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지켜야 할 우리 유산 [21] 화해와 협력의 시대, 북한의 판소리도 ‘부활’할까
판소리는 한과 슬픔, 기쁨과 해학으로 서민들의 삶을 그려내고, 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새로운 사회와 시대에 대한 희망을 표현한 소리 예술이다. 판소리 명창 안숙선의 공연 모습. 박은숙 기자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과 한 명의 고수(북치는 사람)가 음악적 이야기를 엮어가며 연행하는 우리 고유의 음악 장르다.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라는 뜻의 ‘판’과, ‘노래’를 뜻하는 ‘소리’가 합쳐진 말이기도 하다. 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창(노래)과 일정한 양식을 가진 아니리(말), 풍부한 내용의 사설과 너름새(몸짓) 등으로 구연되는 이 대중적 전통음악은 서민은 물론 지식층의 문화까지 아우르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판소리의 유래는 불분명하나, 조선 영조 30년(1754)에 문인 유진한이 지은 ‘춘향가’의 내용으로 보아 적어도 숙종 시절(재위 1674~1720) 이전에 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판소리를 구성하는 배경, 등장인물, 상황 등은 조선시대(1392~1910)에 뿌리를 두고 있다. 판소리가 생겨날 당시에는 한 마당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서 ‘판소리 열두 마당’이라 하여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배비장타령, 변강쇠타령, 옹고집타령, 가짜신선타령 등 그 수가 많았다. 그러나 현실성 없는 이야기 소재 대신 충, 효, 의리, 정절 등 조선시대의 가치관을 담은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만이 보다 예술적인 음악으로 가다듬어져 ‘판소리 다섯 마당’으로 정착하게 된다.
판소리는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전승됐는데, 지역적 창법의 특징에 따라 동편제(전라도 동북지역의 판소리), 서편제(전라도 서남지역의 판소리), 중고제(경기도와 충청도의 판소리)로 불린다. 판소리의 창자(소리꾼)는 아주 다양하고 독특한 음색을 터득하고 복잡한 내용을 모두 암기하기 위해서 오랜 기간 동안 혹독한 수련을 거친다. 당대의 명창들 대다수는 산중에서 오 년, 십 년 고행하며 목으로 핏덩이를 쏟고, 성대가 변질되는 어려움을 극복한 이들이었다.
정노식이 지은 ‘조선창극사’(1940)에 따르면 역사적인 판소리 명창으로는 조선시대 영조 말, 정조 초에 활동한 하한담, 최선달 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순조 무렵에는 권삼득, 황해천, 송흥록, 모흥갑, 염계달 등의 명창이 이름을 널리 알렸다. 이 가운데 권삼득 명창은 보기 드문 양반 출신 소리꾼으로서 다양한 일화를 남겼다. 그의 아버지 권래언이 남긴 ‘이우당문집’에는 “내게 근심이 두 가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아들이 노래로 세월을 보내 집안을 욕되게 함”이라고 적혀 있는데, 당시 예인을 바라보던 양반사회의 시선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또 다른 명창 모흥갑의 경우 ‘평양감사 환영연도’(서울대박물관 소장)라는 10폭 병풍의 그림에 노래하는 장면이 묘사돼 있기도 하다. ‘한국전통연희사전’에 따르면 그는 헌종으로부터 ‘동지’ 벼슬을 제수받은 ‘어전 명창’이었는데, 이처럼 임금이 소리꾼을 총애해 명예직이나마 벼슬을 내린 사례는 이것이 최초였다고 한다.
조선 말기를 거쳐 일제강점기에도 판소리의 인기는 드높았다. 명창들이 지방도시 순회공연에 나서면 한 달씩 따라다니는 이가 많았고, 오십 리, 백 리에 이르는 먼 길을 차를 대절해 미리 오기도 하는 등 열광적이었다고 한다. 요즘 말로 이른바 팬덤(fandom)층이 형성돼 있었던 셈이다.
광복 이후 6·25전쟁을 거치고 한국이 급속하게 현대화되면서 판소리는 서양 음악의 열풍에 밀려 한때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데다, 수련하기 어렵고 사회적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소리꾼의 길을 걸으려는 이들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4년 국가가 판소리를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하고 제도적 지원이 시작되면서 판소리의 전통은 활기를 되찾게 된다. 1970년대에는 기독교계에서 성경을 판소리로 만드는 사업을 진행해 관심을 끌기도 했다.
판소리는 한과 슬픔, 기쁨과 해학으로 서민들의 삶을 그려내고, 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새로운 사회와 시대에 대한 희망을 표현한 소리 예술이다. 또한 우리말의 음악성을 소리로 창조해 그 표현력을 최대치로 높인 언어 예술이기도 하다. 무대장치나 연출자 없이 소리꾼과 고수, 단 둘이서 극을 이끌며 여러 시간 동안 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예술이 또 있을까. 유네스코가 2003년 한국의 판소리를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이유 중 하나도 여기에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