삼각대(트라이포드)를 높게 세운다. 이어 4열에서는 다시 사진기자들이 선다. 이들은 큰 사다리에 올라서 촬영을 한다.
한 사진기자는 “그런데 종종 방송 영상기자들이 라인 맨 앞에 자리를 맡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럼 사진기자들이 밑에 앉을 공간이 사라진다. 그럴 경우 작은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청사 출석은 소환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나오는 시간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5시간이 채 안 될 수도 있고, 20시간이 넘어 새벽에 나올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기자들이 마냥 진을 치고 기다릴 수는 없다. 이에 전직 대통령이나 10대그룹 재벌 총수 등 거물급이 아닌 이상 출석 장면만 찍고 포토라인을 철수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이나 박근혜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반드시 찍어야 할 매체들은 몇 명씩 조를 묶어 돌아가며 자리를 지키는 당번을 서기도 한다.
실제로 이 전 대통령은 검찰청사를 들어간 지 21시간 만인 15일 오전 6시 25분쯤 나왔다. 그 시간까지 대기하고 있는 포토라인의 취재진에게 이 전 대통령은 “수고하셨다”라는 짧은 인사만을 건넸다. 이어 “다스가 본인 것이 아니다는 입장은 변함 없냐”는 기자들의 질문에는 대답을 회피하고는 준비된 차량에 올랐다.
포토라인이 설정됐는데, 당사자가 이를 무시하고 도망가거나 몰래 들어가는 경우는 없을까. 또 다른 사진기자는 “그런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럼 포토라인이 무너진다. 현장이 아수라장이 된다. 그럼 기자들도 힘들지만, 당사자가 더 곤욕을 치르기도 하고,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래서 기자들이 당사자에게 협조를 부탁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이어 “포토라인에 서게 되면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플래시 세례를 받게 된다. 그럼 아무리 정신력이 강한 사람도 순간적으로 넋이 나가게 된다. 그런 상황에서 검찰 조사를 시작하면 훨씬 쉽다고 한다”며 “이에 과거에는 검찰이 조사를 강하게 하고 싶을 때 일부러 공식 소환 방식을 택한다는 말도 있었다”고 귀띔했다.
지난 2016년 6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협정식을 ‘비공개’로 하겠다는 국방부의 결정에 사진기자들이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 입장하는 길목 주위로 카메라를 내려놓고 ‘취재 거부’를 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당시 국방부 측은 밀약이 아닌 이상 협정식 장면을 취재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사진기자들에게 “일본 측 요청으로 협정식은 비공개로 한다. 국방부에서 촬영한 사진 1장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국방부의 ‘비공개 원칙’ 고수에 결국 기자들은 나가미네 야스마사 주한 일본대사 측 입장을 저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자 국방부 측은 “마음대로 해라”는 입장을 보이다 취재현장이 어수선해지자 급기야 “(원래 제공하기로 했던) 사진제공도 하지 마라”는 반응까지 보였다.
이에 사진기자들은 ‘한일양국간의 중요협정을 언론에 비공개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며 국방부로 입장하는 야스마사 대사 측 주위로 카메라를 내려놓고 ‘취재 거부’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당시 현장에 있던 한 사진기자는 “국방부의 협정식 비공개 결정에 반발해 보이콧한 것”이라며 “다만 이 장면을 역사적으로 남길 필요가 있다고 한 명이 대표로 ‘촬영 거부’ 모습을 찍어 기록으로 남겼다”고 설명했다.
사진기자들 간의 암묵적인 룰로 찍지 않는 장면도 있다. 구치소에 수감 중인 피의자가 재판을 받기위해 호송차에서 내려 법원으로 향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과정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 최순실 씨,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이 포승줄에 묶여 호송차에 오르내리는 사진이 심심치 않게 공개됐다.
이에 대해 사진기자들은 “호송차에서 내리는 모습은 암묵적으로 금지돼 있다. 하지만 지난 ‘최순실-박근혜 사태’는 사안이 엄중하기 때문에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그때에 한해 찍기로 기자들끼리 합의했다”고 귀띔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