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전 데뷔 장호연, 완봉승까지 ‘역사 그 자체’…천하의 괴물 류현진, 개막전 최다패 ‘징크스’
개막전에 선발 투수로 등판하는 투수들에게는 더 그렇다. ‘개막전 선발’은 팀에서 가장 믿음직한 선발 투수에게 주어지는 훈장과도 같다. 모든 감독은 한 시즌을 시작하는 첫 경기에 최고의 카드를 내세워 승리를 보장 받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감독들이 에이스 간 매치업을 피하거나 특정 팀 상대 전적을 고려해 ‘눈치작전’을 펼치는 일도 잦았다. 그러나 요즘은 정공법과 진검승부가 대세다. 그래서 개막전 선발 투수의 가치가 더 높아졌다.
올해도 열 명의 에이스가 ‘개막전 선발 투수‘라는 중책을 안고 마운드에 올랐다. 첫 경기부터 승리의 기쁨을 맛 본 투수도 있고, 패전의 아쉬움을 안은 투수도 있다. 1982년부터 이어져온 KBO 리그 개막전에서 남다른 발자취를 남긴 선수들을 모아봤다(괄호 안 소속팀은 기록 달성 당시 소속 기준).
장호연. 연합뉴스
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로 가장 많이 등판했던 선수는 ‘개막전의 사나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장호연(OB)이다. 무려 아홉 차례나 정규시즌 개막전 선발 투수로 출격했다. 1983년 개막전 선발을 시작으로 1985년부터 1990년까지 6년 연속 개막전 선발을 맡았고, 1992년과 1995년에도 시즌 첫 경기 선발로 낙점됐다. KBO 리그 역대 유일한 200승 투수인 송진우(한화)가 총 여덟 번으로 그 뒤를 잇는다. 1991년과 1992년에 연속 개막전 선발로 나섰고, 2001년부터 2006년까지 6년 연속 개막전 선발을 맡았다. 정민태(현대) 역시 1990년대 후반 단골로 개막전 선발을 맡은 투수였다. 1995년과 1997~2000년(4년 연속), 2003~2004년(2년 연속)까지 총 7시즌 동안 개막전 선발로 나섰다.
그 뒤를 외국인 투수 더스틴 니퍼트가 잇는다. 올해 kt로 팀을 옮긴 니퍼트는 두산에서 뛴 7년 동안 단 한 시즌(2015년)만 빼놓고 모두 개막전 선발을 맡았다. 총 여섯 차례나 개막전에 출격한 셈이다. 올해는 또 다른 외국인 투수 라이언 피어밴드에게 개막전 선발 자리를 내줬지만, 외국인 투수들 가운데선 범접할 수 없는 역대 최다 기록을 여전히 보유하고 있다.
선동열(해태) 정민철(한화) 주형광(롯데) 다니엘 리오스(KIA·두산) 류현진(한화)이 총 5회 개막전 선발 투수로 나섰다. 최동원(롯데), 김용수(LG) 윤학길(롯데) 김상진(두산·삼성) 조계현(해태·삼성·두산) 최상덕(해태·KIA·LG) 배영수(삼성)가 4회 등판으로 뒤를 이었다. 이 가운데 장호연, 정민태, 송진우는 앞서 언급한 대로 6시즌 연속 개막전 선발을 맡는 존재감을 뽐냈다. 선동열, 정민철, 리오스가 5년 연속, 최동원과 니퍼트가 4년 연속으로 뒤를 이었다.
# 통산 최다승은 장호연, 류현진은 공동 최다패
역대 개막전 통산 최다 승리 투수는 역시 개막전에 가장 많이 선발 등판한 장호연이다. 무려 6승(2패)을 올려 한 시대를 풍미한 베어스 에이스의 위용을 과시했다. 김상엽과 정민태가 나란히 5승(1패)으로 그 뒤를 이었고, 선동열과 송진우, 니퍼트도 개막전에서만 4승을 추가했다. 특히 정민태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개막전 5연승(일본에 진출한 2001년과 2002년 제외) 행진을 펼쳤고, 장호연이 4연승, 니퍼트가 3연승을 각각 달성했다.
