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천에서 국대 후배들과 땀 뻘뻘…“농구 김주성 은퇴투어 부러워…현역 마지막은 한국에서”
FA(자유계약선수)가 된 김연경의 주가가 폭등하고 있다. 김연경과 재계약을 원하는 상하이는 물론 이전 팀이었던 터키 페네르바흐체, 그리고 중국의 다른 팀 등 김연경을 향한 러브콜이 쏟아진 상태다. 김연경으로선 행복한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 김연경은 진로와 관련해서 어느 정도 마음을 굳힌 듯 했다.
“아마 곧 발표가 날 것 같다. 거의 마음을 굳혔고 세부 작업이 진행 중이다. (어느 리그냐는 질문에) 터키와 중국 중 한 팀이다. 2020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어느 때보다 팀을 결정하는데 고민을 많이 했다. 최고의 리그에서 최고의 실력을 유지하며 올림픽을 준비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김연경은 자신의 진로와 관련해 “거의 마음을 굳혔다”고 말했다.
흥국생명 시절 일본 JT마블러스 입단을 시작으로 해외 생활이 계속된 김연경은 터키 페네르바흐체에서 6시즌을 보내며 모든 대회 우승이라는 진기록을 세웠다. 중국리그까지 포함해 모든 리그에서 최우수선수(MVP)를 경험한 기록도 갖고 있다. 당연히 세계 최고의 몸값을 자랑한다.
“첫 해외 리그의 문을 열어준 일본 배구 경험도 도움이 됐지만 터키가 가장 잊지 못할 배구 커리어를 쌓게 해줬다. 세계적인 실력의 선수들과 함께 뛰며 발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터키에서의 모든 부분이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6시즌을 보냈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상하이 입단 초기에는 당시 사드 문제로 한중 관계가 악화된 상태라 상하이 팬들까지 나서 김연경의 입단을 반대했다고 알려졌다. 김연경은 중국 내 부정적인 여론을 실력으로 평정했고 상하이의 숙원이었던 정규리그 우승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정치적인 문제에 얽매이기보다는 운동에만 전념했고, 동료 선수들의 도움으로 잘 적응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상하이 선수들한테 김연경은 ‘김형’으로 불렸다.
김연경은 그동안 선수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역할을 주로 맡았다. 선수들이 쉽게 말하지 못하는 부분을 김연경이 나서 가감 없이 인터뷰로 대신했다. 일부는 그의 소신이 얹혀 있었겠지만 ‘김연경이 아니면 누가 하느냐’는 시각이 김연경에게 용기를 불어 넣어줬는지도 모른다. 대한배구협회의 부실한 지원 문제, 태극마크에 대한 후배들의 안일한 태도, 남자와 여자 배구 선수들의 샐러리캡 차이 등 김연경이 목소리를 높였던 문제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여러 별명들 중 하나가 ‘센 언니’이다.
“내가 코트에서는 강한 면모를 보이지만 코트 밖에서는 여성스러운 면도 많다. 강한 이미지가 보는 시각에 따라 건방지다는 말을 들을 때도 있고 당당하다고 칭찬을 받을 때도 있다. 가족들은 내가 소신 발언을 하는 것과 관련해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것이고, 그게 김연경이라면 좀 더 파급 효과가 있다고 하더라. 물론 가끔은 망설여질 때도 있다. 너무 안 좋은 이미지로 비치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그래도 후회는 안 한다. 때론 내 이름에 대한 책임과 사명감도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바람도 덧붙였다.
“내 선수 생활이 얼마나 남았을까 싶다. 내가 선수로 뛰는 동안 후배들에게 좀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욕심이 있다. 협회나 구단도 개선해야 할 것은 하고 보완해야 할 게 있다면 보완해나가야 한다. 내가 바라는 건 그뿐이다. 아무도 안 한다면 나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쓴 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번에 진천선수촌에 모인 여자배구대표팀의 특징 중 하나가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는 차원에서 나이 어린 유망주들이 합류했다는 사실이다. 고3 선수들인 박은진(선명여고), 나현수(대전 용산고) 등 공격수들이 대표팀에 뽑히면서 기대를 모으고 있는데 김연경은 대표팀 ‘막내’들을 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은진이, 현수를 보면서 내 고3 시절이 생각났다. 당시의 나도 대표팀에 뽑힌 뒤 선배들이 어렵고 무서워 말 한 마디 못하고 눈치만 보고 다녔는데 이 친구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더라. 그땐 체력적으로 거칠 게 없었다. 아무리 운동을 심하게 해도 지칠 줄 몰랐다. 지금은 배구 외에 해야 할 게 많다. 인터뷰도 많고 촬영, 행사 등 내가 나서야 할 일들이 기다리다 보니 또 다른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나이 어린 선수들을 보면서 기분 좋은 자극을 받는 중이다. 내가 도와주고 가르쳐야 할 부분이 많지만 그들을 통해 내가 배우는 것도 한두 가지가 아니다. 초심으로 돌아갈 시기가 된 것 같다.”
