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 KT, 하나금융 등 기업 이름 우선 거론…사방팔방 조사중
이명박 전 대통령이 구속된 가운데, 이제 서초동(법조계)은 다음 검찰 수사 대상이 어디가 될지를 예측하느라 분주하다. 기업 이름이 우선적으로 거론된다. 사정당국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다음 수사 모멘텀은 기업”이라고 얘기를 하는데, 검찰 안팎의 정황 역시 기업을 수사할 여건이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벌써부터 몇몇 기업들 이름이 거론되고 있기도 하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검찰 안팎에서 가장 많이 이름이 오르내린 것은 포스코. 검찰이 주목한 혐의는 포스코 전현직 회장들과 학연이 있는 유 아무개 씨가 포스코 내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해 일부 업체들을 협력·납품업체로 선정되게 해주고, 그 대가로 금품을 챙겼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이를 3차장검사 산하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2부(부장검사 황병주)에 배당하고 피해 업체 관계자들을 소환 조사했다.
압수수색도 하지 않았고 내사에 그친 상황이지만, 일각에서는 포스코그룹 전반으로 수사가 확대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포스코를 둘러싼 의혹이 많기 때문. 그 중 대표적인 의혹이 여의도 파크원 빌딩 건설 건이다.
원래 여의도 파크원 빌딩 시공사는 삼성물산. 하지만 파크원은 2010년부터 소송전에 휘말린 탓에 수천억 원에 달하는 손실이 쌓여 있었다. 그리고 포스코건설은 2016년 3월 공사비 1조 1940억 원에, PF 대출약정을 조건으로 하는 공사도급약정을 맺는다. 그 해 11월에는 공사도급계약도 체결한다. 문제는 이때 계약과 함께 책임준공 미이행 시 채무인수를 약속했다는 점. 삼성물산이 손실을 보지 않게 해주고, 포스코건설 스스로 불리한 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포스코건설 측은 “여의도 파크원의 입지가 좋다”고 설명하지만, 근처 IFC의 공실률이 여전히 높은 점 등을 감안할 때 “이상한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최순실’의 이름이 또 등장한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포스코의 결정으로 손해를 보지 않고 사업을 털어버린 삼성과, 원래 가지고 있던 땅을 바탕으로 사업을 계속 추진할 수 있게 된 통일교가 모두 최 씨와 관련되지 않았느냐”며 “최순실 씨 국정농단 수사 때 이 부분도 검토했던 것으로 안다”고 털어놨다.
포스코 전반으로 수사를 확대해야 하는 정치적인 이유도 거론된다. 권오준 회장을 물러나게 하려는 정부의 사인이라는 분석이다. 앞선 사정당국 관계자는 “원래 전통적으로 포스코는 새로운 정권이 들어설 때마다 정권 입김에 맞는 사람이 회장에 오르던 곳”이라며 “문재인 정권에서 찾아와야 할 자리 중 하나로 포스코 회장을 거론하곤 했다, 검찰에서 포스코를 전격 수사하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수사 확대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박근혜 정권이 한창이던 지난 2014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조상준 부장검사)가 수개월에 걸쳐 대대적으로 포스코에 대한 수사를 벌였음에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던 적이 있기 때문.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당시 포스코그룹 내에서 제기된 각종 의혹들에 대해, 위가 아니라 옆으로 최대한 가지를 벌려가며 하나하나 수사를 했다”며 “탈탈 털었는데 생각보다 안 나왔다는 게 당시 수사팀 내 분위기였다”고 설명했다.
포스코가 한 번 털었던 곳이었다면, 새로운 수사 대상도 거론된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하나금융지주이다. 최근 김정태 회장은 3연임에 성공하며, 새로운 임기를 시작했지만 검찰은 물론, 사정당국에서 벼르고 있는 상황이다.
