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유리하나, 집행유예 기대 쉽지 않을 것”
식사를 하던 서울고등법원 형사부 소속 판사가 ‘요즘 바쁘냐’며 건넨 인사에 털어놓은 하소연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기소된 두 건의 사건을 한 재판부로 몰아달라고 요청했는데, 이에 법원은 한 재판부를 아예 롯데그룹만 전담키로 결정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1부~14부 중 형사8부(강승준 부장판사)는 아예 새로운 사건을 배당받지 않고, 롯데그룹 사건만 집중 심리하게 됐다. 한 부서가 사건 배당에서 제외되면서 다른 부서는 그만큼 업무가 늘었다는 푸념이었다.
신동빈 롯데 회장의 ‘국정농단·경영비리 병합심리’ 요청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사실 신 회장을 비롯, 롯데그룹은 당초 검찰 수사 때부터 단연 롯데그룹 경영 비리 사건만 챙겼다. 검찰이 롯데그룹 내 각종 경영 비리 의혹들의 정점으로 신동빈 회장을 지목했고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공격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다. 구속영장은 결국 법원에서 기각됐다. 1심도 성공적이었다. 신 회장이 집행유예를 받는 데 성공한 것. 재판부는 상당수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하며, 징역 1년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롯데그룹은 내부 임원 승진 인사를 내는 등 성공적인 재판 결과를 자축했지만, 의외의 재판에서 발목이 잡혔다. 최순실 씨와 함께 기소된 국정농단 사건에서 70억 원 뇌물공여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징역 2년6개월 실형을 받은 것. “어쩔 수 없었다”며 피해자임을 강조했지만, 재판부는 집행유예라는 선처를 베풀지 않았다. 정장을 입은 채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던 신동빈 회장은 그대로 법정구속돼 구치소로 향해야 했다.
신 회장과 롯데그룹이 비상에 걸린 것은 당연한 결과. 집행유예는 구속되지 않은 피고인에게 내리는 일종의 감형인데, 다른 사건으로 구속된 피고인에게는 원심이 내린 집행유예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두 사건의 양형을 모두 살아야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신 회장 앞에 놓인 셈이었다. 앞서 ‘일요신문’은 신 회장 입장에서는 ‘사건 병합이 최선일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는데, 신 회장 변호인단은 역시나 최순실 씨와 함께 받고 있는 국정농단 재판에서 신 회장만 떼어 내 달라고 요청했다.
전혀 다른 사건이지만, 법원은 신 회장 측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사건이 다르더라도, 하나의 재판부에서 모든 혐의를 고려한 양형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법에 명시돼 있기 때문. 법원은 국정농단 사건 항소심 심리를 맡은 법원 형사4부(김문석 부장판사)에서 최순실 씨,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은 그대로 재판을 하되, 신 회장만 롯데그룹 경영비리 사건이 배당된 서울고법 형사8부로 옮기도록 허락했다.
신 회장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각각 두 번의 재판으로 형을 두 번 받는 것보다 하나의 재판부에서 하나의 형을 받는 것이 형량에 유리하다. 법원 출신의 변호사는 “한 재판부가 전반적인 혐의를 다 아우르며 판단하다 보면, 양형이 상대적으로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는데, 법원 관계자 역시 “통상적으로 피고인이 사건 병합을 요청하면 별다른 사정이 없는 이상 법원이 그 요청을 받아들이고 양형도 유리해지는 게 일반적“이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법원 내에서는 우려도 적지 않다. 서로 다른 두 재판부(형사4부, 형사8부)가 같은 증인을 불러다가 심리해야 하는, 재판 중복이 발생한다. 신 회장을 위한 결정(재판 병합) 때문에 다른 사건들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줄어든다는 것. 게다가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중 하나가 롯데그룹 등의 뇌물 혐의인데, 뇌물 수수와 공여자 관계인 최순실 씨와 신 회장을 분리해서 다루는 과정에서, 재판부마다 다른 판단이 나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나 이런 신 회장의 ‘결정’이 오히려 신 회장에게 불리한 양형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두 사건을 병합해 한 재판부에서 선고를 받을 경우 형이 낮아지는 것은 맞지만, 두 사건 모두 적지 않은 양형을 1심에서 받았다. 국정농단(징역 2년 6개월) 사건과 롯데그룹 경영비리(징역 1년 8개월, 집행유예 2년) 사건의 1심 양형을 합치면, 징역 4년 2개월인데, 이는 집행유예를 받을 수 있는 최소한(징역 3년)을 훌쩍 뛰어넘는다.
다툴 여지가 적다는 것도 불리하다. 최순실 씨 국정농단 뇌물 공여에 대해서 이미 신 회장은 완벽하게 혐의를 인정했다. 검찰 조사는 물론, 1심 법원에서도 증인으로 출석해 모든 혐의를 인정해 놓고, 이제 와서 진술을 번복할 수는 없다.
롯데그룹 경영비리 사건을 놓고서는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요소들보다, 유죄가 안 되기를 다퉈야 하는 부분이 더 많다. 검찰은 ”1심 법원이 지나치게 판단했다“며 재판에서 강하게 유죄를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집중심리를 위해 신규 사건 배당까지 제외한 재판부가, 신 회장에 대해 지나치게 너그럽게 접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앞선 법원 출신의 한 변호사는 ”최근 재판 추세를 보면, 오너 일가들에 대해 법원이 법리를 엄격히 따지되 양형에서는 오히려 과거보다 엄격해진 부분이 있다“며 ”신 회장 입장에서는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는 카드를 꺼내든 셈이지만, 재판 병합에 성공했다고 무조건 집행유예로 빠져나올 수 있다고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