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지청 “심리분석가 동석 안헀다” 피해자에 재진술 요구…고소 1년여 지났지만 ‘제자리’
피해학생의 노트. 교감을 악마로 묘사하고 있다.
지난해 3월 7일 충남 천안시 동남구 안서동 충남해바라기센터에서 있었던 1차 경찰 진술 때 B 양은 성추행 피해를 진술했다. B 양의 진술은 모두 영상녹화됐다. 충남지방경찰청은 지난해 6월 16일 이 사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반 년 뒤인 지난해 10월 27일 대전지방검찰청 천안지청에선 2차 진술이 있었다. B 양은 피해 장소와 손짓, 만지는 방법 등 대부분을 1차 조사 때와 일관되게 진술했다. 대략적인 피해 횟수도 나왔다. B 양은 교무실에서 석 달 동안 약 10회, 백엽상에서 1회, 등교할 때는 약 20회 정도 성추행을 당했다고 검사에게 털어놨다.
며칠 뒤인 지난해 10월 31일 천안지청은 이 사건을 시한부 기소중지로 불기소 처분했다. 대검찰청 수사 지침에 따르면 성폭력 피해자가 13세 미만일 때 심리분석 전문가에게 피해자의 정신·심리 상태의 진단 소견 및 피해자의 진술에 관한 의견을 조회해야 한다. 검찰 관계자는 “심리분석이 수사 마지막 남은 단계거나 심리분석이 필수인 수사에서는 일단 시한부로 기소중지를 해둔 뒤 대검찰청의 심리분석이 완료되고 나서 수사를 재개한다”고 일렀다.
문제는 검찰이 2차 조사 직전까지 대검찰청의 수사 지침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2차 검찰 조사 때 담당 검사는 A 씨와 B 양에게 “자세한 절차를 확인해 봤더니 대검찰청 직원이 천안 와서 면담을 해야 한다더라. 시간이 좀 더 걸릴 거다. 누가 하는지는 잘 모른다. 남자일 수도 있다. 확답은 못하겠다. 최소한 그쪽 부분으로 공부한 사람은 맞을 거다”라고 했다.
법무부 인권국은 아동 성범죄 피해자를 조사할 땐 첫 조사에서 가능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왔다. 수사기관과 심리분석 전문가가 함께 계획해서 조사를 시작하는 ‘합동조사체계’를 구축하는 게 정석이다. 천안지청에서는 이 체계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 B 양은 성추행 피해를 당했던 시간을 또 다시 이야기하기 힘들다고 검찰 조사 때 토로했다. 현재 검찰은 이 사건을 반 년 넘게 방치해 놓은 상태다.
교감의 B 양 성추행 혐의 외에 A 씨가 교원들을 상대로 제기했던 모든 혐의는 다 증거불충분 혐의 없음 처분 내려졌다. A 씨는 교감을 강제 추행 혐의로 고소한 바 있었다. 2016년 5월 24일 A 씨는 학교 인근 호프집에서 B 양의 학교폭력 피해 관련 상담차 교감을 만났었다. 교감은 A 씨에게 “난 밥을 먹었다”며 호프집을 가자고 했다.
A 씨는 “악수할 때부터 교감이 내 손등을 과하게 쓰다듬어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런 뒤 ‘상상했던 모습과 실제가 참 다르다. 이렇게 지적이고 날씬하다니. 사귀고 싶다. 눈이 사슴 같다. 사슴 눈에 어떻게 눈물 흘리게 하지’ 등 듣기 힘든 말을 계속했다. 손까지 덥석 잡고 1분쯤 안 놓아줬다”고 말했다. 교감은 2017년 6월 9일 ‘일요신문’과 만난 자리에서 “학부모의 미모를 칭찬하며 사슴 발언을 한 것은 기억난다. 다만 손을 잡진 않았다”고 했었다.
검찰은 “A 씨는 1차 조사에서 교감이 손을 만지고 정강이가 닿았다고 했지만 2차 조사 땐 가슴을 밀었다고 추가 피해를 진술했다. 또한 사건이 있은 뒤 9개월이 지나 딸의 사건과 함께 고소한 점 등으로 보아 진술만 가지고 교감이 A 씨를 추행했다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혐의 없음 처분 이유를 밝혔다. 교감은 사건 직후 고향의 한 초등학교로 자리를 옮겨 근무하고 있다.
