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 감퇴는 뇌 건강 이상 신호…커피·된장국·레몬 등 냄새 의식하는 습관 들여야
후각 기능의 감퇴는 치매 발생의 전조증상일 수도 있다. 우선 세끼 식사를 통해 냄새를 의식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포마드향을 맡는 순간, 청춘의 애틋한 추억과 그리운 감정들이 차례차례 머릿속에 재생됐어요. 당시 어떤 스타일이 유행했고, 여자 친구와 어디로 데이트를 나갔는지 등등….”
일본 기타나고야시에서 열린 회상요법에 참가한 80대 남성은 이렇게 전했다. ‘회상요법’이란 치매 예방에 효과적인 심리요법이다. 주로 감각 신호를 이용해 기억을 되살리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그리운 냄새’를 통해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회상요법 전문가 우메모토 미쓰코 씨는 “기존의 회상요법에선 과거 사진이나 어릴 적 사용했던 물건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는 형태가 많았다. 그런데 여기에 흙과 풀, 잉크, 고무 냄새 같은 ‘그리운 냄새’를 조합했더니 대화가 활기를 띠는 건 물론, 뇌가 더욱 활성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아울러 “냄새 회상요법 참여 전후를 비교했더니 기억력과 주의력이 개선됐으며, 우울증 정도가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인간은 후각, 시각, 청각, 촉각, 미각 등 오감을 활용해 외부환경 정보를 파악한다. 그중에서도 “후각은 가장 강렬하면서도 오랫동안 뇌에 기억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시(星)약과대학의 시오다 세이지 특임교수는 그 이유를 “기억과 냄새에 관한 정보가 대뇌피질의 같은 부위에 입력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시각과 청각에 비해 “후각 쪽이 훨씬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강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신의 후각 상태를 일일이 신경 쓰며 생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일부러 의식해 맡지 않아도 냄새는 저절로 퍼져온다. 그렇다고 후각이 별 대수롭지 않다는 건 절대 아니다. 후각 기능의 저하는 삶의 질(QOL)을 떨어뜨릴 뿐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큰 지장을 초래한다.
가령 냄비가 타고 있는 걸 눈치채지 못한다거나 가스 누출, 화재 같은 비상사태 시 늦게 탈출할 위험이 커진다. 그 정도까지 심각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식재료가 상한 줄 모르고 요리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오랜 만에 방문한 할아버지, 할머니 댁에서 퀴퀴한 쓰레기 냄새가 나는데 정작 본인들은 태연한 얼굴을 하고 있더라는 이야기도 자주 듣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시오다 교수는 “80대가 되면 전성기 시절의 반 정도까지 후각 기능이 저하될 수 있다”고 전했다. 덧붙여 후각 기능의 감퇴는 뇌 기능 저하를 의심해 볼 수 있어 ‘치매 위험요인’으로도 지적된다.
알츠하이머와 레비소체형 치매는 물건을 어디다 뒀는지 잊어버리는 것이 대표적인 초기 증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증상이 나타나기 전단계로, 후각 기능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는 분석이 있다. 또 사람에 따라서는 후각의 변화, 즉 좋은 냄새를 ‘불쾌한 냄새’로 느끼기도 한다. 시오다 교수는 “이처럼 후각에 갑자기 문제가 생겨 냄새를 못 맡는다면 치매 발병의 전조증상일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올해 1월 ‘미국 노인의학회지’에는 시카고대학의 제이언트 핀토 교수팀이 발표한 연구논문이 실려 관심을 모았다. 요약하자면 “박하, 생선, 오렌지, 장미, 가죽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5종류의 냄새 가운데 하나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은 5년 뒤 거의 모두 치매에 걸린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였다.
연구팀은 57세에서 85세 사이의 남녀 2800여 명을 대상으로 막대 끝에 5가지 냄새를 각각 묻혀 무슨 냄새인지 맞히게 하는 식별검사를 실시했다. 검사 결과, 4개 이상을 맞힌 사람은 78%로 나타났다. 4개 이상이면 후각기능이 정상에 속한다. 3개나 2개를 맞힌 사람은 각각 14%, 5%였고 1개는 2%, 0개는 1%로 확인됐다.
이 검사 후 5년 뒤 조사한 결과, 하나도 못 맞혔던 사람은 거의 모두 치매 진단을 받았다. 1~2개를 맞혔던 사람들 중에서도 약 80%가 치매였다. 핀토 박사는 “이번 연구결과는 후각이 뇌 기능 및 건강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면서 “후각 기능 감퇴는 우리의 뇌 건강이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알리는 강력한 신호”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후각 기능 저하를 막는 방법은 없을까. 효고의과대학의 쓰즈키 겐조 교수는 “평소 냄새를 의식해 맡음으로써 후각 기능이 유지될 수 있다”고 밝혔다. 감기 등으로 일시적으로 후각을 잃은 사람들도 현재 연구단계이긴 하지만, 후각 자극 요법이라는 훈련이 권장되고 있단다.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집에서 식사할 때 계절요리, 제철음식 등 매끼 하나의 음식 냄새를 진지하게 10초 정도 맡는다. 포인트는 “이건 꽁치구이 냄새야” “이것은 돼지고기 생강구이 냄새네”라는 식으로 의식하는 데 있다. 이때 냄새를 잘 느끼지 못하더라도 꾸준히 계속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혀 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 실천하는 사람은 후각 기능이 개선되기 쉽다.
시오다 교수는 “후각 기능이 아침, 점심, 저녁의 생활리듬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전했다. 다시 말해 “생활리듬이 깨지면 치매가 되기 쉽다”는 설명이다. 그는 “아침에는 커피 향이나 된장국 냄새를 제대로 맡아 뇌를 자극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여기에 아로마를 활용하는 방향요법도 추천할 만하다. 자몽이나 레몬 같은 감귤계 향을 맡으면 뇌의 혈류가 원활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얼마 전에는 “레몬그라스 향기가 치매예방에 효과적이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된 바 있다.
이비인후과 전문의 가미오 도모노부 씨는 “후각 장애가 동맥경화에서 비롯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후각신경계 쪽으로 산소와 영양을 전달하는 혈관이 동맥경화가 생기면 후각 기능 역시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 대뇌피질의 후각영역 부근에 혈류가 나빠졌을 때도 기능 저하로 연결된다. 그는 “당뇨병, 고지혈증, 지질이상증을 예방하는 일은 후각 기능 유지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후각 기능이 저하됐다고 해서 모두 치매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냄새는 뇌에 있어 훌륭한 자극이 된다. 전문가들은 “일상생활에서 냄새를 의식하면 뇌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은 세끼 식사를 통해 냄새를 의식하는 습관을 들이는 건 어떨까.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