김연경은 자신을 가리켜 ‘말년 병장’이라고 말했다. 함께 대표팀에서 뛰고 있는 김수지, 김희진, 양효진 등은 자신을 포함해 ‘칙칙한’ 선수들이라고.
“말년 병장보다는 후배였을 때가 더 행복하고 즐거웠다. 언니들이 어렵긴 했어도 언니들한테 기대고 미룰 때가 좋았다. 지금은 스스로 이겨내야 하고 책임져야 할 것 투성이다. 그런 부분이 부담이 돼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김연경은 현재 배구 해설위원으로 활약 중인 김사니, 이숙자를 거론하면서 자신은 해설을 못할 것 같다고 말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방송 중에 하지 말아야 할 속어가 난무할 것 같다며 웃는다.
“내가 성격이 급한 편이라 배구 중계하다가 직설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을 수도 있다. 생방송이 아닌 녹화 방송이라면 편집으로 커버가 되겠지만 생방송은 위험 요소가 크다. 방송사고 나기 십상이다.”
공격수는 세터와의 호흡이 매우 중요하다. 다양한 리그를 경험한 세계 최고의 공격수 김연경이 꼽는 최고의 세터는 누구일까. 그는 일본의 세계적인 세터 다케시타 요시에를 거론했다.
“일본으로 이적한 첫 해, JT마블러스 팀에서 만난 다케시타 요시에와 처음부터 환상적인 호흡을 보이며 득점왕에 올랐고, 늘 중위권에 머물던 팀을 준우승으로 이끌 수 있었다. 이듬해에는 팀 우승은 물론 최우수선수로 뽑혔는데 그 배경은 다케시타 요시에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다케시타는 배구에 대한 열정은 물론 자부심이 강한 선수였다. 일본 대표팀에서 만날 때마다 우리를 힘들게 했던 선수라 내가 입버릇처럼 ‘저 언니만 은퇴하면 일본 잡을 수 있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팀에선 잘 지내다가도 대표팀에서 상대 선수로 만나면 아는 척도 안했다. 그렇게 잘하던 선수도 런던올림픽 이후 결혼했고 지금은 아이 둘을 둔 주부로 생활한다. 일본 갈 때마다 시간되면 만나서 식사하는데 아이가 있어서 그런지 지금은 완전히 여성스럽고 인자한 엄마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카리스마가 대단했던 다케시타의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1988년생인 김연경의 나이는 30세. 아직 한창 때이지만 서른 살을 넘어서면서 체력적인 부분에서 변화를 느낀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체력만큼은 자신 있었다. 아무리 자주 외국을 넘나들어도, 장시간 비행기를 타고 이동해도 끄떡없었는데 지금은 피곤함을 느낀다. 그리고 회복 속도가 이전에 비해 더딘 것 같다. 이런 부분이 서른 살 넘기면서 몸으로 오는 변화들이다. 나이는 속일 수 없다더니 정말 맞는 말인 것 같다.”
아직은 은퇴할 시기가 멀기만 하지만 그는 선수 생활의 마지막은 한국에서 뛰고 싶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분명히 밝혔다.
“농구의 김주성 선수를 보니까 멋진 은퇴 투어를 하더라. 굉장히 부러웠다. 내가 은퇴 투어를 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팬들 앞에서 좋은 모습 보이고 박수 받으며 은퇴하고 싶다. 모두가 아쉬워할 때, 더 뛰기를 바랄 때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더 노력해야 한다. 여전히 김연경이 건재하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싶다. 그 마음이 도쿄올림픽 때까지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
진천=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