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만에 맞은 전성기인데…‘물러설 수 없다’
서울시 구로구 가마산로 242 에 위치한 애경 본사 전경. 임준선 기자.
최근 애경그룹은 계열사들의 순항에 힘입어 지난해 그룹 사상 최대 성과를 내는 등 상승세를 타고 있다. 애경유화는 올해 매출이 사상 처음 1조 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되며, 제주항공은 국내 저가항공사 중 최초로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1000억 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한 애경산업은 지난달 코스피 입성, 대규모 자금을 모집했을 뿐 아니라 주가도 연일 상승해 그룹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오진원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올해 초 “애경산업의 상장으로 AK홀딩스 주가도 재평가될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애경그룹은 또 오는 8월에는 공항철도 홍대입구역의 통합 신사옥에 계열사 6곳이 입주, ‘홍대시대’ 개막을 예고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AK켐텍이 가습기살균제 성분이 검출된 원료를 두고 피죤, 환경부와 진실 공방을 펼치면서 꽤 시끄러워질 조짐을 보인다. AK켐텍은 그룹 지주사인 AK홀딩스가 지분 80.11%를 보유한 화학회사다. 애경그룹은 2010년부터 AK켐텍의 기업공개(IPO)를 추진했으나 2015년 국세청의 세금추징 이후 상장 추진이 잠정 중단된 상태다. 증권가에서는 최근까지도 AK켐텍을 애경그룹의 또 하나의 상장 기대주로 꼽았다.
환경부는 지난 3월 12일 피죤의 스프레이 탈취제 제품에서 가습기살균제 유해 성분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가 검출됐다고 밝혔다. 환경부 발표에 피죤이 먼저 “원료공급사인 애경 계열사 AK켐텍에 대해 민형사상 조치를 취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자 AK켐텍은 “피죤에 공급한 원료에 PHMG를 처방한 적 없다”고 맞섰다. 환경부가 지난 3일 AK켐텍의 현장점검을 통해 ‘ASCO-MBA’ 원료에 대한 시료를 채취, 분석 검사한 결과 “PHMG성분이 검출된 것을 확인했다”고 밝히면서 상황은 AK켐텍에 불리해졌다.
비록 환경부 발표는 스프레이 탈취제에 관한 것이지만 예전 가습기살균제 사태를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해당 유해성분이 가습기살균제 사태 때 문제가 된 성분이기 때문이다. 환경부 조사 결과가 사실일 경우 “제품 판매만 했다”며 책임에서 벗어나려던 애경이 이번에는 해당 성분을 실제로 납품한 꼴이 된다. 하지만 AK켐텍은 “자체 조사 결과 ‘불검출’을 받았다”며 “환경부의 고시 기준이 불명확해 화학적으로 다른 물질을 동일 물질로 판단토록 하는 등 결과에 오류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환경부와 AK켐텍은 지난 17일 만나 서로 의견을 교환했으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AK켐텍 관계자는 “가습기살균제 유해 물질은 기업이 존폐의 기로에 설 정도로 여론이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문제”라며 “환경부의 고시 기준이 불명확해 오인의 여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환경부가 이를 공식적으로 발표했기에 문제를 제기했고 만남을 가진 것”이라고 17일 면담의 이유를 설명했다.
AK켐텍 다른 관계자는 “17일 만남을 통해 서로 검사 결과가 다른 이유를 설명했으며 현재 환경부에 반박 대응할 자료를 확보하고 있다”며 진실 공방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전했다. 환경부 또한 “만남 자리에서 환경부 조사 결과가 나온 이유를 설명했으나 입장 차를 좁히지 못했다”며 “추후 국립환경과학원의 정밀 조사를 다시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재계에서는 AK켐텍이 또 다시 유해성분 논란에 휘말린 것 자체가 애경산업·애경유화 등 다른 계열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실제로 애경산업의 경우 상장 직전 불거진 가습기 살균제 리스크 탓에 공모 흥행에 실패해 희망공모가 밴드 최하단인 2만 9000원으로 공모가가 결정됐다. 또 애경유화는 사상 최대 실적과 코스피 상승에도 불구하고 올 들어 주가가 오히려 하락하고 있다.
특히 애경산업은 AK켐텍과 거래가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애경산업은 ‘계면활성제 등 원재료 매입’ 명목으로 AK켐텍에서 2015년에 323억 원, 2016년에는 318억 원, 2017년에 252억 원어치를 매입했다. 애경산업 관계자는 “AK켐텍에서 매입하는 원재료의 구체적 내용은 정확히 확인하기 어렵다”면서도 “AK켐텍은 같은 그룹 계열사일 뿐 현재 AK켐텍과 관련해 불거진 사안은 애경산업과 별개”라고 말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가습기살균제 가해기업들 배상은?…옥시 ‘1~3차 완료’ SK케미칼 ‘분담금 납부 중’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과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는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IFC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옥시레킷벤키저(이하 옥시)의 의약품 사업 재개를 규탄했다. 피해자들은 “지난달 10일까지 정부와 가습기넷을 통해 접수된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수는 6200명, 그 가운데 사망자만 1312명에 이른다”며 “가습기살균제 참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옥시가 생활용품 사업을 줄이고 의약품 등 헬스케어 사업에 집중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옥시는 약사회를 돌며 판매자인 약사들에게 읍소 작전을 펴고 있다”고 주장하며 옥시 의약품 불매운동을 선언했다. 옥시는 현재 개비스콘과 스트렙실 등 의약품을 판매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 최대 가해 기업으로 인식되고 있는 옥시는 2016년 6월부터 배상 책임을 결정, 배상 대상자로 인정받은 416명의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옥시 측에 따르면 옥시는 현재까지 1·2차 피해자에 대해 98%, 3차 피해자에게 50%의 배상을 완료했다. 그러나 최근 옥시 측이 4차 피해자들에 대한 피해 배상 계획을 부인하면서 사실상 배상을 ‘중단’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옥시 관계자는 “절대로 배상을 ‘중단’한 것은 아니며 끝까지 책임을 질 것”이라며 “다만 피해자가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향후 몇 차까지 배상이 이뤄질지 불확실성이 많다. 옥시 매출이 90% 이상 감소한 상황에서 향후 배상을 하기 위해 정부와 다른 가해 기업들이 공동 배상안을 마련해 진행하자고 제안하는 중”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지난해 정부가 피해구제분담금을 부과했을 때는 옥시를 비롯해 SK케미칼, 애경 등이 모두 분담금을 부과받았는데, 현재 진행 중인 피해 배상에 대해서는 다른 기업들이 모두 참여하지 않는다”며 “정부가 다른 가해 기업들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었으면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가해 기업 중 하나로 꼽힌 SK케미칼은 지난해 8월 환경부가 부과한 피해구제분담금 341억 원을 납부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습기메이트’를 제조한 SK케미칼은 판매사인 애경산업과 함께 환경부로부터 피해구제분담금을 부과받았다. 또한 두 회사는 지난 2월 표시광고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로부터 검찰에 고발됐으나, 지난달 29일 검찰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공소권 없음 판단을 내렸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