물론 개막전에 자주 등판한다는 것은 반대로 패배할 확률 역시 그만큼 높아진다는 의미가 된다. 데뷔 2년차부터 개막전 선발 자리를 꿰찬 천하의 류현진도 다섯 번의 개막전에서 무려 3패를 떠안았다. 통산 개막전 최다 패전 타이 기록이다. 한화는 류현진의 ‘개막전 징크스’를 없애기 위해 2010년엔 일부러 개막전이 아닌 개막 두 번째 경기에 선발로 내보냈을 정도다. 윤석민(KIA) 최동원(삼성) 조계현(두산)처럼 걸출한 투수들도 개막전에선 3패로 운이 없었다. 송진우(한화) 장호연(OB) 김용수(LG) 미키 캘러웨이(현대) 곽채진(두산) 주형광(롯데) 배영수(한화) 하기룡(MBC) 차우찬(LG) 김광현(SK) 역시 개막전에서 2패를 안은 투수들이다.
더스틴 니퍼트
새 팀으로 이적하자마자 개막전 선발 등판의 중책을 맡은 선수도 16명이나 된다. 임호균(청보) 최일언(LG) 김상진(삼성) 곽채진(해태) 마이클 앤더슨(쌍방울) 조계현(두산·삼성) 김태석(SK) 이상목(롯데) 최상덕(LG) 박명환(LG) 제이미 브라운(LG) 금민철(넥센) 브랜든 나이트(넥센) 김선우(LG) 헨리 소사(LG) 등이다.
심지어 이들 가운데 네 명은 불과 몇 달 전까지 몸담았던 친정팀을 상대로 개막전부터 창을 겨누는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임호균은 롯데에서 청보로 이적한 1987년 롯데와 개막전에 선발 투수로 나섰고, OB 소속이었던 최일언은 한 지붕 라이벌인 LG로 팀을 옮긴 뒤 1990년 OB와 개막전에 출격했다. 외국인 투수인 앤더슨도 LG 유니폼을 벗자마자 쌍방울 소속으로 1999년 LG와 개막전 마운드에 올랐고, 김선우 역시 잠실 라이벌 두산에서 LG로 팀을 옮긴 뒤 2014년 두산과 개막전에 나섰다. 다만 네 명 모두 결과는 썩 좋지 않았다. 임호균과 최일언은 승패 없이 물러났고, 브라운과 김선우는 패전 투수가 됐다.
신인으로서 개막전에 선발 등판하는 영광을 누린 투수들도 있다. 아무리 ‘전략적 기용’이라 해도, 웬만한 특급 신인이 아니고서야 쉽지 않은 일이다. 과감하게 신인을 ‘1번 카드’로 내세우는 감독의 배짱도 뒷받침돼야 가능하다.
‘신인 최초’라는 역사의 주인공은 역시 개막전 선발 투수 기록을 얘기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장호연이다. 그는 프로에 데뷔하던 1983년 잠실 개막전에 전년도 우승팀 OB의 시즌 첫 선발 투수 자격으로 등판했다. 파격적인 기용의 결과는 어마어마했다. MBC를 상대로 9이닝 무실점 완봉승. OB가 MBC를 7-0으로 꺾었다. 신인으로서는 물론 역대 최초로 개막전 완봉승 기록이 나왔다.
이듬해인 1984년엔 삼미 최계훈과 OB 김진욱이 각각 인천과 잠실에서 ‘개막전 신인 선발 투수’라는 훈장을 달았다. 1985년 정삼흠(MBC), 1989년 김기범(MBC)과 진정필(빙그레) 1991년 조규제(쌍방울) 1994년 강상수(롯데)도 흔치 않은 기회를 잡았던 주인공들이다. 그러나 강상수를 마지막으로 24년간 국내 신인 투수가 개막전 무대에 서는 모습은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다.
