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돈 원인인 음이온 가루 ‘모자나이트’ 66개 업체 구입 ‘불안감 확산’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등 시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대진침대 피해보상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대진침대 사태는 ‘몸에 좋은 음이온을 발생시킨다’며 침대 매트리스에 도포한 방사성 물질 때문에 불거졌다. 대진침대의 음이온 기술은 산업통상부 특허청에서 특허 인정을 받고 환경부에서 ‘친환경’ 인증을, 한국표준협회에서는 KS마크를 인증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 또한 지난달 10일 조사 결과 실제 라돈 피폭선량이 법정 기준치 이하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기준치를 초과한 라돈 피폭선량이 검출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의 혼란이 가중됐다. 원안위가 결과 발표 후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지난달 15일 조사 결과를 번복했기 때문이다. 원안위는 대진침대 매트리스에 대해 라돈에 의한 방사선 피폭선량이 기준치를 초과해 연간 최대 9.35배에 달한다는 2차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지난 1월 발표한 보고서 ‘2017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 실태 조사 및 분석’을 토대로 하면 대진침대의 음이온 방출원리는 방사선을 방사시키는 희토류 광석을 원료로 사용하는 ‘천연광석법’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천연광석법’을 사용한 음이온 제품들에 사용되는 모자나이트는 천연적으로 발생하는 방사성물질인 토륨과 우라늄을 포함하고 있다.
국내에서 모자나이트는 생활주변방사선 안전관리법의 원료물질, 원자력안전법의 핵원료물질에 해당하는 물질로 분류돼 원안위의 관리감독하에 취급이 이뤄지고 있다. 원안위는 원료물질을 이용해 만든 제품을 가공제품으로 정의해 가공제품 안전기준 적합성 평가를 수행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미국의 원자력규제위원회는 모자나이트 등 희토류 광석을 사용해 만들어진 음이온 팔찌, 목걸이 제품들을 ‘음이온 기술(negative ion technology)’로 명명해 제품 취득 시 폐기를 권고하고 있다.
서울에 위치한 대진침대 매장 전경. 고성준 기자.
이번 사태를 계기로 ‘몸에 좋다’고 선전하는 ‘음이온 효과’는 ‘사이비 과학(유사과학)’ 논란으로 번졌다. 소비자들은 침대뿐 아니라 ‘음이온 효과’를 앞세운 여러 생활용품에 대해서도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한국원자력기술원의 지난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음이온’ 또는 ‘음이온시험성적서’로 광고하는 75개 제품 가운데 57개 제품이 원료물질 정의농도를 초과하는 방사능 농도를 나타냈다. 그러나 학술연구정보서비스 국내 학술지 검색 결과 지난해까지 음이온 인체 효과에 대한 국내 의학연구기관의 발표 논문은 한 건도 없다. 음이온 효과에 대한 과학적 검증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것.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음이온 효과는 전혀 과학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기업들이 방사성 물질을 쓸 필요가 전혀 없는 생활밀착형 제품을 생산하는 데 모자나이트를 사용하고, 이러한 제품들이 판매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며 “이번 사태는 원안위가 규제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산업부 역시 관리에 소홀해 발생한 인재”라고 덧붙였다.
‘음이온 효과’를 적용한 광고 제품은 10여 년 전 공기청정기로 시작됐으나 2005년께 문제가 불거지면서 거의 사라졌다. 이후 ‘음이온 효과’는 화장품, 의류, 찜질기, 방향제, 입욕제 등 다른 제품으로 퍼져나갔다. 2012년 음이온 제품 관리를 위한 법인 생방법이 시행됐으나 오히려 법이 생기며 관련 제품이 더 많이 생산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됐다. 환경운동연합을 비롯한 시민단체는 “라돈 침대 사태는 음이온 파우더를 사용한 대진침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생활 전반에 퍼져 있는 음이온 제품에서 발생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며 전반적인 조사와 근본적인 사태 해결을 주장하고 있다. 특허청에서 특허를 내준 음이온 제품 18만 개에 대해서도 조사를 촉구했다.
