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만큼 멘탈도 갑” 닮은꼴 두 천재
3월 24일 광주-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kt의 8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 출전한 강백호는 3회 첫 타석에서 KIA 20승 투수 헥터 노에시를 상대로 좌월 솔로포를 터트렸다. 프로 데뷔 첫 타석에서 안타를, 그것도 홈런으로 쏘아 올린 짜릿한 장면이었다. 신인 선수가 프로 첫 타석에서 홈런을 터트린 건 KBO리그 6번째 기록이지만 고졸 신인의 첫 타석 홈런은 강백호가 처음이다. 강백호의 질주는 계속됐다. 27일 인천 SK 와이번스전에서 2호 홈런을 때려냈고 29일 현재 19타수 7안타 2홈런 5타점 타율 0.368을 기록하며 ‘괴물 신인’다운 타격감을 뽐냈다.
강백호의 맹활약에 kt 김진욱 감독도 흐뭇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강백호가 새로운 공에 적응하는 능력이 뛰어나다며 천부적인 타격감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강백호를 3년 동안 지켜본 서울고 유정민 감독은 강백호의 활약을 어떻게 생각할까. 유 감독은 강백호가 서울고 1학년 때인 2015년 청룡기 고교야구대회에서 고척돔 개장 1호 홈런을 터뜨린 주인공임을 상기시켰다.
강백호 선수(kt)와 유정민 서울고 감독, 최현준 선수(LG)
“(강)백호는 원래 배짱이 두둑한 타입이다. 어떤 상황에 처해도 주눅 들지 않는다. 그런 자신감이 결정적인 순간에 홈런을 치거나 의미가 있는 결과를 만들어낸다. 백호의 자신감을 왜곡하면 건방지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백호는 자신감을 갖고 야구해야 더 좋은 모습을 나타낸다. 서울고에서 백호를 만났을 때는 백호 특유의 자신감을 계속 살려주려 노력했다. 가급적이면 야단치지 않고 기를 북돋웠다. 백호는 자신을 믿고 응원해주는 지도자한테 성적으로 보답하는 선수이다. 프로 데뷔를 앞둔 백호에게 ‘너답게 야구해라’고 조언해줬다. 프로에선 선배들한테 먼저 다가가 인사하고 시합에 나가지 못하는 선배들한테 더 열심히 인사하라는 당부도 건넸다. 모든 걸 잘 받아들일 정도 인성도 훌륭한 선수이다.”
유정민 감독은 강백호가 개막 데뷔전 첫 타석에서 홈런 치는 장면을 보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소리를 질렀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마치 내가 스승이 아닌 백호 아버지가 된 듯했다. 우리 팀 우승한 것 못지않은 짜릿함을 느꼈다. 백호의 데뷔전 첫 타석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정말 대견했고 자랑스러웠다.”
유 감독은 강백호의 타격폼에 대해 다음과 같은 특징을 설명했다.
“백호는 방망이 스피드로 타격하는 게 아니라 허리 회전에 의해 방망이를 활처럼 휘었다가 쏘는 유형이다. 하체를 이용해서 몸통 스윙을 하는 것이다. 백호한테 프로에 가서 그 타격폼만은 유지하라고 신신 당부했다. 백호가 가장 자신있게 방망이를 휘두를 수 있는 타격폼이라 그 폼이 수정되지 않기를 바랐는데 경기 보니까 내가 알던 백호의 폼으로 스윙하더라.”
여러 가지 면에서 성공적인 출발을 보이고 있는 강백호이지만 고교 시절 투타를 겸업했던 제자가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는 부분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한다.
“고교 투수 중 구속이 150km 이상 나오는 선수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백호는 그런 공을 뿌렸고 경기를 운영할 줄 아는 머리와 배짱이 두둑한 편이다. 원래 포수를 맡았던 선수라 외야수 경험이 거의 없다. 경험 부족으로 타구 판단 능력이 부족해 보이는데 이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투수로 마운드에 오르지 못한 부분이 아쉽긴 하다. 작년에 프로팀 스카우트를 만날 때마다 백호의 투타 겸업에 대한 생각을 밝혔는데 현실적으로는 어려움이 뒤따르는 모양이다. 선발은 아니더라도 불펜으로 활용한다면 충분히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는 선수이다.”
그렇다면 투수와 야수 중 강백호가 최종적으로 선택해야 할 포지션은 어디일까. 유 감독은 “당연히 방망이다”라고 대답했다.
사회인 야구 1부리그에서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등을 휩쓰는 아버지 강창열 씨 덕분에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레 야구를 접하게 됐다는 강백호. 스승 유 감독은 그런 강백호의 성공 가능성을 확신한다고 말한다.
“백호는 스트레스에 대한 탄성이 좋은 편이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스스로 극복해 나가는 힘이 있다. 분명 중간에 슬럼프에 빠질 때도 있겠지만 좋은 선수로 성장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그 또한 잘 견뎌낼 것으로 믿는다. 백호가 좋은 팀, 자신을 성장시켜주는 감독님, 코치님을 만난 덕분에 프로에 잘 적응하고 있는 것 같다. 아무쪼록 이 성장세가 계속 이어가길 바랄 뿐이다.”