# 장호연의 완투·완봉 기록 행진
개막전 완봉승과 완투승의 역사도 장호연의 몫이다. 최초와 최다 기록을 모두 갖고 있다. 신인 첫 개막전 완봉승에 이어 1988년에는 롯데를 상대로 역대 첫 개막전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다. 개막전 두 차례 완봉승은 김상엽(1992~1993년)과 함께 역대 최다 타이 기록이다. 장호연과 김상엽 외에는 1984년 이상윤(해태) 1989년 선동열(해태) 2002년 송진우(한화) 2005년 배영수(삼성)가 한 차례씩 개막전 완봉승을 기록한 게 전부다.
개막전 완투승 기록에서도 장호연은 앞선 두 번의 완봉승에 1990년 LG와의 개막전 완투승을 더해 총 3회로 최다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총 17명의 개막전 완투승 투수 가운데 2회 이상 완투승을 올린 투수는 장호연, 김상엽, 윤학길(1989년·1992년)까지 세 명이 전부다. 1985년 정성만(청보)과 2005년 배영수는 무4사구 완봉승 기록을 갖고 있다.
개막전에서 가장 많은 삼진을 잡아낸 투수는 총 세 명. 정민철(한화·2회) 주형광(롯데) 페르난도 에르난데스(SK)다. 한 경기에서 무려 10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닥터 K’의 위용을 뽐냈다. 특히 1996년 사직구장에서 열린 한화와 롯데의 개막전에서는 롯데 선발 주형광(6⅔이닝)과 한화 선발 정민철(9이닝)이 나란히 탈삼진 10개를 잡아내며 눈부신 투수전을 펼쳤다. 정민철은 이듬해인 1997년 OB와 대전 개막전에서도 다시 삼진 10개를 잡아내며 타이 기록을 한 차례 더 작성했다. 에르난데스는 2002년 수원 개막전에서 역시 10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 세우면서 외국인 투수 가운데 최다 기록을 갖게 됐다.
이들의 뒤를 잇는 투수들은 개막전 한 경기에서 9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1990년 정명진(태평양)과 레다메스 리즈(LG), 조조 레이예스(SK) 등이다. 리즈와 레이예스는 2013년 문학구장 개막전에서 만나 역시 나란히 탈삼진 9개를 잡아내는 ‘K쇼’를 펼치면서 야구장을 뜨겁게 달궜다.
배영은 일간스포츠 기자
토종은 달랑 1명…개막전 외인 선발 전성시대 ‘개막전 선발 투수’라는 영광은 갈수록 외국인 투수들의 전유물이 돼가고 있다. 지난 시즌 KBO 리그는 사상 최초로 전 구단이 외국인 투수를 개막전 선발로 내세우는 장면을 연출했다. 이미 2015년부터 시작된 조짐이다. 당시 유니에스키 마야(두산) 찰리 쉬렉(NC) 브룩스 레일리(롯데) 필 어윈(kt) 헨리 소사(LG) 앤디 밴 헤켄(넥센) 미치 탈보트(한화) 알프레도 피가로(삼성) 트래비스 밴와트(SK)까지 9명의 외인이 개막전 선발로 나서면서 역대 최다 외국인 개막전 선발 기록을 세웠다. 10명 가운데 양현종(KIA)이 유일한 국내 투수였다.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삼성은 외국인이 아닌 토종 윤성환을 개막전 선발투수로 올렸다. 사진 출처 = 삼성 라이온즈 홈페이지 이전까지만 해도 2010년과 2013년 기록한 외국인 선발 6인이 최다 기록이었다. 하지만 2015년 들어 갑자기 9명으로 비중이 확 늘었다. 이듬해인 2016년에는 국내 투수 비중이 다시 4명으로 돌아가는 듯했다. 양현종이 2년 연속 개막전 선발로 나선 데 이어 송은범(한화) 차우찬(LG) 김광현(SK)이 개막전 선발투수로 출격했다. 그러나 2017년 전원이 외국인 선수로 채워지면서 다시 한 번 달라진 분위기를 실감했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10개 구단 가운데 9개 팀이 외국인 에이스를 첫 선발 투수로 내세워 시즌을 시작했다. 