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 위험 도사리는데...예산-인원 부족 등 관리 강화 및 일부 상인들 인식제고 시급
도로와 보도 여기저기에 설치한 불법 세움 간판들. 서울시 등 지자체는 정기적으로 불법 세움 간판을 단속하고 있지만 세움 간판은 마치 이를 무시하듯 불법 설치가 반복되고 있다.
상인들은 “홍보를 위해 어쩔 수 없다”며 불법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시와 구청 직원들은 쏟아지는 세움 간판에 혀를 내두를 정도라며 고충을 토로했다.
서울 중구 순화동 일대, 입간판이 쓰러져 있다.
기자는 2018년 5월 28일 시청역과 서소문 일대를 둘러봤다. 이 곳에서는 여느 곳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세움 간판들을 볼 수 있었다. 세움 간판에는 각종 업체들의 홍보문구가 가득했다. 시민들은 세움 간판들에 대해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세움 간판을 피해 가던 길을 재촉했다.
상인들이 인도·보도에 설치한 세움 간판은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상 모두 불법이다. 옥외광고물 등 관리법 시행령 12조 7항은 “입간판(세움 간판)은 지면이나 건물, 그 밖의 인공구조물 등에 고정되어야 하며, 이동할 수 있는 간판을 설치해서는 아니 된다”며 “다만 유동 입간판은 공중에게 위해를 끼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시·도 조례로 설치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서울시 도시빛정책과 관계자는 “서울시 조례 9조에 따라 유동 입간판은 자신의 업소 건물에서 1m이내에 설치해야 한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아야 하고 보행자 통행을 방해해선 안 된다”며 “조례의 허용범위를 따져도, 도로와 인도에 있는 입간판은 대부분 불법이다”라고 강조했다.
서울 중구 순화동 일대, 불법 입간판.
불법 세움 간판 중에서도 ‘길막’ 세움 간판은 더 큰 문제가 있다. 길막 세움 간판은 말그대로 보행자의 길을 막는 세움 간판들로 안전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높다. 특히, 쓰러진 세움 간판 등은 인도를 아예 가로막고 시민들의 보행을 방해하고 있었다. 쓰러진 세움 간판들로 시민들이 발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도 다분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중구 순화동 일대, 입간판 지지대가 방치된 모습.
문제는 불법 세움 간판 단속이 쉽지 않은데 있다. 중구청 관계자는 “시청 인근은 적은 편이다. 명동에는 훨씬 더 많다. 경쟁업체가 서로 입간판을 치워달라고 민원을 넣는 경우도 많다. 정기적으로 단속을 나가지만 하루에 같은 간판을 세 번 수거한 일도 있었다”며 “인도나 차도에 나와 있는 입간판은 위험하다. ‘너무하다’ 싶을 만큼, 보행에 불편을 초래하는 입간판도 많다”고 설명했다.
서울 혜화역 인근 횡단보도 앞 입간판.
5월 28일 오후 2시경 기자는 혜화역 일대를 찾았다. 횡단보도 앞 입간판이 눈에 띄었다. 왼편에 있는 상점이 홍보를 위해 횡단보도 앞에 ‘길막’ 입간판을 설치한 것이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장사가 좀 안 되면 치워놓다가 다시 설치한다. 하지만 사람이 지나가다가 입간판이 넘어지면 위험할 수 있다. 상인들을 상대로 정도가 심한 입간판을 자진 철거하라고 계도하면 반발이 심하다”고 밝혔다. 세움 간판 비용이 저렴한 편이라 단속해서 수거해도 다시 세우면 그만이라는 인식도 문제라고 설명했다.
성신여대 앞 로데오거리 일대(좌)와 혜화역 인근 건물
성신여대 앞 로데오거리는 ‘길막’ 세움 간판이 널려 있었다. 아예 주차된 트럭과 세움 간판으로 시민들은 크게 보행길을 돌거나 좁은 틈 사이를 비집고 다닐 수 밖에 없었다.
오른편 사진처럼, 건물 안쪽에 설치한 입간판은 시민들의 보행에 불편을 주지는 않지만 광고에 대한 피로도는 별반 차이가 없었다. 도로와 인도, 건물 가릴 것 없이 도가 지나친 세움 간판들로 채워져 있었다.
성신여대 인근 입간판. 보행로와 건물 가까이 붙어있다.
상인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식당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상인들이 양심이 없다. 입간판으로 길을 전부 막아 놓았다. 물이나 모래를 채워 넣지 않아 바람에 날려 넘어진 입간판을 수차례 봤다”며 “물과 모래를 채우고 건물 쪽으로 붙여서 설치해야 통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상인은 “입간판은 건물에 붙여서 놓아야 한다. 우리는 신경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일부 상인들이 자신들 편한대로 설치하느라 싸움이 일어나기도 한다”며 “빌딩 안에 상가가 50~60개가 있는데 나름대로 가이드라인을 정해놓는 경우도 많다. 서로의 ‘밥벌이’가 걸려있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홍익대 걷고싶은거리 인근 입간판. 최준필 기자
홍익대학교 앞도 세움 간판 ‘지옥’이긴 마찬가지다. 세움이란 단어가 어색할 정도로 쓰러진 세움 간판들. 이마저도 상점 측에서 치우지 않으면 세움 간판들은 온종일 행인들의 보행을 방해한다. 쓰러지고 넘어져도 세움 간판은 ‘좀비’처럼 시민들의 안전을 위협하며 인도를 점령하고 있었다.
서울시와 지자체 공무원들은 단속 자체의 어려움도 문제지만 일부 ‘무개념’ 상인들에 대한 피로도가 더 크다고 지적한다. 서울시 도시빛정책과 관계자는 “대한민국은 불법 세움 간판들의 난장판이다. 안 그래도 각 구청의 단속인원이 부족한데 깡패들의 위협을 받은 경우도 있었다”며 “유흥주점이 설치한 세움 간판을 단속하면서 체격 좋은 술집 직원이 ‘손모가지를 잘라 버린다’ 등 협박까지 한다”고 밝혔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우리도 사람인데…불법 세움 간판에 벌금매기면 상인들이 찾아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도가 지나친 세움 간판을 처음부터 수거하면 난리가 난다”며 “윽박지르고 싶지만 상인들의 반발이 너무 심해서 움츠리게 된다”고 설명했다.
중구청 관계자도 “입간판에 대해 벌금을 매기면 ‘죽일놈’이라며 다짜고짜 싸우자고 나오는 분이 있다. 제가 폭행을 당해 경찰에서 조서를 꾸민 일도 있다. 언어폭력도 많아서 단속에 어려움이 크다”고 덧붙였다. 공무집행 방해에 대한 혐의를 씌우기에도 관련 규제가 미비해 현실성이 없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그렇다면 불법적인 세움 간판에 대한 해결책은 정말 없을까. 서울시 도시빛정책과 관계자는 “불법 세움 간판 과태료는 최대 500만 원이다. 처벌이 너무 약하다. 강력한 법이 필요하다”며 “물론 시민 의식 개선도 중요하다. 매일같이 계도하고 수거해도 ‘무조건 몰랐다’고 잡아뗀다. 장기적으로 상인들의 인식과 함께 시민들 역시 불법과 불편에 대한 적극적인 신고가 필요하다. 세움 간판의 불법성에 대한 기본적인 공감대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선재 기자 s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