사태가 확산되자 생활용품업계는 잔뜩 긴장한 모습을 보인다. 원안위의 1차 조사에 따르면 수입업체로부터 모자나이트를 구입한 66개 국내 업체 가운데 11곳이 생활밀착형 제품 판매처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최근 라돈 논란이 불거진 생활밀착형 제품은 대부분 중소기업의 제품일 것”이라며 “이미 예전에 몇 차례 문제가 제기된 바 있기 때문에 대기업들은 ‘음이온’ 마케팅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침대·가구업계는 라돈 논란과 ‘선 긋기’에 나섰다. 자체적으로 안전성 검사를 실시하거나 논란이 되는 물질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나선 것. 가구업체 한 관계자는 “최근 라돈이 이슈가 되다보니 고객들의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검사하고 안전성을 인증하려 노력하고 있다”며 “특히 침대업계의 경우 이슈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다 보니 유명 기업들을 중심으로 외부 기관에 조사를 의뢰해 라돈 안전성을 증명하는 등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가구업체 다른 관계자는 “라돈 논란에서 제외된 기업도 고객이 원할 경우 라돈 수치를 검사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는 등 불안감 해소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에이스침대와 시몬스침대는 최근 국가 연구기관과 시험기관에 의뢰하고,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라돈 사태에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덕환 교수는 “모자나이트 사용 제품이 발암 위험이 있는 것은 맞지만 한 번 접촉한다고 해서 암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대진침대에서 검출된 ‘라돈-220(토론)’의 경우 반감기가 55초로 짧고, 1군 발암물질인 ‘라돈-222’보다 유해성이 낮다”고 설명했다. 이어 “공기청정기 등의 제품은 음이온 기능을 차단하고 사용하고, 음이온 파우더를 분리할 수 있는 침대 등의 제품에서는 파우더를 제거하고 사용하면 된다”며 “‘라돈 공포증’을 이용한 역마케팅 또한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
라돈침대 논란, 동부화재에 불똥 튀나? 라돈 사태와 관련해 소비자들이 집단소송에 나섰다. 집단소송 중 하나를 대리하는 법무법인 태율이 지난달 20일 마무리한 1차 소송장 위임에만 2800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집단소송 관련 인터넷 카페에는 지난 8일 오후 3시 현재 1만 9300여 명이 가입해 추후 소송 규모는 확대될 전망이다. 한국소비자연합회에서 소송을 위임받아 진행 중인 법무법인 서희 윤동욱 변호사는 “민법 제390조 채무불이행과 손해배상, 민법 제750조 불법행위의 내용에 따라 대진침대에 정신적 피해에 대한 위자료청구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집단소송이 진행될 경우 대진침대는 보상 여력이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대진침대는 충남 천안시에 위치한 사원 수 26명 규모의 중소 침대 제조업체로, 지난해 63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집단소송을 담당 중인 법무법인 태율의 김지예 변호사는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침대에서 인체에 유해한 물질인 라돈이 검출된다는 것이 원안위 발표로 입증됐다”며 “침대를 구매하고 사용했다는 것만으로 정신적 손해는 발생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진침대 쪽에서 자력이 부족해 보상이 불가능하다면 대진침대가 가입한 보험회사를 상대로 진행해볼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대진침대는 DB손해보험에 1억 원 한도의 생산물책임보험을 들고 있다. 그러나 보험업계에서는 인과관계 입증이 어렵기 때문에 보험금 지급이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보험은 상해 등 실제 발생한 손해를 보상해주는 것”이라며 “라돈 사태의 경우 발병의 직접적 원인이 대진침대로 인한 것인지 규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DB손해보험 또한 아직까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대진침대로부터 사고접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사고접수가 이뤄진다 해도 보험사로서 큰 피해는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DB손해보험 관계자는 “대부분 보험에서 방사능 위험은 무담보 조항이므로 보험금 지급이 이뤄질 가능성이 낮고, 지급된다 하더라도 1억 원 한도라 보험으로써 의미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