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무부존재 소송 중에도 사기 피해자들 압박…통신사들 “우리와 무관” 뒷짐
이동통신사의 도 넘은 불법 추심이 문제가 되고 있다. 연합뉴스
2011년 설립된 통신 판매점 J 통신은 휴대폰 개통 시 통신사에서 나오는 개통 보조금을 노리고 허위 휴대폰을 개통하는 데 앞장섰다. 휴대폰 개통 시 정부에서 나오는 보조금 중 일부를 통신판매점과 명의 제공자가 가지는 구조다. 통신판매점은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명의를 제공할 고객을 다단계 방식으로 모집했다.
고객이 휴대폰 개통에 필요한 명의를 제공할 경우 1대당 15만 원씩을 지급하고, 통신 3사로 모두 개통할 경우 50만 원, 다른 사람을 모집해 오면 각 3만 원씩을 지급하겠다고 홍보했다. 개통한 휴대폰은 J 통신이 보관하고 6개월 후 해지 시 위약금 및 단말기 할부금 일체도 판매점이 완납하는 조건이었다. 단 돈 몇 십만 원이라도 가계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주부, 노인, 학생 등을 포함해 698명이 명의를 제공해 1548대의 휴대폰을 개통했다.
J 통신에 명의를 빌려줬던 박 씨는 2014년 10월~2015년 3월까지 SK텔레콤의 자회사인 에프앤유신용정보로부터 채무불이행정보 등록예고, 법적절차 진행 예고, 강제집행의뢰 예정통고서 등의 채권 추심을 받았다. 박 씨 외에도 700여 명의 피해자가 자신이 사용하지도 않은 휴대폰 요금폭탄 고지서를 받아들었다. 이들에게 부과된 통신요금만 31억 원으로, 각자 300만~3000만 원까지 피해를 입었다.
J 통신 대표를 비롯하 관계자들은 모두 유죄를 받았지만 박 씨를 비롯한 피해자 명의로 연체된 요금은 그대로 남았다. 결국 피해자들은 2012년 채무의 주체를 가리는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에 들어갔다. 자신이 사용한 것이 아닌 만큼 변제 의무도 없다는 것을 가리기 위해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통신사들은 사기 피해자들에게 계속해서 추심을 강행했다.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채무의 존재를 다투는 소송이 진행 중인 경우에는 어떠한 추심행위도 할 수 없게 되어 있다. 피해자들은 2014년 불법 추심에 대한 민사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부의 추심 중단 강제조정결정이 났음에도 통신사의 불법 추심이 지속됐다. 통신사들은 신용정보회사를 통해 사기 피해자에게 채무 상환 독촉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를 하는 등 압력을 가하고, 임의대로 피해자의 통장에서 돈을 인출하고 신용불량자로 등재하는 등 위력도 가했다. 피해자들이 두 번째 민사소송을 제기한 끝에 재판부는 지난 5월 통신사로부터 사기 피해자들에게 불법 추심에 대한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판단을 내렸다.
당시 J 통신 사건 관련해 법안을 마련한 이우현 의원실 관계자는 “통신 대기업들이 이동통신 관련 개인정보 관리에 소홀했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명의도용 개통 사건이 발생한 것”이라며 “당시 피해자들이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고 상당한 심리적 충격 및 고통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통신사들은 통신요금 추심에 관해서는 신용정보사의 영역일 뿐 이동통신사와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통신사가 채권 추심을 할 때 신용정보사에 위탁해 빚을 받아낼 경우 그 성과에 따라 수익을 나누는 구조여서 이동통신사에 불법추심 책임이 없다고 보기 어렵다. 통신사들은 신용정보사와의 채권 추심 계약관계에 대해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에 대해서는 2016년 대법원이 통신사의 손을 들어주며 결국 그 연체금은 사기 피해자들 몫이 됐다. 서민민생대책위원회는 통신사기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고 지금까지 그 피해자가 20만 명에 달하는데 이들이 자신의 몫이 아닌 채무에 대해서 고통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통신사 관계자는 “통신 판매점 J 사가 다단계 사기꾼이었고, 피해자들도 명의 도용인 것을 알면서도 신분증을 허위로 제공했다. 통신사들은 정해진 것에 따라 추심하고 일부 부적절한 건에 대해서는 위자료를 지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순환 서민민생대책위원회 사무총장은 “사기 피해자들이 자기 빚도 아닌 것을 갚게 된 게 안타깝다”며 “그래도 이번 판결이 채무부존재 소송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부당한 추심을 안 받아도 된다는 첫 판례가 돼 많은 서민 채무자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금재은 기자 silo123@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