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속고발권 포기해” 공정위 압박 목적도
그런 검찰이, 중요 수사 파트너인 공정위에 대한 전격 압수수색에 착수했다. 검찰은 ‘보은성 취업 특혜 등 공정위 내부에 문제가 있다’고 수사 배경을 밝혔지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드물다. 검찰 안팎에서는 “김상조 위원장을 앞세워, 권한을 확대하려는 공정위를 막기 위한 정치적인 목적”라는 분석이 나온다.
# 날렵해진 검찰의 칼…공정위 심장 겨눴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구상엽 부장검사)는 6월 20일 세종시 어진동에 위치한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을 벌였다. 검찰이 밝힌 공정위의 혐의는 신세계 등 대기업들의 주식소유현황, 계열사 현황 등을 제출하는 과정에서 허위자료가 있는데도 봐주기를 했다는 것.
지난 20일 검찰이 세종시 공정거래위원회 기업집단국에 대해 압수수색을 마친 뒤 물품을 들고 나오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간부들이 퇴직 후 기업으로부터 보은성 취업 특혜를 받은 의혹 등에 대해 검찰이 수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
검찰이 이를 확인하기 위해 6월 26일 추가로, 신세계그룹 계열사와 정부세종청사 인사혁신처 윤리복무과 등에 대한 압수수색도 진행했다. 검찰은 공정위가 퇴직 공정위 고위 간부들이 현직에 있을 때 기업들의 편의를 봐주고 퇴직 후 특혜 취업을 했거나, 자문 계약을 맺은 부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첫 기업 압수수색 대상이 된 신세계의 경우, 계열사로 재취업한 공정위 전직 간부가 재직 시절 신세계 이명희 회장의 차명주식 의혹을 조사하고도 무마한 의혹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는 더 확대될 전망이다. 신세계 외에도 네이버 등 최대 30곳에 달하는 대기업들이 비슷한 의혹을 받고 있다. 실제 공정위는 지난 2016년 9월과 11월에 롯데그룹 소속 롯데푸드·롯데물산 등 11개 계열사와 농협은행에도 주식 허위신고에 대해 경고 처분만 내렸다. 문제는 처벌이 널뛰기였다는 점이다. 공정위는 2016년 11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에 대해서는 같은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고발)했고, 부영 이중근 회장 역시 수사를 피할 수 없었다.
문제는 이런 공정위의 자체 판단이 명백한 법 위반이라는 점이다. 자산총액 5조 원 이상 대기업집단은 공시대상기업집단이라 공정위에 주식 보유 현황 등을 신고해야 하는데, 이를 위반하면 공정거래법에 따라 처벌 받는다. 법에는 ‘기업집단의 주식 보유 허위신고와 허위보고는 행정처벌이 아닌 1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공정위는 최근 몇 년 사이, 자료제출 위반과 관련된 위반 사건 162건 가운데 7건만 검찰에 고발했고 나머지 신세계·롯데 등이 포함된 155건에 대해서는 행정조치인 ‘경고’ 조치만 내렸다. 행정조치가 아니라, 벌금형을 선택하고 고발했어야 하는 사안이라는 얘기다.
일부 공정위 퇴직 간부들은 경고 처분을 받은 해당 기업들에 고문이나, 자문 등으로 취업하기도 했는데 검찰은 이 과정을 공정위의 권한 남용 및 특혜성 취업이라고 보고 있다. 검찰 내에서는 “공정위의 오랜 문제를 털어내는 좋은 수사”라는 평도 나오는 이유다.
# 진짜 목적은 공정위 견제?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난 단순한 혐의일 뿐, 검찰의 실제 목적은 공정위를 견제하기 위함이라는 시각이 공정위 안팎에서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공정위가 38년 만에 공정거래법을 개편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들이닥친 검찰 수사인 터라 ‘정치적인 목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공정위는 개편안 등을 통해 공정위의 권한을 강화하려고 하고 있는데, 수사를 앞두고 권한을 놓고 검찰과 정면으로 충돌하던 상황이었다는 설명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공정위는 이번 공정거래법 개편에서 전속고발제를 전부 폐지하지 않고 일부만 선별적으로 양보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둘의 갈등을 짚기 위해서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주목해서 봐야 한다. 전속고발권은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기소를 할 수 있는, 공정위가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력한 권한이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기업 비리가 늘어나고, 주식 등 공정위가 다루는 영역이 강화되면서 검찰 내에서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을 없애고 인지로도 수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가 슬며시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정위는 이번 공정거래법 개편에서도 ‘전속고발제’를 전부 폐지하지 않고 일부만 선별적으로 양보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김상조 위원장은 취임 이후 유통3법(가맹·유통·대리점법) 등에 대한 선별적인 전속고발권 폐지가 가능하지만, 담합 등을 처벌하는 근거인 공정거래법의 전속고발권 폐지에 대해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공정위 내 자체적인 포렌식 센터를 꾸리는 등 기업 수사를 확대하기 위해 의지도 드러냈다.
