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뇌물 먼저 제안했다’ 판단…“영장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 인지하고 실질심사 포기한 듯”
검찰의 판단은 확고했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사전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법원에 보낸 문서(사전구속영장청구서)에서 “이 전 대통령은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모르쇠로 일관하며 범행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며 ”대통령의 직무 권한을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한 전형적인 권력형 부정축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증거 인멸 우려가 상당하다”며 정치적 사건으로 왜곡을 시도하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 발부 필요성을 강조했다.
‘일요신문’이 직접 확인한 본지 90쪽, 별지 207쪽의 구속영장 청구서 내용을 상세히 읽어보면, 이 전 대통령의 범죄가 얼마나 ‘축재’를 목적으로 했는지 드러나 있다. 구속영장이나 향후 작성될 이 전 대통령 범죄 관련 공소장에 기재됐다고 죄가 그대로 확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검찰은 오히려 “이 전 대통령의 혐의 중 ‘입증이 가능한’ 부분만 구속영장 청구서에 담았다. 앞으로 혐의가 늘어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관계자들마저도 “이 전 대통령은 사람보다 돈을 믿었다”고 지적하는 상황이다. ‘일요신문’은 구속영장 청구서에 담긴 내용 중 이 전 대통령이 얼마나 ‘돈’을 목적으로 움직였는지 명백히 드러나는 부분들만 골라서 구체적으로 소개하려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
# 삼성전자 다스 소송 비용 대납…“삼성에 먼저 제의”
이 전 대통령의 범죄 혐의 금액(110억 원) 중 가장 큰 비중(60억 원)을 차지하는 삼성그룹의 다스 소송비 대납(뇌물) 부분은 ‘모두 이 전 대통령의 지시로 시작됐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구속영장 청구서에 따르면 지난 2007년 1월 당시 이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으로 재직하고 있으면서도 ‘다스’를 살뜰히 챙겼다.
당시 다스는 ‘BBK의 실소유자는 이명박 시장’이라고 주장하던 김경준 씨와 BBK 관련 투자금 반환 소송을 미국에서 벌이고 있던 상황이다.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통해 대통령 후보자로 선출되면서 당선이 더욱 유력해지고 있었지만, 김 씨와의 재판은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 1심 재판에서 패배한 것. 이에 이 전 대통령은 다스 대표이사 김성우 씨에게 “그 많은 수임료를 지불하고도 왜 패배했냐”고 화를 내며 대책을 강구하라고 했고, 미국 유명 로펌 에이킨 검프(Akin Gump) 소속 미국 변호사 김석한 씨를 소개받아 공동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선고 결과만 챙긴 게 아니었다. 비용 부분도 직접 지시했다. 청구서에 따르면 에이킨 검프 소속 김석한 변호사는 같은해 9~10월경, 서울 태평로에 있는 삼성그룹 본사에서 이학수 전략기획실장을 만난다. 그리고 그는 이 자리에서 “내가 이명박 당시 대선 후보의 대선 캠프를 돕고 있는데 에이킨 검프가 법률 지원 활동을 대행하고 있으니 이에 대한 비용을 삼성그룹 측에서 부담해줬으면 좋겠다”고 제시한다. 당시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그룹 비자금을 폭로함에 따라 차명계좌와 차명재산 관련 과징금, 세금 문제 등이 걸려 있던 삼성그룹은 이를 거절하지 못했다. 이학수 실장은 이건희 회장에게 “에이킨 검프에 지급해야 할 비용을 부담해 주자”는 내용의 우회 지원 방안을 보고했고, 이 회장은 이를 그대로 승인했다.
삼성그룹 측의 ‘대납’ 의사를 확인한 김석한 변호사는 이 전 대통령에게 “삼성이 캐시(CASH)를 지원하고 싶어하는데 대통령 재임 중 국내에서 지급하면 위험할 수 있으니 해외에서 관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보고했고, 이 전 대통령은 이런 불법 자금 수수를 승인했다. 그리고 대통령 취임 한 달 전, 삼성전자와 에이킨 검프는 허위 컨설팅 계약을 체결하고 이 전 대통령 측이 지불해야 할 변호 비용을 삼성 측이 대납하기 시작한다.
이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뒤에도 끈질기게 이를 챙겼다. 당선 후인 2008년~2009년경, 청와대를 방문한 김석한 변호사에게 “이학수 삼성그룹 전략기획실장에게 (다스의 소송 비용 관련) 삼성 쪽에 고맙게 생각하고 계속 도와달라는 얘기를 전달하라”고 지시한 것. 이에 이학수 실장은 이건희 회장에게 이를 보고해 지원을 지속적으로 이어갔고, 재판이 끝날 때까지 64억 원 상당의 다스 미국 재판 비용을 대납했다. 다스가 미국 소송과 관련해 회사에서 지불한 변호사 비용이 없는 것은 당연했다.
이 전 대통령은 그에 대한 보답도 확실하게 했다.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 수사 과정에서 기소된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이 2008년 9월 2심 재판에서 집행유예 형이 확정되자, 그 다음 해인 2009년 12월 이 전 대통령은 이건희 회장을 단독으로 사면했다. 검찰은 또한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해 금산분리 완화 법개정을 추진하는 등 명백한 정경유착 비리행태에 해당한다’고 구속영장 청구서에 의견을 개진했다.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
이팔성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대선 정국으로 들어서는 2007년 초, 국회의원 공천을 받거나 금융감독원장, 금융위원장, 한국산업은행 총재 등의 자리를 노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성동조선해양이 이 전 회장을 통해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로비를 시도했다. 사업상 편의를 기대하며 이 전 대통령 측에 현금을 건네려 한 것. 이 전 회장 역시 이를 활용했다. 성동조선에게 받은 20억 원의 현금을 이 전 대통령의 사위인 이상주 삼성전자 전무와 이상득 전 의원 등에게 건네며 “금융 관련 기관장이 되려는 포부가 있다. 정치에도 꿈이 있다”는 얘기를 성동조선 민원과 함께 전달했다.