A 씨는 교감을 포함 교장과 담임, 생활지도부장 등을 직무유기, 직권남용, 허위공문서작성,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도 고소한 바 있었다. 교원들이 가해학생을 4명에서 1명으로 축소해 서류를 꾸미고 1차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어 학교폭력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던 까닭이었다. 위원회에서 B 양의 명예를 훼손하는 발언이 나왔다는 이유도 포함됐다. 담임은 B 양의 결석 사유를 질병과 무단결석이라고 표기하고 학교생활 부적응이란 내용을 생활기록부에 기록했었다. 학교폭력방지법에 따르면 피해학생이 학교폭력 때문에 학교를 나갈 수 없을 경우 출석을 인정토록 돼있다.
검찰은 “관련 서류가 다 구비돼 직무 수행을 거부하거나 유기했다고 볼 수 없다. 이의가 제기된 뒤 서류는 다 수정됐다. 허위공문서를 작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명예훼손 관련해선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서 알게 된 사실을 외부에 누설하면 학교폭력예방법에 처벌되므로 전파 가능성이 없다”고 혐의 없음 처분 이유를 밝혔다.
경찰이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던 담임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도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다. 담임은 가해학생 측과 만남 자리에 B 양의 4학년부터 6학년까지 생활기록부와 일기 등 개인정보를 모두 가져갔다. 가해학생의 부친은 이 자리에서 B 양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검찰은 불기소이유통지서에 “담임이 ‘난 자료를 넘긴 적은 없다. 가해학생 아빠는 내가 전화통화를 하는 동안 내 가방에서 자료를 꺼내 촬영했다’고 진술했다. 가해학생 아빠의 주장도 일치했다”고 적었다. 개인정보를 학교 밖으로 가지고 나간 담임의 행동은 개인정보 유출이 아니라고 검찰은 판단한 셈이었다.
불기소이유통지서에는 교감의 성추행이 총 4회로 축소돼 있었다. B 양은 경찰 앞에서 “지퍼가 달린 재킷을 입고 간 날마다, 교무실 갈 때마다 한 달에 거의 열 번씩 이런 일을 겪었다”고 말했다. 검찰에서는 “교무실에서 석 달 동안 약 10회, 백엽상에서 1회, 등교할 때는 약 20회 정도 성추행을 당했다”고 했었다.
B 양은 “손을 막 비비면서 팔도 막 문지르고 어깨를 ‘주무르며’ 만졌다. 어깨랑 가슴 쪽으로 안으며 겨드랑이 사이로 손을 넣어 가슴을 만졌다. 왼쪽 엉덩이를 꽉 잡고 놨던 적도 있다. 등교할 때 지퍼를 연 채로 재킷을 입은 날이면 ‘춥다’며 지퍼를 잠가줬다. ‘싫다’는 데도 어깨를 밀치고 지퍼를 올리며 목이랑 가슴 사이를 스친 뒤 ‘앞으로 이렇게 하고 다녀’라고 말하고는 가슴을 한 번 더 스치며 만졌다”고 경찰에서 증언했다.
경찰의 송치 자료에는 B 양의 진술이 “팔을 쓰다듬었고 어깨를 ‘토닥이며’ 만졌다. 겨드랑이 사이에 손을 넣어 손바닥으로 가슴부위를 쓸어 내렸다. 엉덩이를 한 번 움켜 쥐었다. 재킷을 입은 날엔 지퍼를 올렸다 내렸다 하며 손으로 피해자의 목과 가슴을 스쳤다”고 순화돼 적혀 있었다.
1차 조사 때 B 양은 “좋아하는 게 있냐”, “좋아하는 음식이 있냐”는 경찰의 질문에 “없다”고 답했다. 이어진 “평소에 제일 많이 하는 건 뭐예요?”라는 질문에 B 양은 답했다. “악몽 꾸는 거요.” B 양은 이제 고작 15세 된 중학교 여학생이다.
최훈민 기자 jipchak@ilyo.co.kr
* 이 기사는 피해 학생 가족과 합의돼 보도하는 기사입니다. 일요신문은 성폭력 관련 기사 작성 시 보도 지침을 준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