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그레이드 버전으로 괴물이 돌아왔다”
‘일요신문’에서는 류현진의 영원한 스승인 김인식 전 감독과 의형제처럼 지내는 정민철 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류현진의 2018시즌을 짚어봤다.
정민철 해설위원은 시범경기 때 보인 류현진의 투구와 정규시즌에서 보인 류현진의 투구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레퍼토리가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다. 어깨 수술 이후 지난 시즌 많은 승을 거두지 못했지만 투구 내용이 나쁘진 않았다. 시범경기 때는 투심 패스트볼이랑 회전수를 높인 고속 커브를 선보였는데 정규 시즌 때는 원래의 류현진처럼 던졌다. 시범경기는 말 그대로 시범경기가 아닌가. 자신이 준비한 다양한 구종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시간들이다. 그 경험을 토대로 정규 시즌을 맞이하는데 류현진은 자신이 잘하는 걸 극대화시키는 걸로 방향을 잡은 것 같았다. 오클랜드 전에서는 커터를 많이 썼다면 샌디에이고 전에서는 포심 패스트볼을 주로 던졌다. 갖고 있는 ‘무기’의 완성도가 높기 때문에 경기 상황에 따라 적절한 변화를 주는 것 같다.”
류현진은 시즌 첫 경기의 부진을 딛고 2연승을 이어갔다. 일요신문DB
정 위원은 시즌 첫 등판이었던 애리조나와의 경기에서 류현진이 고전을 면치 못했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말 그대로 시즌 첫 등판인데다 야구장이 체이스필드였고, 자신의 천적인 폴 골드슈미츠와 A.J. 폴락이 버티고 있었다. 아무리 류현진을 ‘괴물’이라 불러도 결국 그도 사람인지라 첫 등판의 부담에다 원정 경기였고 천적이 있는 팀이라는 게 좋지 못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정 위원은 천적을 상대하는 류현진의 심경을 설명하며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줬다.
“선수 시절의 난 LG 트윈스 유니폼만 보면 없던 힘이 솟아났다. 잠실구장만 가면 맞지 않던 밸런스가 맞아 떨어졌다. LG 선수들 구성원이 전부 바뀌어도 LG를 상대할 때면 자신감이 붙었다. 그만큼 야구는 기술 스포츠 이전에 멘탈 게임인 것이다.”
정 위원은 류현진의 장점을 ‘피하지 않고 맞서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타자한테 안타나 홈런이 된 공이 나온다면 다음 타석에서도 류현진은 같은 공을 던지며 승부를 건다. 물론 어느 정도의 점수 차가 벌어졌을 때 가능한 일이지만 기본적으로 류현진은 승부 근성이 매우 뛰어난 선수다. 그런 선수들이 더 성장 발전해나갈 수밖에 없다. 설령 맞더라도 피하지 않고 맞서는 자만이 위기를 극복하는 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야구는 투수가 70% 유리한 위치에 있다. 그러나 막상 경기에 들어가면 투수가 그 유리함을 잊는다.
“중요한 순간에서 투수는 자신이 타자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다는 걸 잊는다. 특히 천적을 상대할 때는 더더욱 그런 상황이 된다. 이럴 경우 류현진은 자신이 류현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변화를 주기보다는 원래 잘 던질 수 있는 공을 던지면 된다. 변화를 주려고 평소 안 던지던 공을 던지면 자기 연민에 빠지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투수가 심약해 보이면 그 경기는 내용을 떠나 패한 거나 다름없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의 류현진은 상대 타자들을 압도해 가는 모습을 보였다. 류현진다운 경기를 펼치고 있다는 의미이다.”
정민철 해설위원의 지론은 간단했다. 세계 최고 리그에서 뛰는 선수라면 일관성 있는 투구를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날 선수의 컨디션은 중요하지 않다. 아무리 몸 상태가 안 좋다고 해도 일관성 있는 투구를 선보여야 한다. 레벨이 떨어지는 선수는 상황에 따라 들쭉날쭉한 경기력을 선보이지만 류현진 정도의 큰 선수라면 일관성 있는 모습을 꾸준히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류현진의 스승인 김인식 전 감독은 애제자의 등판 때마다 가슴이 울렁거리는 걸 느낀다. 제자가 호투를 펼치길 바라면서도 혹시나 하는 불안함에 등판을 마칠 때까지 마음을 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 11일 오클랜드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승을 거둔 날, 류현진은 김 전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날 류현진은 6이닝 1피안타 8탈삼진 1볼넷 무실점 호투로 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 류현진의 결혼식 주례를 맡기도 했던 김 전 감독은 주례사로 “올 시즌 15번 정도 전화가 왔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전했다. 승수를 올린 이후 빼놓지 않고 스승에게 전화를 걸었던 류현진을 빗댄 얘기였다. 류현진은 오클랜드전 승리 후 김 전 감독에게 “이제 14번 남았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스승이 자신의 결혼식 때 했던 주례 내용을 잊지 않은 것이다.
“현진이가 결혼 후 훨씬 더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야구를 잘 아는 배지현 아나운서의 내조 덕분인 것 같다. 전화 통화를 할 때 목소리에 힘이 느껴진다. 그만큼 올 시즌 자신 있다는 의미다. 수술 이후 힘든 시간을 보냈다. 2연승 했지만 앞으로 잘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을 것이다.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고 부상만 조심했으면 좋겠다.”
류현진과 부인 배지현 아나운서 모습. 인스타그램 캡처.
김 전 감독은 류현진의 투구 동작 중 마지막에 볼을 채는 부분이 지난 시즌보다 빨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구속이 살아나는 걸 느꼈다. 현진이 말로는 커브를 던질 때도 회전수를 높였다고 하더라. 투구 동작에서 그 점을 유심히 지켜봤는데 볼을 채는 동작이 빨라지면서 구속과 회전수를 높일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김 전 감독은 류현진의 실력도 실력이지만 모든 상황들이 다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시즌 첫 등판이었던 애리조나전은 심판 판정에서 불리한 부분이 있었다. 투수는 스트라이크 잡으려고 던진 공이 볼로 판정되면 이후 제구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는다. 타선의 지원을 받는 것도 투수의 운이다. 지난해보다 올해는 현진이한테 타선 지원이 더 잘 되고 있다. 심판 판정, 타선 지원 등은 선수의 실력과는 별개의 문제이다. 선수가 더 좋은 성적을 내려면 이런 부분도 뒷받침돼야 하는데 올 시즌 현진이한테 운이 향할지 아닐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스승은 마지막으로 류현진에게 진심 어린 당부를 건넸다.
“올 시즌을 마치면 현진이가 FA 자격을 얻는다.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지만 예기치 못한 일이 생겨도 당황하지 말고 슬기롭게 극복해 나가길 바란다. 시즌은 길다. 앞의 2연승은 잊고 이제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현진이라면 잘해낼 것으로 믿는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