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통수 치고 음식 던지고…류중일 “나한테도 라면 국물 날아온 적 있어…출퇴근길 팬 접근 차단해야”
3월 31일 사직구장을 찾았던 한 야구팬에게는 바로 그 ‘팬의 자격’이 없었다. 롯데는 그날 경남 라이벌인 NC와 홈경기에서 졌다. 0-5로 뒤지다 8회 동점을 만들었지만, 9회 대거 5실점하며 순식간에 다시 경기를 내줬다. 개막 7연패라는 불명예가 따라왔다. 시즌 처음으로 사직구장을 가득 메웠던 만원 관중은 크게 실망했다. 동시에 한 팬이 도가 지나친 행동으로 분풀이를 했다. 경기가 끝나고 사직구장 중앙 출입문으로 나와 집으로 돌아가던 4번 타자 이대호에게 치킨 박스를 투척했다. 어긋난 ‘팬심’이 불러온 새로운 방식의 추태였다.
# ‘치킨 박스 투척’에 쏟아진 비난
안 그래도 참담한 기분으로 야구장을 나서다 봉변을 당한 이대호는 우뚝 서서 치킨 박스가 날아온 쪽을 응시했다. 그러나 이내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이 장면이 여러 팬들의 카메라에 담겼다.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된 영상이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오면서 삽시간에 화제가 됐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성토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개막 7연패를 한 롯데나 개막 이후 부진에 빠졌던 이대호가 아니라 치킨 박스를 선수에게 던진 팬을 향해 화살이 날아갔다. 치킨 박스를 맞고도 화내지 않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간 이대호에게는 오히려 ‘대인배’라는 칭찬이 쏟아졌다.
호기롭게 치킨 박스를 던져 놓고 정작 자신의 행동에 떳떳하지는 못했던 듯하다. 문제의 팬은 이대호가 뒤를 돌아보기도 전에 바람같이 사라졌다. 그야말로 삼십육계 줄행랑을 쳤다. 얼마나 빨랐던지 CCTV에도 얼굴이 제대로 잡히지 않았다. 롯데 구단은 “CCTV 화면을 계속 확인해봤지만 던진 사람의 신원은 밝혀내지 못했다”고 했다.
이대호에게 날아온 치킨 박스 유튜브 영상 캡처.
아무리 이대호가 KBO 리그에서 가장 높은 몸값을 받는 선수이고, 롯데의 주장이자 4번 타자라 해도, 팬에게 치킨 박스까지 맞아가면서 성적에 책임을 져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만약 이대호에게 던진 물건이 종이 박스가 아니라 더 단단하거나 뾰족한 물건이었다면, 자칫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문제였다. 다음날까지 계속 이 문제로 인터넷이 들썩거렸고, 빗나간 애정은 예상보다 더 큰 파장을 일으켰다. 단 한 명의 비상식적 행동이 모든 롯데 팬의 얼굴에 먹칠을 했다.
이대호는 ‘사건’ 다음 날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정상적으로 훈련과 경기를 소화했다. 조원우 롯데 감독도 “그 얘기를 전해 들었지만, 선수에게 별다른 언급은 하지 않았다”고 했다. 굳이 다시 들춰낼 필요가 없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구단은 “앞으로 선수단 경호에 만전을 기하겠다.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다행히 롯데는 이날 7연패를 끊고 시즌 첫 승에 성공했다. 극적인 한 점 차 역전승으로 마침내 기다리던 승전보를 전했다. 그날 롯데 선수들의 퇴근길에는 유독 큰 환호가 쏟아졌다. 꼭 경기에 이겨서만은 아니다. 이대호를 향한 사과와 위로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한 팬은 전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퇴근하는 이대호를 향해 “그런 팬은 팬도 아니니 신경 쓰지 말라”고 외치기도 했다.
