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없는 두 소녀의 슬픈 ‘아버지날’
[일요신문] 지난 17일은 미얀마의 아버지날이었습니다. 모든 자녀들이 아버지에게 작은 선물을 하거나 전화를 하여 특별한 애정을 표현합니다. 동네에선 아버지들을 초대해 식사를 나누는 자리를 갖습니다. 이 자리에서 울어버린 두 소녀가 있습니다. 미소와 예진. 자기들이 지은 한국예명입니다. 아빠가 없는 소녀들입니다. 엄마도 없습니다. 친구가 된 둘은 가족처럼 서로 의지하며 삽니다. ‘친밀한 관계’입니다.
학교가 끝나면 미소(왼쪽)를 절친 예진이 데리고 온다.
이 나라에도 외롭게 사는 사람이 많습니다. 가족들이 흩어진 경우도 많고, 부모가 일찍 돌아가시거나 가난해서 고독한 환경 속에 사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버드대 연구팀이 사람들의 일생을 장기간 조사한 결과 좀 눈길을 끄는 발표를 했습니다. 자신과 친밀한 관계를 갖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삶의 질이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부모가 될 수도 있고, 자기 짝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을 우리는 다 가지고 있을까요?
미소는 양곤 인근 시골이 고향입니다. 엄마는 몬족, 아빠는 중국계 버마족입니다. 9살 때 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셨고, 몇 년 전 아빠마저 돌아가시면서 학업을 중단하고 일터로 나왔습니다. 초등학교는 스님들이 어려운 학생들을 모아 가르치는 곳을 다녔고, 중학교는 자상하신 아빠의 도움으로 다녔습니다. 그래서 아빠를 기억하면 눈물이 난다고 합니다. 미소는 자신이 입던 교복을 늘 품고 다녔습니다. 중단된 고등학교를 다니고 싶었던 것입니다. 한편 친구 예진이는 아빠의 기억이 전혀 없습니다. 엄마의 기억만 희미하게 남아있을 뿐입니다.
두 소녀는 한국어센터에서 만났습니다. 미소는 센터에서 일하고 있고, 예진이는 수강생입니다. 미얀마는 6월에 초중고가 개학을 합니다. 3, 4, 5월은 뜨거운 여름이라 긴 방학입니다. 미소는 이번에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간직해온 교복을 입고. 아침 8시에 학교에 가 오후 3시에 돌아옵니다. 또래 아이들보다 나이는 들었지만 키가 작아 잘 눈에 띄진 않습니다.
미소가 매주 토요일 배우는 한국빵 기술. 선생님과 언니들과 함께. 맨 오른쪽이 미소.
미얀마 고등학교 교재는 영어로 되어 있습니다. 수학, 화학도. 그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영어를 제법 합니다. 그런데 발음이 독특해 알아듣긴 힘듭니다. 특이한 것은 음악, 미술은 없어도 국어 외에 시를 따로 배웁니다. 미소는 이제 중단된 공부를 하며 따라 가느라 밤을 지샙니다. 교과서도 영어입니다. 다행히 예진이가 방과 후엔 오토바이로 학교에 데리러 갑니다. 만나면 둘의 웃음은 끝이 나지 않습니다. 둘 다 의외로 밝은 성격입니다. 미소는 토요일에는 한국 빵기술을 배우러 가 크고 짙은 색깔의 빵을 만들어옵니다. 나중 한국 가서 요리공부를 하고 싶어합니다. 예진이는 한국서 오신 액세서리와 리본공예 선생님에게 리본공예를 배우고 있습니다. 요즘 배우는 예쁜 리본을 보고 놀랐습니다.
아버지날은 동네 어른들을 모시고 식사를 했습니다. 저도 초대를 받아 갔습니다. 두 소녀가 식사를 거들다 어른이 다 돌아간 시간. 두 소녀가 결국 손을 잡고 울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버지가 그리워서, 아버지 기억이 없어서. 두 소녀를 보며 생각합니다. 잃어버린 친밀한 관계. 그러나 두 소녀는 그 관계를 서로 되찾았다고. 그래서 외롭지 않다고.
정선교 Mecc 상임고문
필자 프로필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업, 일요신문, 경향신문 근무, 현 국제언론인클럽 미얀마지회장, 현 미얀마 난민과 빈민아동 지원단체 Mecc 상임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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