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남] 지하철 역사상 최초 도입 비명감지시스템, 직접 체험해 보니...
비명감지시스템은 서울교통공사와 KT가 함께 추진하는 ‘그린 서브웨이’ 사업의 일환으로 지하철 성범죄 주요 발생 장소이지만 개인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CCTV를 설치할 수 없었던 여자 화장실에 비명을 감지해 실시간으로 긴급 상황을 알려주는 시스템이다. 여성화장실에서 비명이 들리면 화장실 입구의 경광등이 울리고 역무원 휴대전화로 위급상황이 전달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비명감지시스템 도입 소식이 알려진 순간, 온라인 공간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작동방식, 허위신고 가능성 등에 대한 누리꾼들의 궁금증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급기야 여성들 사이에서는 실효성 논란이 제기된 상태다.
‘전철남’ 기자도 호기심이 발동했다. 이에 ‘일요신문i’는 서울교통공사와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측의 협조를 얻어 비명감지시스템을 직접 살펴보기로 했다. 대한민국 지하철 역사상 처음으로 도입된 비명감지시스템을 둘러싼 궁금증을 풀기 위해서다.
5호선 광화문역 8번 출구 인근 화장실. 박정훈 기자
지난 4일 오전 10시, 동료 여기자와 함께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8번 출구에 도착했다. 8번 출구를 내려간 순간 화장실이 보였다. 화장실 앞에는 “안심비상벨이 설치된 안전한 화장실입니다. 여성비명감지 비상벨”이라는 문구가 쓰여진 팻말이 기세등등하게 놓여 있었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괴한이 갑자기 침입했을 때 여성들은 보통 소리를 지른다. 화장실 안에서 소리가 감지되면 역무원 전용 단말기로 바로 연락이 온다. 5~8호선은 역무실에 보통 한 두명이 근무하기 때문에 자리를 비워도 바로 출동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본지 기자가 비명감지시스템을 시연하는 모습. 박정훈 기자
여자 화장실 용변칸 옆, 노란색 기기가 비명감지시스템이다. 정말 비명 소리가 들리면, 비상벨이 울릴까? 취재진은 비명감지시스템을 직접 시연해 보기로 했다. 동료 기자가 여자 화장실 안에서 “아아아악!”하면서 비명을 지른 순간, 기기에서는 “삐익, 삐익”하는 사이렌 소리와 함께 “경찰이 출동했습니다”라는 음성이 반복적으로 나왔다. (‘일요신문i’ 취재진은 시민들과 서울교통공사의 협조 아래 비명감지시스템을 시연하고 여자 화장실을 촬영했음을 알려드립니다.)
광화문역 8번출구 화장실 밖 천장에 있는 경광등. 화장실 안에서 비명이 울리면 사이렌이 울린다. 박정훈 기자
동시에 화장실 밖 천장에 있는 경광등에 불이 들어왔다. 지하철 역 전체에 울릴 정도로 경고음이 컸다. 약 10초 정도 흐른 뒤 기기에서는 “네, 광화문역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는 역무원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동료 기자가 소리를 지른 순간 역무원의 휴대전화에 “광화문역 화장실 비상벨 경보발생”이라는 문자가 보내졌다. 소리를 지른지 1분 정도 되었을 때 역무원이 여자화장실에 도착했다.
서울교통공사의 다른 관계자는 “광화문 같은 경우는 화장실이 층을 달리하면서 조금 외진 데 있다”며 “첫차나 막차가 오가는 새벽 시간은 범죄에 취약한 때다. 그런 경우에 범죄예방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명감지시스템이 소리를 감지한 순간 역무원 단말기에 경고문구가 뜨고 있다. 박정훈 기자.
피해 여성이 소리를 지를 수 없는 경우는 어떨까. 실제로 괴한이 흉기로 위협하는 상황에서 소리를 지를 수 있는 여성은 많지 않다. 하지만 비명감지시스템은 ‘터치패드’ 기능을 갖추고 있었다. 소리를 지를 수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가 손으로 패드를 1초 이상 누르면 똑같은 방식으로 시스템이 작동한다.
시민들의 호응도도 높았다. 화장실 주변에서 만난 김 아무개 씨(여․48)는 “지하철역 화장실에 사람이 없을 때 참 무섭다. 이상한 사람이 남자화장실에 들어가면 화장실에 일부러 안 가는 경우도 많았다”며 “특히 인적이 드문 경우에 소리를 지를 수 없는데 터치패드가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몸싸움 과정에서도 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전했다.
비명감지시스템에 설치된 터치패드
그럼에도 온라인 공간에서는 비명감지시스템을 향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일부 누리꾼들은 “재채기, 아기 우는 소리, 화장실 문 여닫는 소리 등 온갖 소음으로 계속 사이렌이 울리면 어떡하나”라면서 오작동으로 인한 허위신고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로 화장실은 수많은 소음이 발생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점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과연 이 말이 사실일까? 직접 ‘소음 실험’을 해보았다. 먼저 동료 기자가 여자 화장실 안에서 큰 소리로 재채기를 하고 박수를 쳐봤다. 화장실 용변칸에서 물을 내린 뒤 문을 쾅 닫아보기도 했다. 잡담을 하면서 떠들고 큰 목소리로 노래를 불렀지만 ‘비명감지 시스템’은 작동하지 않았다.
서울교통공사의 또 다른 관계자는 “여성의 비명이 울리면 독특한 음역대가 생긴다. 그것을 잡아낼 수 있는 시스템이다”며 “취약시간대 기준으로 비명감지시스템을 소음값을 약 50~60dB(데시벨)로 잡았다. 6월까지 시범 운영을 하면서 적절한 기준값을 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광화문역 8번 출구 쪽 화장실. 박정훈 기자
일부 시민들은 ‘비명감지시스템’에 대한 실효성 문제를 지적했다. 역에서 만난 신 아무개 씨(여․32)는 “솔직히 ‘많이 쓰일까’ 하는 의구심이 있다”며 “오히려 몰카 범죄가 더 신경 쓰인다. 대놓고 당하는 게 아니라 간접적으로 당하기 때문이다. 지하철역 공중화장실에 작은 구멍을 뚫어 누군가 몰래 훔쳐볼 수 있다는 공포가 있다. 오히려 몰카 방지에 더욱 신경을 쓰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김태준 씨(37)도 “지하철 화장실에선 범죄 발생 건수가 적어 보인다. 차라리 범죄가 자주 발생하는 외부 공중 화장실에 비명감지시스템을 설치해야 한다”며 “유동인구가 많은 광화문역에 설치하는 것은 ‘보여주기식’ 정책 같다. 외진 곳에 화장실이 많은 1호선에 도입됐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비명감지시스템은 범죄 예방율을 높이기 위해 도입됐다”며 “시범 설치 단계에서 효과가 나타나면 전체적으로 확대하거나 다른 방법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전철남 기자는 시연 과정에서 비명감지시스템이 성범죄자들에게 일종의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느꼈다. 앞으로 발생할 문제점들을 확실히 보완한다면, 비명감지시스템이 지하철역의 새로운 ‘안전 지킴이’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줬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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