고척스카이돔에선 넥센 에스밀 로저스와 한화 키버스 샘슨이 맞붙었다. 로저스는 2015년과 2016년 한화에서 뛰면서 많은 화제를 모았던 선수. KBO 리그 복귀 첫 상대가 공교롭게도 한화였다. 샘슨은 한용덕 한화 감독이 “내가 그동안 본 외국인 투수 가운데 최고”라고 극찬한 투수다. 올 시즌에 대한 기대가 크다.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선 지난해 20승 투수인 KIA 헥터 노에시와 지난해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른 kt 라이언 피어밴드가 맞대결했다. 인천 SK행복드림구장에서는 KBO 리그 4년차에 접어 든 SK 메릴 켈리와 올해 처음 한국에 온 펠릭스 듀브론트가 격돌했다. 마산구장에선 새 외국인 투수들끼리 만났다. LG 저스틴 윌슨과 NC 대만인 투수 왕웨이중이 한국 야구팬들에게 첫 선을 보였다. 잠실구장에서만 유일하게 외국인 투수와 토종 투수의 대결이 펼쳐졌다. 두산은 새 에이스로 영입한 롯데 출신 조쉬 린드블럼을 내세웠다. 삼성은 10개 구단 가운데 유일하게 토종 에이스 윤성환 카드를 내밀었다. 윤성환은 30대 후반 나이에도 꾸준한 실력과 철저한 자기관리로 토종 투수의 자존심을 지켰다. [은] |
커쇼 8년 연속 개막전 선발 ’다저스의 역사‘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여 있는 메이저리그에선 ‘개막전 선발’의 상징성을 오래 이어가기가 더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LA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는 대단한 에이스다. 커쇼는 3월 30일(한국시간) AT&T 파크에서 열리는 샌프란시스코와 시즌 개막전 선발 투수로 낙점됐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일찌감치 발표했다. 이로써 커쇼는 2011년부터 올해까지 8년 연속 다저스의 시즌 개막전 선발 투수 자리를 지키게 됐다. 지난해 7년 연속 기록을 세우면서 돈 드라이스데일, 돈 서튼의 다저스 구단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커쇼다. 올해 예정대로 개막전에 나선다면 새로운 다저스 역사를 작성하게 된다. 커쇼의 자신감도 이미 넘친다. 메이저리그 공식홈페이지 MLB닷컴은 커쇼를 ‘계속 변하지 않을 이름’이라고 표현하면서 “부상이 아니라면 다저스에서 커쇼 외에 개막전 선발을 맡을 다른 투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커쇼와 맞대결을 펼칠 투수는 역시 매디슨 범가너가 유력하다. 범가너 역시 개막전 선발로 나선다면, 5년 연속 기록이 된다. 저스틴 벌랜더는 올해 휴스턴의 시즌 개막전 선발 투수로 결정됐다. 개인 통산 10번째 개막전 선발 등판이다. 휴스턴엔 벌랜더 외에도 댈러스 카이클, 개릿 콜처럼 개막전 선발 경험이 있는 투수들이 더 있다. 하지만 A.J 힌치 휴스턴 감독은 ‘우승 청부사’ 벌랜더를 선택했다. 벌랜더는 14년 메이저리그 경력에서 10번이나 개막전 선발의 중책을 맡았다.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1년 동안 2015시즌 단 한 차례만 제외하고 모두 개막전에 출격했다. 오랜 디트로이트 생활을 접고 지난해 휴스턴으로 이적해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시리즈 최우수선수로 뽑혔다. 탬파베이도 에이스 크리스 아처에게 4년 연속 개막전 선발의 중책을 맡겼다. 한 투수가 4년 연속 개막전 선발 투수로 나서는 것은 탬파베이 구단 역사상 최초다. [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