전례를 볼 때 금융당국과 갈등을 빚은 금융사 최고 경영자의 말로는 사퇴였다는 점도, 사정당국 수사 개입 가능성을 높이는 이유 중 하나다. 지난 2009년 KB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된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은 당국의 고강도 검사가 계속되자 자진 사퇴했고, 라응찬 신한금융지주 전 회장도 2010년 3월, 4연임에 성공했으나 같은해 10월 금감원이 금융실명법 위반 혐의로 중징계 방침을 통보하자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법조계에서는 “금융당국의 적극적인 협조가 있다면, 김정태 회장을 겨냥한 검찰 수사가 쉽게 진행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오는데, 실제 검찰은 하나금융과 별개의 사건을 수사할 때에도 “혹시 김정태 회장에 대해서 아는 게 없냐”는 질문을 여러 피의자들에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장이 항상 친정권 인사로 임명됐던, KT도 거론된다. 현재 KT는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수사 주체는 경찰청.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KT 전·현직 임원들이 10여 명이 넘는 국회의원들에게 불법 자금을 준 혐의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 KT 홍보·대관 담당 임원들이 2016년 전후 법인카드로 산 상품권을 현금화해 인터넷 전문은행과 통신 관련 입법 상임위 의원들에게 전달한 사실을 포착한 것. 경찰은 이에 황창규 회장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조만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할 방침이다.
6·13 지방선거가 100일이 채 남지 않은 것 역시 포스코나 KT, 하나금융과 같은 기업 수사 가능성을 높게 볼 수 있는 중요한 이유다. 선거를 앞두고 정치인들을 수사했을 경우, 선거 결과에 따라 검찰이 역풍을 맞을 수 있다. 실제 검찰은 선거 시점에 들어서면 대검찰청 공안부를 중심으로 선거 관리에 집중할 뿐, 기존 혐의들에 대해서는 수사를 시작하지 않는다. 선거 시점에 금품이 오가는 범죄 혐의들을 찾아내는 게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선거에 출마하는 정치인을 건드렸을 경우, 정치권의 강한 반발을 받을 수 있다(실제 울산경찰청이 자유한국당 소속 김기현 울산시장에 대한 수사를 벌이자, 자유한국당 장제원 대변인은 “편파·기획·공작수사”라며 “경찰이 급기야 정신줄을 놓았다. 정권의 사냥개가 광견병까지 걸렸다”며 맹비난한 바 있다). 특수 수사에 밝은 한 검사는 “검경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정치권을 건드리는 것은 위험한 선택”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또 다른 검찰 관계자 역시 “오이 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매고 배나무 아래에서 갓끈에 손을 대면 의심을 받는다”며 “선거를 앞둔 시기는 정치인에 대한 수사보다는 한동안 놓고 있었던 기업 수사를 하기에 적기”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난해 박근혜·이명박 정권 당시 국정원 특활비, 이명박 전 대통령 뇌물 등을 수사하는 통에 기업 수사를 1년 넘게 못하지 않았냐“며 ”기업들에 대해 경고의 시그널(신호)을 보낼 때가 됐다“고 덧붙였다.
검찰 내 인사 시점도 기업 수사 가능성을 높이는 또 다른 이유다. 보통 기업 수사에 걸리는 기간은 내사를 포함 3달 정도. 다음달쯤 이명박 전 대통령을 기소하고 적폐 수사를 마무리한다고 계산했을 때, 8월쯤 예정된 검찰 간부 인사까지 남은 시점(3달 보름가량)이 딱 맞아 떨어진다. 앞선 검사는 ”8월 인사 전 2~3주는 인수 인계를 위한 정리 작업 시간으로 감안했을 때 기업 수사를 진행하기 딱 좋은 시간”이라며 “3차장검사 산하 특수부 중 박근혜, 이명박 전 대통령 재판에 투입되는 곳을 제외한 인력을 투입해 기업 한두 곳 정도를 수사하지 않겠냐”고 내다봤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