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장 인사 과정 문무일 총장 권한 행사 못해…수사권 조정 “바뀌는 것 별로 없다” 속웃음
이번 검찰 검사장 인사는 청와대 민정수석실(가운데 조국 실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신문 DB
# 도래한 ‘쌍윤’의 시대
‘인사는 만사’라고 하지 않던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두 번째 단행된 검사장 인사는, 정부의 코드가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확인시켜주는 자리였다. 더 나아가서, 함께 일할 수 없다고 판단한 고위직 검사들을, 첫 검사장급 인사에 이어 확실하게 정리(퇴직)한 인사이기도 했다.
검사장으로 승진한 검사는 모두 9명. 24기에서는 문찬석 서울동부지검 차장이 대검 기획조정부장, 장영수 서울남부지검 1차장이 광주고검 차장, 박성진 서울북부지검 차장이 부산고검 차장, 여환섭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이 청주지검장, 고흥 수원지검 안산지청장이 서울고검 차장, 조남관 국가정보원 감찰실장이 대검 과학수사부장으로 발탁됐다. 25기에선 김후곤 대검 반부패부 선임연구관이 대검 공판송무부장, 권순범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대검 인권보호부장 겸 강력부장, 윤대진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 법무부 검찰국장으로 각각 임명됐다.
윤대진 신임 검사장. 연합뉴스
윤대진 신임 검찰국장은 청와대와 긴밀한 사이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3년 청와대에서 민정수석실 산하 사정비서관실 특별감찰반장으로 근무했던 그는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을 보필한 인연이 있다. 앞선 관계자는 “청와대와 다이렉트로 소통할 수 있는 검사들이 많지 않은데, 윤 신임 검사장이 바로 그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청와대가 맡긴 적폐청산이라는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사법연수원 23기)도 유임되면서,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대윤(윤석열 지검장)과 소윤(윤대진 검찰국장), 쌍윤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법무부에서 검찰의 인사 외 행정적인 요소까지 다 결정하는 검찰국장과 검찰 내 최고 실력을 가진 검사들과 주요 사건을 수사하는 서울중앙지검장, 가장 예민한 두 자리에 ‘확실한 자기 사람’을 심은 셈이다. 일선 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친정부 코드 인사라고 언론에서 얘기할지 모르지만, 정부와의 코드를 떠나 실력적으로 봐도 탁월한 검사들”이라며 “이번 정권 하에서 저 두 검사가 꾸준히 중용될 것이라는 점에는 그 누구도 이견이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검찰 내에서는 이번 인사에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물론, 문무일 검찰총장이 제대로 된 권한을 행사하지 못한 점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검찰 고위 관계자는 “원래 검찰총장도 약간의 인사권을 가지고, 자신의 사람을 임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논의가 아니라 통보를 받았고, 반대 의견을 가진 검찰총장의 의사도 여러 차례 청와대 측에 거절당했다고 들었다”고 귀띔했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서초동 대검찰청에 출근하고 있다. 일요신문 DB
# 검찰은 표정 관리 중?
하지만 이번에 문무일 검찰총장이 인사 과정에 강하게 목소리를 개진하지 않은 것은 수사권 조정안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앞선 관계자는 “인사를 앞둔 주말, 검찰총장이 바쁘게 움직였던 것은 인사도 있지만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대한 대응도 필요했기 때문이다”며 “청와대에 할 수 있는 검찰총장 몫의 발언권 중 상당 부분을 인사 대신 수사권 조정안에 활용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정부는 검사장 인사 직후인 21일, 경찰에 1차적 수사권과 수사종결권을 부여하고, 검찰에는 부패·경제금융·공직자·선거범죄 등 특수사건에 대한 직접 수사권만 허용하는 내용의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발표했다. 검찰의 ‘사건 송치 전 수사지휘’ 권한이 폐지되면서, 경찰은 그동안 숙원이었던 ‘수사권’을 갖게 됐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검찰과 경찰 간) 분리와 견제로 수사의 효율을 높이고, 국민의 안전과 인권을 보호하는 데도 만전을 기하도록 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대부분의 검사들은 반발한다. 박철완 부산지검 형사1부장은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올린 글을 통해 “현행 수사구조의 변경 필요성에 공감한다”면서도 “수사권 조정에 대한 논의를 지켜보면서 절차에 대해 많은 실망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다른 검사들 역시 “공소 유지 때문에 책임을 지고 수사에 임하던 검찰이 이제 수사 과정에서 배제된 채 아무 것도 개입할 수 없게 됐다”며 “인권적인 요소는 물론이고, 수사 과정도 전보다 부실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일부 검사들을 중심으로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해볼 만하다”는 평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들은 “예외조항으로 경찰 수사의 문제점도 지적할 수 있고, 영장 청구권을 지켜내서 구속이 필요한 중요 사건의 경우 사실상 지휘에 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번 조정안에서 검찰이 지켜낸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영장 청구권. 이 덕분에 현재와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분석이다. 한 부장검사는 “이미 일선 검찰청에서는 경찰이 하는 소소한 사건에는 절대 지휘를 하지 않는다, 그냥 올려주는 대로 처리하는 게 대부분”이라며 “조정안대로라면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위해 경찰은 전처럼 자료를 검찰에 공유해야 하는데, 기존처럼 ‘구속이 필요한 큰 사건’을 모두 검찰이 관여한다는 맥락에서 달라지는 게 없다”고 설명했다. 영장 청구에 대한 서류 검토 과정에서, 경찰 수사를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얘기다. 경찰 관계자 역시 “경찰이 대등한 조직인 것처럼 위상은 올라갔지만, 실질적으로는 크게 달라지는 게 없는 것 같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조정안’ 내용이 국회 문턱을 넘어야 된다는 점도 검찰에 유리하다. 정부가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안을 발표하면서 공은 국회로 넘어갔는데, 수사권 조정은 역대 정부에서 국회 통과가 늘 험로였다. 번번이 국회 입법까지 가지 못하고 실패했다. 특히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적지 않은 반발이 예상된다. 특히 국회에 대한 대응 능력에서 검찰이 경찰보다 한 수 위라는 점도 검찰에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앞선 검찰 관계자는 “지금 우리(검찰) 입장에서 최악으로 입법화되더라도 구속영장 청구권을 지켜낸 저 조정안이지 않냐”고 평가했는데, 문무일 검찰총장 역시 대검찰청 참모들에게 “손볼 수 있는 여지가 많다”며 국회 입법 과정에서의 수정 가능성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환한 기자 brigh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