자신의 돈도 건넸다. 2007년 1월경 “국회의원에 공천되게 해달라”며 이 전 대통령의 종로구 가회동 자택에서 김윤옥 여사에게 5000만 원의 현금을 건넨 것. 이 전 회장은 ‘자리’를 원한다며 4차례에 걸쳐 16억 5000만 원과 1200만 원 상당의 명품 의상을 제공했다.
이 전 대통령도 화답했다.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이팔성 전 회장과 면담하면서 “내게 복안이 있다. 기다리라”고 얘기했고, 성동조선해양의 현안에 대해서도 “이상득 의원과 상의하겠다”고 답한 것. 그리고 2008년 3월경 이 전 회장은 박영준 기획조정비서관으로부터 증권선물거래소 이사장 직을 제안 받았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본인이 희망하는 자리가 아니었던 탓에 거절했다. 그러자 이 전 대통령은 임 아무개 청와대 선임행정관을 통해 이 전 회장에게 연락해, 거래소 이사장 공모 절차를 신청하라고 직접 제의했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과 함께 거래소 이사장 자리에서 낙마한다. 이 전 대통령은 결국 우리금융지주 회장 자리를 주며, 인사 청탁의 대가를 챙겨줬다.
이 전 회장의 우리금융지주 회장 자리 연임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매관매직’을 통해 이뤄졌다.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연임한 사례가 없음에도 이를 노린 이팔성 전 회장은 2010년 12월경 “민영화를 꼭 이뤄야 하는데 임기만료를 앞두고 있어 어렵다”며 사위 이상주 전무에게 240만 원 상당 루이비통 가방 1개와 5만 원권 현금 1억 원을 전달했다. 이 전무는 이를 아내이자 이 전 대통령의 큰딸인 이주연 씨를 통해 김윤옥 여사에게 전달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연임’을 목적으로 이 전 대통령 측에 전달된 돈은 모두 3억 원. 이 전 회장은 무난히 연임에 성공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검찰은 이에 대해 “이 전 회장이 본인을 포함, 여러 명으로부터 인사권을 빌미로 36억 원 상당의 돈을 수수해 이 전 대통령 측에 전달했고 이 전 대통령 측은 자녀 주거자금, 생활비 등 개인적으로 사용했다”며 “전형적인 권력형 부정축재에 해당한다”고 청구서에 명시했다.
# ‘7번’ 주고 비례의원 팔아 받은 4억 원
대통령 당선 후 ‘국회의원’ 자리도 매관매직의 대상이었다. 김소남 전 18대 국회의원(한나라당)의 정규학력은 초등학교 졸업. 하지만 그는 석천레미콘 등 3개 회사를 운영하며 성공한 사업가였다.
고려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최고 경영자 과정을 이수한 인연으로 그는 천신일 세중그룹 회장 등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을 알게 됐고, 고려대 교우회 부회장을 맡아 적극적으로 이 전 대통령 선거 활동에 참여했다. 그 후 천 회장 등과 토의 끝에 국회의원 공천을 대가로 이 전 대통령에게 돈을 건네기로 한 김 전 의원은 대선 전 2억 원, 대선 후 2억 원을 이 전 대통령 측에 건넸다.
이 전 대통령 역시 ‘자리’로 화답했다. 초등학교 졸업 경력 등 논란이 상당했음에도 김 전 의원은 비례대표 7번으로 공천한 것. 김소남 전 의원은 2008년 4월 비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당시 한나라당은 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22번까지 당선됐는데, 당시 지지율을 감안할 때 ‘7번’은 100% 당선이 가능한 안정선이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 범죄 혐의 늘어날 가능성 많아
물론 지금까지 나열된 혐의들은 검찰의 일방적인 주장이다. 법정에서 얼마든지 무죄 판결이 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나열한 범죄만 감안하더라도 100억 원에 달하는 ‘뇌물’을 받은 정황이 구체적으로 확인된 셈이다. 게다가 향후 수사에 따라 이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액이 더 늘어날 수도 있다. 검찰은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이 국정원 특활비를 받아 민간인 사찰 의혹을 무마하기 위해 쓴 5000만 원과 장다사로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총선 여론조사를 하기 위해 받은 국정원 특활비 10억 원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를 벌였지만 구속영장에는 혐의로 포함시키지 않았다. 다툼의 소지가 다소 있다고 판단한 것. 그러나 향후 기소 과정에서는 포함될 것이라는 게 검찰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이미 장다사로 전 기획관 등은 기소된 상황이고, 이 전 대통령을 국정원 특활비 수수 혐의로 기소하지 않을 경우 이미 국정원 특활비로 기소된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형평성 문제도 발생한다.
20여 개에 육박하는 범죄 혐의들을 입증할 증거도 충분하다. 김백준, 김희중 등 과거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사로 불렸던 측근들이 ‘버틸 만큼 버텼다’며 검찰에서 모두 털어놨다. 다스 관련자들 역시 이 전 대통령에게 불리한 진술을 쏟아냈다. 혐의를 부인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어책이 없었던 이 전 대통령은 결국 22일 오전 열리는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포기했다. 공소장을 본 법조계 관계자는 “구속영장 실질심사에 나올 때는 검찰의 증거를 반박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공소장에 적힌 검찰의 주장과 증거 등을 감안할 때 100% 영장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인지하고 이 전 대통령이 실질심사를 포기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