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몰아주기’ 공정위 규제 넘었지만 금융그룹통합감독 시범적용 대상에 포함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연합뉴스.
금융그룹통합감독법의 도입 취지는 금융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는 그룹에 대해 기존 금융거래법과 공정거래법으로 규제하거나 관리·감독하기 어려운 부분을 관리·감독함으로써 금융계열사가 부실해지거나 위험해지는 것을 막자는 것이다. 이를 테면 금융계열사가 비금융계열사에 자금을 지원하는 일을 막고 비금융계열사의 부실이 금융계열사로 옮겨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정부는 이 같은 취지의 법을 올 하반기 발의해 입법화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에 앞서 7월 1일부터 ‘금융자산 5조 원 이상, 금융계열사 2곳 이상 보유한 그룹’을 대상으로 시범적용에 나선다. 삼성, 현대차, 미래에셋 등 7개 그룹이 이에 해당한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곳은 미래에셋이다. 미래에셋은 그간 일감 몰아주기와 지배구조개편 등과 관련해 공정위의 압박을 받았지만 여태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아직은 시범 단계지만 정부 뜻대로 올 하반기 법제화될 경우 그동안 미진한 것으로 평가받던 미래에셋의 지배구조개편에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합감독이 시행되면 금융그룹은 순환출자나 내부거래 등 그룹의 위험 요인을 자체적으로 측정, 평가하고 이를 보고·공시해야 하며 이에 따른 경영 개선 계획을 세워야 한다.
공정위는 지난해 말부터 미래에셋의 일감 몰아주기 의혹에 대해 조사했다. 이 때문에 초대형 투자은행(IB) 사업을 준비하던 미래에셋대우의 발행어음 사업 인가 심사가 보류되기도 했다. 지난 5월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국내 경영 일선에서 퇴진한 것은 공정위의 지배구조 개편 압박과 무관치 않다.
공정위가 조사 중인 미래에셋의 일감 몰아주기 혐의는 다른 계열사들이 부동산펀드를 조성해 박 회장 일가가 지배하고 있는 미래에셋컨설팅에 임대관리 수익을 몰아줬다는 것이다. 홍천 블루마운틴CC와 서울 광화문 포시즌스서울호텔을 관리·운영하고 있는 미래에셋컨설팅은 박 회장이 48.6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박 회장을 포함해 오너 일가가 91.86%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달 말 현장조사를 통해 블루마운틴CC의 2015~2016년 매출 60% 이상이 내부거래를 통해 이뤄진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포시즌호텔의 경우 내부거래 비중이 전체 매출의 12% 미만이라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법상 5조 원 이상 대기업 가운데 총수 일가 지분이 상장사 30%, 비상장사 20% 이상이면서 내부 거래액이 200억 원 이상 또는 매출 12% 이상일 경우에만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정거래법상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아닌 이 사안이 금융그룹통합감독이 시행되면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 포시즌호텔에 계열사들이 금융 펀드를 조성해 투자한 데다 호텔의 임대관리 수익이 박 회장 일가 회사나 다름없는 미래에셋컨설팅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포시즌호텔의 매출에 비금융계열사와 금융계열사, 오너 일가 회사의 거래가 모두 얽혀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이중규제 아니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금융감독원(금감원) 관계자는 “금감원에서 들여다보는 내부거래 규제는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와 달라 ‘이중규제’는 아니다”라며 “내부거래가 많으면 의존도가 높아져 위험이 전이될 가능성이 있는데, 이를 막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위법이 아니다’라는 공정위 해석을 받은 미래에셋대우와 네이버 간 자사주 맞교환 또한 통합감독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지난해 6월 우호 지분을 확보하고 자기자본을 확충하기 위해 네이버와 각각 5000억 원 규모의 주식을 맞교환했다. 이에 대해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는 경영권 방어 및 자본 확충 등을 위한 편법이라는 지적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러나 공정위는 지난 14일 국회에 제출한 ‘2017년 국정감사 결과 보고서’를 통해 두 회사간 자사주 맞교환은 현행 공정거래법상 위법이라 판단하기 어렵다는 해석과 함께 “자사주 처분에 관한 사항은 궁극적으로 상법 개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감원의 입장은 다르다. 금감원은 지난 4월 25일 ‘금융그룹 통합감독 관련 간담회’에서 위험 거래 사례로 미래에셋대우와 네이버의 자사주 교환을 언급, “자사주 처분 제한으로 금융그룹의 지급 여력을 제약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의 금융그룹 통합감독 모범규준에 따르면 미래에셋의 자사주 맞교환은 자본적정성 리스크를 키우는 행위에 포함된다. 공정위 사정권에서 벗어난 해당 건이 금융그룹 통합감독 시 자본적정성 평가에서 미래에셋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셈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공정위에 금융당국의 압박까지 더해졌다”며 “금감원에서 집중 감시하겠다는 의지를 보였기 때문에 미래에셋의 입장에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통합감독 시행에 맞춰 미래에셋은 미래에셋대우를 그룹의 대표회사로 선정하고 그룹위험관리팀을 신설한 것으로 전해진다. 미래에셋 관계자는 “계열사 중 규모와 인력이 가장 큰 미래에셋대우를 대표회사로 선정했으며 그룹위험관리팀은 통합감독과 관련된 전반적인 업무를 수행한다”며 “금융그룹통합감독방안을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여다정 기자 yrosad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