# 야구장에 ‘반입금지 물품’ 생겨난 이유
사실 오래전부터 야구장에선 성난 관중으로 인한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KBO는 이미 2015년부터 야구장 내 특정 물품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투척 사고를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인 알루미늄 캔과 유리병, 1리터를 초과하는 페트병을 비롯한 음료 및 주류는 경기장에 갖고 들어갈 수 없다. 페트병은 1리터 이하 용량에 개봉되지 않은 비 알코올성 음료에 한해서만 소지할 수 있다. 경기장 안에서는 주류를 종이컵에 담아 판매한다.
혹여 가방 안에 금지 물품을 숨길 경우를 고려해 관람객 1인당 가로45cm x 세로45cm x 폭20cm 이하의 가방 1개와 가로30cm x 세로50cm x 폭12cm 이하의 쇼핑백 한 개만 지참할 수 있다. 이 규격과 수량을 초과하는 가방이나 상자, 아이스박스 같은 물품을 챙겨 와서는 안 된다. 칼이나 가위 같은 위험물품도 마찬가지다. KBO는 “선수와 관람객의 안전과 쾌적한 관람환경을 위해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물론 일부 관중은 입장 전 진행되는 소지품 체크에 불만을 갖고 있다. 가족 단위로 방문한 팬들은 “집에서 먹을 것을 싸오지도 못하고 굳이 야구장에서 파는 바깥 음식을 비싼 돈 주고 사먹어야 한다”고 볼멘소리도 한다. 하지만 결국은 야구장을 찾는 모두를 위한 조치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 4년간 총 1828건의 안전사고가 발생했고, 2014년에는 취객이 심판을 공격하거나 관람석에 불이 나는 일까지 벌어졌다. 결국 미연의 방지를 위해 특단의 조치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야구팬들에게 널리 알려진 관중 오물 투척 사건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거 김응용 해태 감독이 뒤통수에 참외를 맞은 사건이나 이종범이 KIA 시절 외야에서 펜스 플레이를 하다 맥주 캔을 가까스로 피했던 사건은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LG 박용택은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얼려진 1.5리터짜리 페트병이 날아오는 것을 간신히 피했고, 어떤 관중은 금지약물 복용 적발 경력이 있는 한화 최진행에게 빈 주사기 여러 개를 던지다 퇴장당하기도 했다.
다른 형태의 추태도 자주 벌어진다. 지난해 대전구장에선 3층 관중석에 있던 한 팬이 난간을 넘어 2층 중앙석 지붕으로 이동하는 위험천만한 행동을 감행했다. 그 위에 떨어져 있는 파울볼을 줍기 위해 출입이 금지된 관중석 지붕 위까지 올라간 것이다. 한눈에도 술에 취한 상태라 당장 추락이 걱정되는 절체절명의 상황. 결국 야구장 경호 인력이 급히 투입돼 이 관중을 끌어 내렸다. 하지만 막 역전에 성공해 경기 흐름을 끌어 왔던 한화는 그 사건으로 경기가 중단되면서 상승세도 멈췄다. 결국 재역전을 허용하면서 역전패했다. 또 과거 김성근 감독이 SK에서 중도 퇴진했을 때는 일부 팬이 야구장 그라운드까지 난입해 마운드에서 유니폼과 깃발을 태우는 ‘화형식’ 퍼포먼스를 펼쳤다. 이쯤 되면 원색적인 비난 문구가 담긴 플래카드는 애교 수준일 정도다.
# 퇴근길 안전 이대로 좋을까
이제 야구선수가 유니폼을 입고 그라운드에 있는 동안에는 최소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됐다. 하지만 일단 야구장을 벗어나는 순간 상황은 또 달라진다. 여전히 퇴근길의 안전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모든 팬이 야구장의 ‘벗’으로 여기던 치킨 박스가 선수를 가격하는 무기로 둔갑하니 말 다했다.