공정위가 내세운 가장 중요한 전속고발권 유지 이유는 리니언시(담합행위를 한 기업이 자진신고를 할 경우 처벌을 경감하거나 면제하는 제도)다. 입찰 담합 사건 등에 대한 위법성을 증명하는 핵심 도구인 리니언시가 전속고발권이 폐지될 경우, 유명무실화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입장이 달랐다. 이번 수사를 추진 중인 구상엽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 부장검사는 공정위 TF 등에 참여해 “공정위가 조사하는 사건이 캐비닛에서 어떻게 사라지는지 모르기 때문에 전속고발제를 폐지하고 검찰의 수사권한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리고 공정위가 스스로 기업에 대한 조사를 확대하려는 안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다보니 공정위는 이번 수사에 대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는다. 한 공정위 관계자는 “행정 처분에 대해서 약간 들쭉날쭉한 요소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수사 과정에서 리니언시 등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검찰도 우리가 그렇게 하는 걸 다 알면서 이제 와서 왜 수사를 하겠느냐, 명백히 공정위를 압박하려는 목적 의식이 확실한 수사”라고 토로했다.
일각에서는 앞선 공정위 수사 선례도 살펴봐야 한다고 설명한다. 검찰은 지난 1996년 공정거래법 개정 당시 식품 가공날짜를 위반한 백화점 등 유통업체에 대한 검찰의 고발 요청을 공정위가 거부하자, 압수수색을 통해 공정위 국장 2명을 뇌물혐의로 구속한 바 있다. 당시 공정위 국장 구속 등을 통해 거래법 개정에서 공정위의 권한이 다소 줄어들었는데, 이번에도 똑같은 수순이라는 지적이다.
이번 사건에 연루된 대기업 관계자는 “기업들이 특혜 취업을 시켜줬다고 하는데, 이는 기업들이 데리고 가기보다는 공정위가 퇴직 공무원들을 그냥 꽂으라고 시켜서 자문이나 고문의 이름으로 억지로 받아준 게 대부분”이라며 “공정위에서 갑질(채용 청탁)해서 당했는데, 검찰에도 수사받는 상황”이라고 억울함을 토로했다.
# 문제는 정부 스탠스…누구 손 들어줄까
결국 이 문제를 종결지을 곳은 문재인 정부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대선 당시 공정위 전속고발권 폐지를 주요 공약으로 내건 바 있다. 전속고발권이 공정위의 대기업 봐주기 수단이 될 수 있는 적폐로 지목한 것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재벌 저승사자라고 불리는 김상조 위원장이 오면서,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국정원, 검찰 등 다른 사정기관들에 비해 ‘위상’이 다소 올라갔다. 특히 대기업들에 대한 김 위원장의 잇따른 언행으로 공정위에 대한 존재감이 확대되면서, 개혁안에서도 공정위의 권한을 최대한 강화하려는 흐름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검찰과 정면으로 부딪힌 셈이다.
검찰 수사와 별개로, 이제 정부는 공정위 개혁안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내놔야 한다. 만일 정부가 검찰이 수사로 낸 목소리(전속고발권 폐지)를 받아들여줄 경우, ‘경제검찰’로서 공정위의 위상은 상당부분 축소될 수밖에 없다. 특히 기업들의 불공정행위가 곧바로 검찰 수사 칼날에 노출될 경우, 공정위의 존재감은 지금보다 한참 작아질 전망이다.
한 로펌 변호사는 “공정위 전속고발권이 문제가 있는 것은 맞지만, 검찰의 이번 수사가 지나치게 정치적인 목적이 뚜렷한 것도 문제”라며 “기업이 지은 잘못이 있다면 제대로 된 규정 하에서, 한 조직에서 한 번만 처벌받아야 하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