18세 6개월 6일의 나이에 프로 데뷔 첫 승을 올린 삼성 라이온즈 양창섭을 보는 야구계의 반응은 ‘충격적’이었다. 움직이는 볼끝, 안정된 제구력, 깔끔한 투구폼은 양창섭의 가능성을 드높였다는 평가이다.
정윤진 덕수고 감독
덕수고 출신의 양창섭은 지난해 신인 2차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2016, 2017년 2년 연속 황금사자기 최우수선수에 선정되면서 수도권 팀의 1차지명 후보로 손꼽혔지만 서울 연고 1차 지명권을 갖고 있는 넥센, 두산, LG가 안우진, 곽빈, 김영준을 지명하는 바람에 2차 지명으로 밀렸고 삼성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덕수고에서 양창섭을 지도한 정윤진 감독은 28일 양창섭의 데뷔 선발전을 지켜본 소감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당시 야간 훈련 중이었는데 선수들 훈련을 중단하고 모두 감독실에 모여 삼성-KIA 전을 지켜봤다. 후배들도 큰소리로 응원했고, 그 장면을 휴대폰으로 촬영해 (양)창섭이한테 보내주기도 했다. 정말 긴장하면서 TV 중계를 봤는데 흔들림 없이 묵직하게 투구하는 모습이 대견해 보이더라. 대선배인 강민호와의 호흡도 아주 좋았다. 몇 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긴장하지 않고 대범하게 경기 운영을 하는 부분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정 감독은 양창섭이 덕수고에서 투구폼을 많이 수정했다고 말한다.
“원래는 하체를 제대로 이용하지 못한 투구폼이었다. 그래서 하체를 제대로 쓸 수 있는 투구폼을 가르쳤는데 금세 따라오더라. 최고 147km의 투심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컷 패스트볼, 스플리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데 그중 스플리터를 잘 던지지 못하다 투구폼 수정을 받고 2학년에 올라가서 스플리터를 완성시키기도 했다. 커브를 던질 때 팔꿈치 위치가 자꾸 뒤로 처지는 모습이었는데 팔꿈치 각도를 앞으로 내리는 투구폼을 얘기했더니 바로 수정했다. 야구 지능이 굉장히 뛰어난 선수였다.”
정 감독은 양창섭의 야구 외적인 생활 모습도 소개했다.
“창섭이는 고교 3년 동안 단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었다. 후배들도 살뜰히 챙기고 선배들한테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등 선후배들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다. 프로에서도 이런 모습을 보인다면 충분히 인정받고 좋은 평가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정 감독은 양창섭이 1차지명을 받지 못한 것과 관련해선 이런 얘기를 전했다.
“창섭이가 투수치고는 키가 큰 편이 아니다(182cm, 85kg). 그로 인해 스카우트들 사이에서 체구가 작다느니, 고교 시절 많은 공을 던지는 바람에 혹사를 당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고3 때는 어깨를 아끼려고 오히려 공을 많이 던지지 못하게 했다. 기록을 찾아보면 자세히 나올 것이다. 혹사 논란이나 왜소한 체구 때문에 투수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일부 스카우트들의 시각이 안타까웠다. 모쪼록 팀 선배인 윤성환처럼 성장해준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데뷔 선발승과 투구 내용 때문에 양창섭한테는 어느새 ‘제2의 류현진’이란 타이틀이 붙었다. 정 감독은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설명한다.
“프로 선수는 야구 실력도 중요하지만 야구를 대하는 열정과 마음가짐, 준비와 노력들도 함께 가야 한다. 재능이 있는 선수가 자신의 재능만 믿고 안일하게 야구하는 것과 창섭이처럼 재능과 함께 인성과 노력이 더해진다면 ‘제2의 류현진’이 되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제자들 중 양창섭 만큼 멘탈이 강한 선수는 없었다. 고졸 신인답지 않은 안정된 제구와 다양한 변화구, 대담한 승부는 물론 뛰어난 경기 운영 능력을 뽐내는 창섭이는 분명 한국 프로야구사에 기억될 만한 투수로 성장할 것이다.”
한편 지난해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를 우승으로 이끈 서울고의 유정민 감독은 일명 ‘베이징 키즈’들이 잘 성장하려면 프로에서 다음과 같은 부분에 신경을 써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고졸 신인 선수들이 프로에 정착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이유들 중 하나가 타격폼이나 투구폼에 많은 수정이 가해지기 때문이다. LG 임지섭이 대표적인 사례인데 그는 고교 시절 빠른볼로 각광을 받았던 투수였다. 제구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해서 스피드를 죽이고 컨트롤을 앞세우다 보니 선수의 장점이 사라지고 기량 발휘도 안 되는 걸 발견했다. 한국 프로야구의 발전을 위해선 ‘베이징 키즈’들의 성장이 매우 중요하다. 단점보다는 장점을 살리면서 상대팀, 소속팀 할 것 없이 모두 같은 마음으로 어린 선수들의 성장을 도와준다면 프로야구에 큰 역할을 해주는 선수가 될 것이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