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측 “개인 일탈” 해명에도 70억대 피해 투자자들 농협 임원 등 고소...수사 확전 불가피
농협 지역 조합에서 백화점 상품권거래 등의 70억 원대 금융사기 의혹이 제기됐다.백소연 디자이너.
[일요신문] 농협 감사와 지점장 등 임원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난 120억 원대 금융사기 사건에 대해 수사기관이 재수사에 돌입했다. 이미 구속된 농협 지점장에 이어 지역조합장으로까지 수사가 확대될 전망이다. 자체 감사에 들어간 농협으로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수사 결과에 따라 농협의 이미지는 큰 타격이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고소장에 따르면, 피해자들은 경북 구미 A 농협 조합장과 상임이사, 지점장, 감사 등 고위 관계자를 믿고 70억 원의 자금을 A 농협의 한 지점에 예치했다. 이 과정에서 20억 원이 조금 넘는 수수료를 받았으며, 무엇보다 농협 조합의 인감과 지점장의 지급보증서 등을 믿고 자금 예치를 결정했다고 적시했다.
앞서 5월초 경북 구미 A 농협 지점장과 감사가 투자 알선을 미끼로 120억 원의 예탁금을 가로챈 사기 사건에 연루된 것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크게 일었다. 경찰 수사 결과에 따르면, 사기는 내부 조력자인 농협 임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지점장은 규정에도 없는 지급보증서를 발급해주고 임원들과 자리를 만든 것도 모자라 조합의 인감을 날인한 문서를 작성해 주는 등의 수법으로 투자자들을 안심시켰다. 그 뒤 사기꾼들에게 수표를 줘 거액 인출을 돕고 감사와 함께 14억 원이나 되는 대가를 챙겼다.
경찰은 지점장 등 사기꾼들을 구속했다. 이로서 120억 원대 금융사기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했다. 하지만 120억 원 중 70억 원대 피해를 본 개인 투자자들이 농협 조합장 등 임원 2명을 검찰에 고소(5월 21일)하면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당초 경찰은 120억 원대의 금융사기 사건이 개발투자금 명목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밝혔다.
‘일요신문’이 단독입수한 농협 70억 원대 금융사기 사건 고소장 사진
조합장 B 씨는 경찰 조사와 언론을 통해 알게된 사실이고, 자신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인감 사용에 대해선 “(구속된 지점장이)쌀거래를 위해 인감을 사용한 것으로 금융사기 사건에 쓸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다”면서 “억울하다. 농협 이미지까지 망가져 다른 예치 고객들까지 불안에 떨며 연락이 와서 정신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인감 사용 관리와 고액 수표 및 쌀거래 내역 확인 등의 조치는 없었냐는 지적에는 “통상적으로 밑에서 잘 관리하는 사안이며, 일부 수표 등의 실태는 따로 살피기 전에는 그 위법성 등을 사전에 감독하거나 예방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별건 사업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고 일축했다.
농협 감사 관계자는 “조합장 등의 위반 사항은 현재 없는 것으로 안다. 구속된 지점장의 개인적인 일탈로 보인다”고 밝혔다. 다만, “추후 감사와 경찰 등의 수사 과정에서 위반 사실들이 적발될 경우 상응하는 강경조치를 하겠다”고 덧붙였다.
농협 측과 조합장 등은 이번 금융사기 사건에 대해 사전에 일체 알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피해자들 역시 자신들이 금융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경찰과 언론을 통해 처음 접했다며 황당해했다. 이들은 조합장과 지점장 등의 말처럼 쌀거래를 위한 인감과 수표 발행에 대한 사용처와 사용 여부 등을 확인하거나 관리했다면 이같은 피해는 입지 않았을 것이라며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특히, 한 임원의 경우 상품권 거래라며 예치를 안심시키다가 사건이 발생한 뒤에 갑자기 쌀거래 얘기가 나왔다고 지적했다. 연루된 농협 임원들이 말을 맞춘 것이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 상황이다.
일각에선 이번 120억 원대 금융사기 사건은 농협 감사와 지점장 등이 연루된 사실도 충격이지만 특수은행인 농협의 감시 시스템 부실 논란이 더 우려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로 농협 간부가 연루된 희대의 금융사기 범죄가 벌어졌는데도 농협 측이 보여준 태도는 개인 일탈이나 지역적인 문제 등으로만 치부한 채 내부 감시와 인감, 수표 등 관리 부실엔 무책임해 보인다는 지적이다.
서동철 기자 ilyo100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