사실 퇴근하는 선수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환호나 야유를 쏟아낼 수 있는 문화는 한국에서만 드물게 볼 수 있는 광경이다. 메이저리그 구장은 선수 전용 주차장이 아예 일반인들이 출입할 수 없는 장소에 격리돼 있다. 팬들은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고, 야구장 안에서만 선수들을 만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최근 수 년 사이에 신축된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와 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 정도가 메이저리그 구장과 비슷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두 구장은 선수단과 관계자 주차장이 팬 주차장과 완전히 분리돼 있고, 관람을 온 팬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는다. 경호원이 출입하는 차량을 일일이 확인해 통제한다. 삼성과 KIA 팬들이 아쉬움을 토로할 때도 있지만, 구단은 “경기 후 단상 인터뷰와 팬 사인회 등을 통해 다른 방식으로 팬들과 스킨십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그 외 다른 구장은 야구장 앞이 말 그대로 ‘광장’이다. 사방이 열려 있고, 누구든 오갈 수 있는 길로 선수들이 퇴근한다.
일례로 잠실구장에서 경기하는 원정 팀 선수들은 대부분 중앙 출입문으로 나서 버스에 올라타고, LG와 두산 선수들은 구단 사무실(두산은 1루쪽, LG는 3루쪽)과 연결된 출구를 통해 밖으로 나온다. 팬들은 선수들이 나오는 길목에 삼삼오오 모여 주인공을 기다린다. 경기 종료 시간이 가까워 오면 바리케이드를 치고 안전 요원이 선 안을 지키지만, 멀리서 물건을 던지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사직구장 역시 경기 후 보안 요원이 퇴근하는 선수를 전용 주차장까지 에스코트해왔는데도 안전선 밖에서 던지는 물건까지는 막지 못했다. 인천 SK행복드림구장 역시 지하주차장 천장이 낮아 큰 구단 버스로 이동하는 원정 팀 선수들은 야외에서 내려 야구장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 역시 선수들이 관중들이 기다리고 있는 입구로 걸어 나오는 구조다.
그렇다고 모든 야구장이 출입구 주변으로 일반인들의 접근을 100% 통제할 수도 없다. 관계자 외에 많은 사람들도 지나다녀야 하거나 팬들이 야구장 입장을 위해 거쳐 가야 하는 구역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또 선수들의 승용차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는 팬들을 일일이 저지할 방법도 없다. 보통은 열성팬이 선물을 주거나 격려하기 위해 기다리는 경우가 많지만, 은퇴한 한 선수는 부진에 빠졌을 때 누군가 차량에 날계란을 투척하고 도망가는 바람에 부랴부랴 블랙박스를 차 앞뒤로 설치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선수가 특타를 하거나 치료를 받다 홀로 늦게 퇴근하는 경우에는 안전요원과 안전선도 없이 무방비 상태로 나서야 한다. 몇 년 전에는 그렇게 혼자 퇴근하던 한 투수가 팬에게 뒤통수를 맞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대부분의 팬이 선수에게 해를 끼치지 않지만, 언제나 일부 몰지각한 한두 명이 큰 걱정을 안긴다.
