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 분위기 조성해 ‘노출샷’ 찰칵…성인 사이트 유포까지
유투버 양예원 씨의 폭로로 그간 피팅 모델 촬영을 빌미로 이뤄진 성추행 사건이 제대로 수사될 지 관심이 집중된다. 유투브 캡처
양 씨가 영상과 SNS에 토로한 바에 따르면 2015년경 배우를 꿈꾸던 양 씨는 구인 사이트에서 피팅모델 아르바이트에 지원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스튜디오에서 모집한 피팅모델 일자리는 ‘실장님’이라는 사람의 주도로 이뤄졌다. 양 씨는 실장에게 카메라 테스트를 받은 뒤 촬영 콘셉트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듣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양 씨에 따르면 가끔 섹시한 콘셉트로 촬영할 수도 있다는 정도의 설명이 계약 당시 이뤄졌다. 하지만 촬영 당일 찾은 스튜디오는 상상과는 달랐다. 양 씨가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진행자가 철문을 닫고 이를 다시 자물쇠로 걸어 잠그고, 3중으로 도어록을 잠그는 등 폐쇄적인 공간을 만들어 버렸다. 안에는 20명 남짓한 낯선 남성들이 담배를 피우며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준비하고 있었다. 양 씨에게는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조성돼 있었던 것. 그녀는 촬영을 위한 의상으로 포르노에서나 볼법한 속옷을 제공 받고, 이에 대해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도리어 실장에게 협박을 당했다. 결국 낯선 남성 20여 명에 둘러싸여 공포를 느끼는 와중에 원치 않는 노출 촬영을 당했다. 그리고 최근 그 사진이 성인 사이트 등에 유포됐다.
문제가 됐던 합정동의 F 스튜디오는 소유주가 바뀌어 다른 사람이 W 스튜디오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건물 외부와 내부는 양 씨가 범행을 했던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18일 ‘일요신문’이 찾은 당시 F 스튜디오 자리는 4층짜리 건물 2층에 있었다. 스튜디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건물 현관 보안문을 통과해 계단을 한 층 올라가야 한다. 창은 모두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 내부가 보이지 않고, 건물은 굳게 닫혀 있었다. 같은 건물 1층에 있는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사진관과는 사뭇 대조적인 분위기였다.
억울한 이는 스튜디오를 넘겨 받아 현재 운영하고 있는 W 스튜디오 대표다. 지금까지도 W 스튜디오 대표는 양 씨의 가해자로 몰리며 개인 신상정보가 유출되고 욕설과 비난을 듣는 등 고초를 겪고있다. W 스튜디오 관계자는 “주인이 바뀌어 양 씨 사건과 저희는 무관한데, 제가 가해자로 잘못 알려져 고통이 심각하다”며 “양 씨가 말했던 대로 실제 스튜디오 안에 철문과 도어록이 있다. 하지만 촬영회를 할 때 공간을 폐쇄적으로 운영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고 우리는 그렇게 운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F 스튜디오는 다른 지역으로 확장 이전해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고, 촬영회도 주기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F 스튜디오에서 촬영회를 목적으로 온라인에 올렸던 모델 상시모집 광고를 살펴보면 ‘스튜디오에서 멋진 세트와 의상으로 3시간 정도 프로필사진 형태의 인물사진 컨셉촬영’이라고 구인 목적이 설명돼 있다. 초보와 청소년도 지원 가능해 자격조건이 까다롭지는 않지만, 18~35세 여성만을 모집하는 것이 특징이다.
검색 포털에 해당 스튜디오를 검색하면 ‘섹시, 초섹시’ 관련 촬영회가 다수 진행돼왔음을 알 수 있다. 그동안 촬영회를 통해 찍은 사진 중에는 여성들의 성기와 특정 신체부위를 부각한 사진들이 많다. 일본의 AV비디오에서 등장할 법한 일본 여고생 체육복, 수영복 등을 착용한 여성들의 사진은 물론이고, 훤히 속이 비치는 스타킹을 신고 허리를 굽혀 엉덩이와 특정 부분이 강조되도록 자세를 취하고 찍은 사진도 다수 발견됐다. 이를 접한 한 남성 네티즌은 “성 상품화 수준을 넘어 폭력성마저 느껴진다”고 말했다. 현재 스튜디오의 공식 홈페이지는 삭제된 상태다.
사진 촬영 동호회 커뮤니티에서 촬영한 여성 모델들의 노출 사진이 공유되고 있다. 사진은 해당 기사와 무관합니다.
하지만 사전에 충분한 상의 없이 모델을 성 상품화하고, 변태적 포즈와 외설적인 장면을 집중해 촬영하는 것은 문제의 소지가 있다. 더군다나 개인 소장용으로 찍게끔 된 사진을 온라인에 유포하는 것은 범죄다.
이런 일부 스튜디오의 촬영회 참가자들이 여성 사진을 촬영해 개인 블로그나 동호회 카페에 올려놓은 것은 2006년부터 심심찮게 발견된다. 이런 게시글에는 “아침부터 발끈하다”와 같은 음담패설과 여성의 몸매를 평가하는 댓글이 주로 달려있는데, 여성비하는 물론 입에 담기 힘든 수준의 발언이 많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취미활동으로 사진 촬영회에 참석하는 사람들에 대한 네티즌의 시선이 곱지 않다. 합의 없이 사진을 유포해 피해자를 평생 고통에 들게 하는 것은 심각한 범죄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2012년 한 스튜디오에서 모집한 촬영회 공지 글을 살펴보니, 촬영 그 자체보다는 여성 모델의 신체적 특성을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 눈에 띈다. ‘실내 누드 촬영에 초대합니다’라는 공지 글에는 모델의 나이, 키, 가슴사이즈 등이 상세하게 소개돼 있다. ‘란제리, 수영복에서 한 꺼풀씩 벗어 갑니다’라고 촬영 방향을 설명하고 1시간 촬영당 6만 원 상당의 참가비를 받고 있다.
스튜디오 업계와 모델업계의 말을 종합하면 촬영에 노출이 포함될 때는 그 정도와 노출 수위를 미리 상의하고 합의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현장에서 포즈나 콘셉트에 대해 모델에게 추가 주문을 할 수도 있지만 동의 없이 이뤄지는 것은 강압이라는 반응이다. 모델 겸 배우인 A 씨는 “신인이나 모델일이 처음인 사람들을 노리고 노출 부분을 구체화하지 않고 계약하려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의상이나 노출 수위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모두 계약서에 적시해야 한다. 촬영 현장 분위기를 험악하게 하며 얼렁뚱땅 모델에게 합의되지 않은 촬영을 지시하는 건 고전적인 수법”이라고 설명했다.
F 스튜디오 대표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모델 페이를 지급했고 콘셉트라든가 이런 것도 협의해 구두로 계약했다”며 양 씨의 성추행과 협박 주장에 대해 “말로만 포즈를 취해달라는 식이었고 분위기는 전혀 강압적이지 않았다”라고 했다. 또한 “당시 작가들로부터 사진을 유출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받았다. 유출자를 찾아야 하는데 방향이 이상하게 흘러간다”며 “저도 무고죄로 고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17일 양 씨를 비롯한 피해자 2인의 고소장이 제출돼 수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경찰은 촬영 당시 강요와 협박이 있었는지 성추행 여부, 사진 유포 경위에 대해 조사할 방침이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