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커버] 듀스 데뷔 25주년 특집2(끝)-전문가들이 말하는 듀스의 음악 그리고 업적
듀스 멤버 고 김성재(왼쪽)와 이현도. 출처=듀시스트
듀스는 서태지와 아이들과 함께 1990년대를 상징하는 가요계 아이콘이었다. 특히 듀스는 힙합 음악의 선두주자로 평가된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듀스 이전까지 한국 대중음악의 정서 패턴은 백인 음악 중심이었다. 그런데 듀스가 등장하면서 백인 음악에서 흑인 음악으로 정서의 골간이 이동했다”고 평가했다.
1993년 4월 발매된 듀스의 데뷔 앨범 ‘DEUX’엔 가수 현진영이 앨범 작업에 참여하고, 이현도가 전곡을 작사·작곡해 화제를 모았다. 타이틀 곡 ‘나를 돌아봐’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임진모 평론가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적 바탕은 락이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락에 랩을 끌어들였다면, 듀스는 완전한 흑인 음악을 했다“라며 ”그렇기 때문에 듀스는 힙합 음악의 원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나를 돌아봐’부터 ‘힙합’이라는 용어가 상용화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같은 해 12월에 발매된 2집 ‘DEUXISM’ 또한 연타로 히트를 치면서 듀스는 가요계에서 확실하게 자리매김 하게 된다. 타이틀 곡 ‘우리는’을 비롯해 ‘GO! GO! GO!’ ‘약한 남자’ 등은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한동윤 대중음악평론가는 “1990년대 초반에 가요계엔 흑인 음악이 별로 없었다. 댄스 음악에 랩을 들이는 정도였는데 어설펐다. 랩핑도 단조롭고 밋밋했다“라며 ”그런데 듀스는 랩핑이 다이나믹하고 체계가 잡혀 있었다. 특히 2집에서 한국어 라임을 맞추려는 시도가 본격화되면서 힙합 발전에도 굉장한 영향을 끼쳤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한동윤 평론가는 ‘GO! GO! GO!’를 지목했다. 그는 “‘GO! GO! GO!’는 영어 단어 뜻대로 ‘가겠다’는 의미도 있지만, 가사 전부가 ‘~고’로 끝난다. 이 작업 덕분에 한국어 랩핑도 라임을 재미있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덧붙였다.
2.5집 ‘RHYTHM LIGHT BEAT BLACK’은 이듬해인 1994년 9월 발매됐다. 당시 흔치 않았던 리믹스 앨범으로 ‘여름 안에서’는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최근까지도 ‘여름 안에서’는 피서지 인기곡 TOP3에 꼽히는 등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듀스는 1995년 4월 3집 정규 앨범 ‘FORCE DEUX’를 내고 6월 돌연 해체를 선언한다. 3집 앨범은 발매 전부터 음반상으로부터 140만 장의 선주문을 받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3집은 2.5집과 함께 ‘90년대를 빛낸 명반’에 선정되기도 했다.
1995년 듀스는 팀의 전격 해체 선언을 했다. 출처=연합뉴스
이처럼 인기 정상을 달리던 듀스는 갑자기 기자회견을 열어 “무리한 스케줄 등으로 인해 육체적·정신적으로 지쳐 해체를 결심하게 됐다”고 해체 이유를 밝혔다. 고별 공연엔 5억 원의 제작비가 투입 됐고, 폭발적인 인기를 증명하듯 5만여 명의 관객이 입장했다.
다만 듀스는 한국의 빌보드인 ‘가요 톱 10’ 순위에선 단 한 번도 1위를 하지 못했다. 한동윤 평론가는 “듀스의 음악은 당시 가요 댄스 음악에 비하면 다소 대중성은 떨어졌다“라며 ”훅이라고 하는 후렴이 중요한데 듀스 음악의 후렴은 가볍지 않았다. 대중들이 대대적으로 따라 부르기엔 어려웠다”라고 평가했다.
듀스에서 리더 이현도는 음악을 담당했고, 김성재는 퍼포먼스를 담당했다. 이현도는 힙합 1세대 뮤지션으로 지금까지도 ‘천재 프로듀서’로 꼽히고 있다. 김성재는 1집부터 3집까지 모든 타이틀 곡의 안무를 직접 짰을 정도로 춤 실력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패션 감각도 뛰어나 힙합 체크 남방 등 많은 패션 아이템을 유행시켰다.
한동윤 평론가는 “김성재는 우리나라에서 잘 볼 수 없었던 엣지있는 패션, 흑인들의 할렘가에 충실한 힙합 패션을 보여주면서 비주얼적으로도 멋있는 부분이 많았다”고 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또한 “남들이 시도하지 못하는 아주 독특한 패션 스타일을 스타일리쉬하게 소화해 냈다. 당시 김성재는 ‘음악을 하지 않았으면 모델을 했을 것이다’란 얘기까지 나돌 정도였다“라며 ”김성재가 등장한 화보도 굉장히 화제가 되기도 했다”고 의견을 보탰다.
많은 후배 음악인들 또한 듀스의 음악을 재평가 하고 있다. 블락비 지코는 한 방송에서 김성재에 대해 “정말 존경하고 지금도 팬으로서 너무나 좋아한다. 지금 봐도 스웨그가 아예 다르다. 한국 최초의 스웨그”라고 칭송했다. 자신의 SNS에도 그는 김성재를 ‘뮤즈’라고 밝혔다.
빅스는 평소 이현도를 ‘존경하는 선배’로 여러 차례 꼽았다. 프로듀서 용감한 형제 또한 평소 듀스에 대해 존경심을 표해 왔다.
이처럼 그들의 음악은 아직까지도 많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정덕현 평론가는 “지금 다시 음악을 들어도 여전히 세련된 면이 있다. 음악적으로 워낙 뛰어났기 때문에 그만큼 가치가 있다”면서도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김성재가 사망하면서 음악이 중간에 끊겼다는 것이다. 추모하는 분위기와 함께 선구적으로 힙합 장르를 열었다는 점에서 후배들 입장에선 상당히 ‘리스펙’하는 면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중음악계에 듀스가 끼친 영향이 막대하다고 입을 모았다. 임진모 평론가는 “춤, 패션 모든 면에서 힙합이 갖고 있는 문화를 최초로 전달한 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당시에 맞지 않은 흑인 힙합 음악을 구사 했음에도 불구하고 서태지와 아이들에 못지않은 스타덤을 확보했다는 것이 경이롭다. 그래서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듀스는 매우 중요한 팀“이라고 분석했다.
정덕현 평론가 또한 “듀스는 음악적 성취가 굉장히 독특하면서 뛰어났다. 당시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있었음에도 신예 듀스는 서태지의 아성에 도전할만큼의 힘을 발휘했다. 어느 정도 파괴력이 있었다는 걸 알 수 있다”라고 평했다.
김경민 기자 mercur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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