‘치킨 박스 투척 사건’ 같은 일이 벌어지면 감독들도 걱정이 많아진다. 베테랑 사령탑인 류중일 LG 감독도 그 일이 벌어진 다음날 “이대호가 치킨상자를 맞았다는 얘기를 듣고 나 역시 선수들이 다칠까 걱정이 됐다. 선수들이 출근할 때 주차장과 야구장 입구 거리가 너무 멀고 팬들에게 지나치게 개방돼 있다”고 지적하면서 “출퇴근할 때만이라도 선수와 팬들을 분리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퇴근길은 선수들이 팬들과 교감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위험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류 감독은 “물론 이런 얘기를 하면 팬들은 ‘내가 보고 싶은 선수를 왜 못 보게 하느냐’고 할 수 있다”고 걱정하면서도 “예전에 광주에서 한 팬이 나에게 라면 국물을 던진 적이 있다. 선수는 그냥 ‘유니폼을 입고’ 팬과 공식석상에서 자주 만나는 게 바람직한 것 같다”고 거듭 강조했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미친 거 아냐? ‘동전 새총’ 이마 강타…‘관중추태’ 이런 일도 있었다 오물 투척 사건이 전부가 아니다. ‘팬심’이 지나쳐서, 혹은 분노를 제어하지 못해서, 혹은 해도 될 일과 해선 안 되는 일을 구분하지 못해서 생긴 사건과 사고는 그동안 수도 없이 벌어졌다. 2014년 4월 15일 광주 KIA-한화전. 9회말 끝내기 승리 기회를 잡은 KIA가 마지막 공격에 한창이었다. 그때 백스톱 뒤 관중석에 앉은 한 여성팬이 휴대전화 플래시를 켜더니 마운드에서 막 공을 던지려던 한화 투수 김혁민의 눈을 겨냥했다. 명백히 투구를 방해하기 위한 행위였다. 김혁민은 얼굴을 찡그렸고, 당시 포수였던 이희근은 주심에게 정식으로 항의했다. 결국 이 관중은 심판에게 경고를 받고 고개를 숙였다. KIA 팬들조차 분노하게 만든 ‘비매너’ 행태였다. 그러나 이 일이 벌어진 뒤 불과 한 달여가 지난 5월 29일 잠실 LG-삼성전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생겼다. LG가 1-4로 뒤진 상황에서 9회말 삼성 마무리 투수 임창용이 마운드에 오르자 역시 포수 뒤편 좌석에 앉아 있던 관중이 임창용의 눈을 향해 플래시를 비춘 것이다. 문승훈 주심이 발견하고 즉각 제지했지만, 임창용은 결국 투구에 영향을 받고 블론 세이브를 범했다. 1990년엔 대구구장에서 한 삼성 팬이 롯데 왼손투수 김종석을 향해 새총을 겨눴다. 롯데가 6-5로 앞선 상황에서 삼성이 9회말 무사 1루 공격을 진행하던 상황이었다. 어디선가 10원짜리 동전 한 개가 날아와 김종석의 이마를 강타했고, 김종석은 고통을 호소하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자칫 조금만 빗나가 눈 부위를 맞았다면 엄청난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끝내 새총으로 동전을 쏜 관중은 찾지 못했고, 김종석은 더 이상 투구를 이어가지 못하고 교체됐다. 그런가 하면 2010년 플레이오프 5차전이 끝난 뒤엔 한 관중이 그라운드로 들어와 승리의 기쁨을 ‘함께 나누는’ 모습도 포착됐다. 당시 사령탑이던 선동열 감독과 선수단이 차례로 하이파이브를 하는 대열에 빨간 모자를 쓴 관중 한 명이 ‘자연스럽게’ 섞여 있던 것이다. 선수단과 차례로 손을 맞부딪치다 느닷없이 이 관중을 맞닥뜨린 선 감독이 너털웃음으로 화답하는 모습이 화제에 오르기도 했다. 특별히 행패를 부리거나 위해를 가한 것은 아니지만 엄연히 규칙을 위반한 행위. 이 관중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뒤 보안요원들에게 팔을 잡혀 유유히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이외에도 한 팬이 오징어를 구워 먹기 위해 버너와 부탄가스를 몰래 숨겨 야구장에 왔다가 관중석에 불이 나기도 했고, 마산으로 원정 응원을 온 LG팬이 NC 다이노스샵에서 약 100만 원어치 물건을 훔치려다 적발되기도 했다. 투수 코치의 SNS를 사칭해 소속팀 투수의 SNS에 ‘바보’라는 댓글을 남기거나 야구장 밖 술집에서 만난 라이벌팀 팬을 폭행하는 등 갖가지 해프닝이 줄을 이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