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 소소한 행복 추구…‘설정 빼고 자연 더하고’ 현대인들 취향 저격
개그맨 윤택, 이승윤이 번갈아 출연하며 초야에 묻혀 사는 이들을 찾아다니는 이 프로그램 ‘한 번도 안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다’고 말할 정도로 중독성이 강하다. 특히 중장년 남성들의 지지가 압도적이다. ‘왜 그리 챙겨보나’ 싶어서 곁에서 함께 보던 아내들도 계속 보게 된다는 마성의 프로그램이다. ‘나는 자연인이다’의 인기 저변에는 현재 한국 사회를 관통하고 있는 ‘로망’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 자연으로 돌아가라…인간의 본능
인간은 자연에서 와서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경제적으로 팍팍한 삶과 미세먼지 등으로 인해 피폐해진 삶을 피해 자연으로 파고들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다. 그래서 그들은 자연과 함께하는 TV에 집중하는 셈이다.
지난해 방송가를 강타한 키워드는 ‘욜로’(You Only Live Once)였다. 한 번뿐인 삶을 즐기며 살라는 의미다. 그래서 요즘 예능을 보면 죄다 먹거나 여행을 떠난다. 몇몇 프로그램은 타지로 여행을 떠나 열심히 먹는다. 좋은 곳에서 먹고 자고 쉬고 싶은 것은 모든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이다.
7년째 장수 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 한 장면. 사진= MBN
‘나는 자연인이다’는 이런 심리 상태에 연고를 발라주는 프로그램이다. 유명 연예인들이 즐비한 프로그램은 보기에는 좋지만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JTBC ‘냉장고를 부탁해’는 냉장고 속 재료를 십분 활용해 15분 만에 근사한 요리를 만들어먹는 것이 기본 포맷이지만, 내로라하는 셰프들이 요리해주기에 가능하고, tvN ‘짠내투어’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돈을 아껴가며 여행을 즐긴다곤 하지만, 현실은 그들처럼 해외로 떠나기조차 쉽지 않다.
반면 ‘나는 자연인이다’에는 경제적으로 부유해 보이는 이들이 등장하지 않는다. 산 속에서 풀을 뜯고 물고기를 잡으며 재물 욕을 버린 이들을 주로 조명한다. 그들은 대다수 기구한 인생을 거쳐 이 같은 삶을 선택했다. 세상에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속세에서 하루하루 촘촘하게 짠 수레바퀴 인생을 사는 이들에게 모든 것을 훌훌 털어낸 ‘나는 자연인이다’ 속 인물들의 삶은 적잖은 대리만족을 준다.
# 자연과 벗삼아 온 나영석 PD
최근 예능은 ‘나영석표 예능’과 ‘비(非) 나영석표 예능’으로 나뉠 정도로 나영석 PD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흥행 불패 신화를 써내려가고 있는 나 PD가 선보이는 예능은 한결같은 결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로 자연과 벗삼는 것이다. 천혜의 자연이 빛나는 해외 명소를 찾아다닌 ‘꽃보다’ 시리즈를 비롯해 농촌, 어촌의 삶에 집중한 ‘삼시세끼’ 시리즈, 음식과 여행을 접목시킨 ‘윤식당’ 등 그의 예능에는 항상 자연, 휴식, 먹거리가 있었다.
사진=tvN ‘숲속의 작은집’ 홈페이지
휴대폰조차 사용할 수 없는 출연진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물품만 갖추고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제작진은 처음 싸온 짐에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라고도 주문한다. 주위를 둘러봐도 휑한 그곳에서 출연진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사색하고 휴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빗소리, 새소리를 즐기게 되고,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앉아서 자연을 바라본다. 소지섭은 “그냥 멍하게 있는 것 같다. 여기는 할 게 없는 게 좋은 것 같다”라고 말한다.
# 소확행도 쏠림현상?
‘나는 자연인이다’, ‘숲속의 작은 집’ 같은 설정을 최대한 덜어내고 자연과 화합하려는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유사 프로그램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KBS는 방송인 김준현, 안정환과 배우 김응수, 가수 최자 등이 출연하는 ‘나물 캐는 아저씨’를 새롭게 론칭했다. 이 프로그램은 연관성이 전혀 없을 것 같은 남자 6명이 시골로 가 나물을 캐고 이를 활용해 밥상을 차리를 과정을 보여주는 프로그램이다. 기획의도만 들어도 ‘삼시세끼’나 ‘숲속의 작은 집’, ‘나는 자연인이다’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김준현은 ‘나물 캐는 아저씨’의 제작발표회에서 “‘삼시세끼’는 느리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시청자들에게 안식을 주는 프로그램인 반면 ‘나물 캐는 아저씨’의 포인트는 소확행”이라며 “지천에 널린 풀을 한 줄기 따서 무쳐먹었을 때의 행복과 매력이 크다”고 말했다.
채널A ‘우주를 줄게’는 좀 더 차별화된 소확행 예능으로 손꼽힌다. 밤하늘의 별이 주는 감흥을 이야기와 음악으로 담아낸 이 프로그램은 최초로 시도된 ‘천문 예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집에서도 충분히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MBC ‘이불 밖은 위험해’ 역시 작은 것에서 행복과 기쁨을 찾는다는 측면에서 궤를 같이 한다.
한 방송사 예능 PD는 “과한 설정과 역할놀이를 하던 프로그램이 시들해진 반면 스튜디오 밖으로 나와 자연을 보여주고 그 속에 슬며시 동화되는 프로그램이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며 “하지만 이 역시 하나의 트렌드라 할 수 있어 비슷한 포맷을 가진 프로그램이 쏟아지면 또 대중은 싫증을 느낄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