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끝판왕’ 등판…금융권 ‘우리 떨고 있니’
제19대 국회의원(비례대표)을 지낸 김기식 더미래연구소장이 ‘금융 검찰’인 금융감독원장에 내정됐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금감원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분위기다. 문재인 정부 들어 이른바 ‘적폐’란 오명 속에 강도 높은 인적 쇄신을 추진해 온 금감원은 현직 금감원장이 채용 비리 사건에 연루돼 불명예 퇴진하는 등 혼란을 겪었다. 더구나 현직 수장이 피감독기관의 ‘역공’으로 낙마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금감원 내부의 사기는 바닥에 떨어졌다.
이 같은 상황에서 ‘친문 실세’로 분류되는 김 내정자의 등판은 추락한 금감원의 위상을 끌어올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권 사정에 밝은 재계 인사는 “요즘 말로 ‘끝판왕’이 나온 격”이라며 “현 정부의 (금융권) 개혁 의지가 잘 드러난 인사”라고 평가했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가 무서운 점은 개혁에 좌고우면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6월 지방선거 등 정치적 이벤트도 문재인 정부의 개혁 및 적폐 청산의 변수가 되지는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당초 금융권에선 신임 금감원장 인선이 늦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금융기관 출입기자단도 모르게 인사 검증이 비밀리에 이뤄진 셈이다. 언론에 오르내린 하마평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김 내정자가 최종 후보군에 포함됐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이렇게 결정될 줄은 몰랐다”며 “금융권 전체가 긴장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금융권에 따르면 청와대는 신임 금감원장 인선을 놓고 민간 출신과 관(官) 출신을 각각 검토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금감원 내부 출신의 경우 금융 개혁을 완수할 역량이 없다고 판단했고, 자연스레 민간 또는 비(非) 금융권 출신이 물망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민간 출신의 경우 전임 금감원장처럼 기존 금융권의 역공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문제가 부각됐다. 결국 청와대의 선택은 사상 최초의 정치인 출신 금감원장이다. 시중은행 다른 관계자는 “금융권의 경우 정치적 외풍에 흔들리지 않으려면 아무래도 힘 있는 사람이 조직 수장이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신임 금감원장 인선을 놓고 금감원 내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분위기가 돌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전임 금감원장을 직접 추천한 것으로 알려진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번 신임 금감원장 인선에는 개입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일각에선 지난 한국은행 총재 연임에 이어 이번 금감원장 인사에도 장 실장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면서 ‘장 실장의 힘이 빠진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복수의 금융권 관계자에 따르면 장 실장은 최근 한국은행 총재 임명 과정에서 이 총재 외에 다른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장 실장의 힘이 커지는 것을 경계한 일부 친문그룹이 인사에 제동을 걸었고, 결과적으로 이 총재가 연임됐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번 금감원장 인사에서도 경기고로 대표되는 ‘장하성 사단’이 내정되지 않으면서 여러 추측을 낳고 있다.
김 내정자는 장 실장과 함께 참여연대 출신이지만 청와대 내부 지지층이 다른 것으로 평가된다. 주목되는 곳은 김 내정자가 최근까지 소장을 역임한 더미래연구소다. 문재인 정부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온 더미래연구소는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은수미 전 청와대 여성가족비서관 등을 배출한 ‘섀도 캐비닛’이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배재정 국무총리실 비서실장, 진성준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 홍종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이 모두 더미래연구소와 인연을 맺고 있다. 최근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마찬가지다. 앞의 금융권 인사는 “김 내정자가 우 의원을 주축으로 한 친문그룹의 지지를 받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더미래연구소 측은 “오비이락일 뿐”이란 입장을 전했다.
개혁 성향의 김 내정자가 임명되면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 중인 금융 개혁에 속도가 더 붙을 전망이다. 김 내정자는 금산분리 강화론자로 은행과 보험사의 비금융기관 주식 의결권 한도 인하, 제2금융권 대주주 적격성 심사 강화, 금융복합그룹에 대한 통합 감독 시스템 도입 등에 찬성하고 있다. 특히 김 내정자는 금융 소비자 보호 강화 방안으로 금감원에서 분리된 금융소비자보호원 설치,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을 주장한 바 있다.
김 내정자의 임명으로 금융권에서는 장기적으로 금감원이 금융위에서 독립하고, 금융위가 기획재정부와 통합하는 시나리오까지 거론된다. 금융권 인사들은 한 목소리로 김 내정자의 금융 개혁 첫 화살의 타깃은 금융보험사를 거느린 대기업과 대형 증권사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강현석 기자 angeli@ilyo.co.kr
김기식 신임 금감원장은? 금융권 저승사자 닉네임 김기식 금감원장 내정자는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경성고를 졸업한 뒤 1998년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했다. 현 정부 최대 파워그룹으로 부상한 참여연대 설립에 관여하고 19대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 시민운동가로 활약했다. 1999년 참여연대 정책실장, 2002~2007년 참여연대 사무처장, 2007~2011년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을 지냈다. 참여연대 출신인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과 함께 국내 대표적인 재벌 개혁 시민운동가로 평가받는다. 2012년 당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국회 정무위원회 위원, 민주당 정책위원회 원내 부의장, 정무위원회 간사, 새정치민주연합 제2정책조정위원장 등을 지냈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재선을 노렸지만 당내 경선에서 낙마한 뒤 민간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를 조직했다. 더미래연구소는 참여연대와 함께 정부∙여당의 국정 철학 및 정책 방향에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된다. 의원 재직 당시 김 내정자에게는 ‘금융권 저승사자’란 별명이 붙었다. 금산분리와 금융 소비자 보호를 원칙으로 대부업 최고 이자율 인하, 금융사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제한, 금융사 지배구조 개선법 발의 등 기존 금융권이 반대하거나 기피하는 정책을 대거 추진했다. 특히 김 내정자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기 이전부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의 위법성을 지적하고 대우조선해양의 대규모 분식회계와 경영 비리 의혹을 예견하는 등 경제 문제에 대한 전문성을 뽐냈다. 정치권에선 유능한 원칙주의자라는 평가와 ‘독불장군’이란 평가가 공존한다. [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