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투명성 제고는커녕 ‘거수기’ 사외이사 권한만 확대
KT가 지난 2일 공시한 ‘지배구조 개선안’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KT가 발표한 개선안의 가장 큰 특징은 이사회 권한의 확대다. 개선안에 따르면 KT의 회장 후보 선정 권한은 최종적으로 이사회가 가진다. 지금까지 회장 후보를 선정하는 역할을 했던 CEO추천위원회는 회장후보심사위원회로 이름이 바뀌고 심사 과정도 세분화된다. 지배구조위원회가 이사회 기준에 따라 회장 후보 심사 대상자를 선정하면 회장후보심사위원회는 이들을 심사해 그 결과를 이사회에 보고하고 이사회가 최종 후보를 확정해 주주총회에 추천한다. 이사회의 권한이 더욱 막강해지는 것.
그러나 이사회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나 이사회를 구성하는 사외이사에 대한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다. 이사회 구성과 관련해 KT가 마련한 개선안은 ‘사외이사 자격 요건 및 결격 사유 강화’에 그친다.
KT는 사외이사 자격요건으로 ▲정보통신·금융·경제·경영 등 관련 분야에서 실무경험·전문지식 보유 여부 ▲특정 이해관계에 얽매였는지 여부 ▲윤리의식·책임성 보유 여부 등을 추가했다. 결격 사유에는 ‘선고유예 또는 집행유예를 받아 그 유예기간 중인 자’를 적시했으나 정작 이사회의 역할 재편, 구성방식 변화 등은 포함하지 않았다. 경영진과 사외이사 간 유착 문제 등을 풀어낼 장치를 마련하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KT의 지배구조개선안에 대해 “CEO의 안정적 연임을 위한 꼼수”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KT 이사회는 그동안 ‘거수기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내부 경영을 감독·감시해야 할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 실제로 KT는 황창규 회장 재임 기간인 2014년 1월~2017년 9월 말 40번의 이사회를 개최했다. 이 기간 올라온 안건 152건은 100% 찬성률로 가결됐다. 지난해 1월엔 비리 의혹을 받는 황창규 회장을 만장일치로 차기 회장 후보로 추천했다. 황 회장은 결국 연임에 성공했다.
지난 5일 열린 ‘KT 지배구조 개선방안 토론회’에서 이해관 KT새노조 경영감시위원장은 “이사회가 CEO 견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했다”며 “KT의 폐쇄적인 이사회 운영이 권력 밀착형 비리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KT새노조 측은 이번 개선안은 실효성이 전혀 없다고 비판한다. 이해관 위원장은 “여태껏 각종 비리가 불거졌을 때마다 문제제기를 한 쪽은 경영진이나 이사회가 아니라 직원들이었다”며 “이번 개선안은 그런 무능한 이사회의 역할과 권한을 강화하는 실효성 없는 안”이라고 말했다. KT새노조는 오는 23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민사회단체는 KT가 사외이사 구성을 다양화해야만 지배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안진걸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KT 경영을 효과적으로 관리·감독하기 위해선 노동자, 소비자 등의 인사도 추천받아 신망 높은 이들로 사외이사를 다변화해야 하는데 지금의 개선안은 CEO의 독재와 전횡을 계속 방치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며 “지분 11%로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발휘해 사외이사 추천을 고려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KT는 이와 관련해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지 못하고 있다. KT 관계자는 “정관 변경 등 지배구조 개선 방안에 대해서는 이사회의 몫”이라며 “KT와 이사회는 서로 독립된 기관이기 때문에 (KT 쪽에서는) 의견을 드릴 게 없다”며 선을 그었다.
이성진 기자 reveal@ilyo.co.kr
또 친정부 인사 영입으로 외풍 막자고? “낙하산 아닌 개인적 발탁” KT가 참여정부 출신 인사를 차기 사외이사로 내정하면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또 다시 친정부 인사를 바람막이 삼아 황창규 회장의 퇴진 압박을 막으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KT는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친정부 인사를 영입해 구설에 올랐던 만큼 비난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KT가 친정부 인사를 차기 사외이사로 내정해 황창규 회장이 퇴진 압박을 막으려 한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KT 이사진은 지난 2월 23일 이강철 전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과 김대유 전 대통령비서실 경제정책수석비서관을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수석비서관을 지낸 이들은 현 문재인 정부 인사들과도 친분이 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 대통령 정책특별보좌관을 지낸 이정우 경북대 명예교수도 사외이사 후보군에 올랐지만 이 교수 스스로 고사한 것으로 전해진다. KT 안팎에선 황 회장이 지난 정부에서처럼 또 다시 친정부 인사를 영입해 버티려는 심산으로 해석한다. KT가 지난 2일 내놓은 ‘지배구조개선안’ 속 사외이사 자격 요건에도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KT새노조 관계자는 “그 사람들이 통신 관련 전문지식을 갖고 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며 “누가 봐도 문재인 정부에 잘 보이기 위한 조치”라고 비난했다. KT 관계자는 “사외이사 선임도 결국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것으로 우리가 가타부타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다만 이번에 내정된 두 분은 경제·사회 전문가로서 높은 자리까지 올랐던 만큼 KT가 국민기업으로서 역할을 하는 데 상당 부분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인사는 황 회장의 의지에 따른 것이며 청와대와 여권의 반대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KT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이강철·김대유 전 수석은 청와대의 낙하산 인사라기보단 황 회장이 자신의 회장직을 유지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접촉해 데려온 사람”이라며 “여권에서는 그 둘이 사외이사 자리를 거절하길 희망했던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