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되면 그냥 쓰레기” 폭탄 돌리기
최근 재활용 쓰레기 수거 거부로 발생한 ‘쓰레기 대란’에 청와대까지 나섰지만, 여전히 현장에는 혼란이 지속하고 있다. 정부의 긴급대책 발표에도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재활용 수거업체들이 제대로 된 합의안을 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일각에서는 수도권에서 벌어진 이번 쓰레기 대란이 전국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청와대가 최근 불거진 쓰레기 대란에 긴급대책을 발표했지만 일부 지역에서 혼란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사진은 김은경 환경부 장관이 4월 2일 폐비닐 분리수거 거부상황에 대한 현장점검을 위해 경기도 광명시 소재의 폐비닐 선별·재활용 업체를 방문한 모습. 환경부 홈페이지 캡처.
최근의 쓰레기 대란에서 문제가 된 곳은 사실상 아파트를 비롯한 공동주택이다. 단독주택과 연립주택에서 발생한 재활용 쓰레기는 지자체가 직접 수거·운반하고 있다. 반면 아파트는 아파트와 민간업체가 자체적으로 계약을 맺어 수거·운반한다. 환경부는 이번 쓰레기 대란이 일부 아파트 수집 업체에서 폐비닐과 폐플라스틱의 수익이 악화하자 수거를 거부했고 이를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통해 전달하며 불거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정부의 긴급조치 발표 이후에도 여전히 현장은 어수선하다. 4월 2일 환경부는 수거 거부를 통보한 수도권 수거·선별업체 48개와 협의한 결과 이들 업체가 모두 폐비닐 등을 정상 수거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서울시 서초구의 한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기사에는 업체들이 정상 수거를 하고 있다고 나왔지만, 우리 아파트와 계약을 맺은 수거업체는 여전히 폐비닐을 거둘 수 없다는 입장이다”라고 토로했다.
대부분의 수거업체들은 환경부의 대책이 금시초문이라는 반응이다. 환경부가 협상한 대상은 수거업체들이 아니라 선별업체라는 것이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의 한 관계자는 “환경부가 접촉한 대상은 선별업체로 이들 중 일부가 수거도 함께하고 있어서 마치 수많은 수거업체가 환경부와 협상을 한 것처럼 알려진 것 같다”고 말했다.
많은 수거·선별업체의 희망 사항은 선별적인 수거다. 폐지, 고철 등 그나마 값이 나가는 재활용품은 지금처럼 거둬가되 비닐,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은 지자체가 수거했으면 하는 것이다. 한 수거업체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그나마 폐지가 돈이 되었기 때문에 폐비닐을 1kg당 200원씩 줘가며 거둘 수 있었지만, 이제는 폐지 가격도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그나마 상황이 나았던 플라스틱도 중국 수출길이 막히며 애물단지”라며 “사실 법적으로 재활용 쓰레기 처리 책임은 정부에 있지 않은가. 심지어 주민들이 재활용되는 100% 깨끗한 폐비닐을 넘겨주는 것도 아니다”고 토로했다.
재활용 수거업체 관계자의 말대로 폐기물관리법에 따르면 폐기물 수거의 책임은 지방자치단체에 있다. 다른 나라도 재활용 쓰레기는 대개 공공에서 직접 처리한다. 환경부의 무능함에 대한 비난이 끊이지 않는 까닭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독특하게 오래 전부터 아파트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직접 처리해 수익을 내왔다. 재활용 쓰레기 처리로 통해 번 수익은 아파트 관리직원 수당, 아파트 주민 선물, 아파트 관리비 차감 등의 방법으로 이용되어 오고 있다. 지자체 관계자들 사이에서 아파트와 수거 업체가 돈이 될 때는 직접 폐자원을 처리하다가 이제 와서 지자체에 떠넘기는 건 너무하지 않느냐는 불만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아파트 주민들은 재활용 쓰레기 처리업체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까지 서울에서 아파트 동대표를 맡아온 한 여성은 “우리 아파트의 경우 수거량에 상관없이 수거 업체로부터 월정액으로 재활용쓰레기 수거비를 받았는데 양에 비해 너무 적은 금액을 받았다“며 ”게다가 지금까지 아파트 관리직원들이 분류까지 완벽하게 해 수거업체에 넘겨줬다. 아파트와 수거업체 간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반 시민으로서는 투명하게 지자체가 운영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더욱 큰 문제는 지자체가 아파트의 재활용 쓰레기를 직접 처리할 의지가 있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인 한계가 따른다는 점이다. 현재 지자체에서 직영 혹은 민간위탁 운영하는 공공 선별장도 이미 포화상태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의 한 관계자는 “처음부터 재활용 쓰레기의 수거와 처리는 지자체만 할 수 이는 영역이라고 명시해놨다면 모든 쓰레기를 처리할 능력이 있었을 것”이라며 “지금 상황에서 아파트의 재활용 쓰레기까지 공공 선별장에 가게 되면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앞의 수거 업체 관계자는 “폐지는 폐비닐과 달리 양이 많아 하루에도 몇 번씩 수거해야 하는데 과연 지자체에서 그럴 역량이 될지 모르겠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아파트에서 배출되는 재활용 쓰레기는 궁극적으로 공공이 처리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다. 앞의 센터 관계자는 “지금 그나마 돈이 되는 재활용들도 최근의 세계 재활용 시장 상황을 보면 단가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폐비닐에서 폐플라스틱, 나아가 폐지까지 전국적으로 재활용 쓰레기 수거 거부 움직임이 일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한편 재활용 쓰레기를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입장이 갈리며 폐비닐처리는 6·13 지방선거의 핵심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서울시장 출마 계획을 밝힌 안철수 바른미래당 예비후보는 4월 6일 서울 서초구의 재활용쓰레기 센터를 방문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는 최근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통해 “이번 비닐 플라스틱 쓰레기 대란을 조사하다 보니 박원순 시장이 쓰레기 대란의 공범이란 것을 확인했다”며 비난했다.
박혜리 기자 ssssch33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