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편요금제 도입 불가피…통신비 원가 공개도 앞둬
정부가 보편요금제 입법화에 박차를 가하는 등 통신 요금 인하 압박에 나서면서 이동통신사들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 연합뉴스.
현 정부가 가계통신비 절감을 핵심 국정과제 중 하나로 삼으면서 통신요금 인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 1년간 ▲선택약정할인율 20%에서 25%로 상향 조정 ▲취약계층 요금감면 확대·시행 ▲해외 로밍 요금 인하 ▲자급제 단말기 출시 확대 ▲선택약정 위약금 제도 개선 ▲유심(USIM) 가격 인하 정책 등을 펼치며 통신비 인하에 나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지난해 통신비 절감을 위해 SK텔레콤·KT·LG유플러스 3사의 최고경영자들과 회동을 추진하면서 전방위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최근엔 ‘음성 200분, 데이터 1기가바이트(GB)를 월 2만 원대에 제공’하는 ‘보편요금제’ 내용을 담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 국회로 넘어가면서 압박 수위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국정기획위원회에 따르면 보편요금제 도입에 따른 통신비 인하 효과는 2조 2000억 원이다. 정부의 통신비 절감 대책으로 나타날 최대 4조 6000억 원 인하 효과의 절반에 해당한다. 지난 6·13 지방·재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압승을 거두면서 보편요금제 입법화가 큰 무리 없이 진행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기도 한다. 더욱이 대부분 국민이 보편요금제 도입에 찬성하고 있어 야당이 무작정 반대하기 힘들 것으로 예상된다.
통신업계는 정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 수익성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이통사들은 올 1분기 영업이익이 일제히 하락했다. 지난해 동기 대비 SK텔레콤은 20.7%, LG유플러스와 KT는 각각 7.5%, 4.8%씩 영업이익이 떨어졌다. 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통신비 인하 압박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선택약정 할인율 향상과 취약계층 요금 할인 시행 등으로 수익이 더욱 악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대법원 판결에 따라 통신비 원가자료를 공개키로 결정했다. 사진은 지난 4월 이동통신요금 원가 공개 확정 판결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는 시민단체 모습. 연합뉴스.
최근 5세대(5G) 주파수 경매가 합리적인(?) 가격에 마무리되면서 이통사들은 정부의 요금 인하 압박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통사들은 그동안 재무구조 상황에 큰 변동을 줄 수 있는 주파수 경매를 앞두고, 요금제 인하·할인 정책 등에 대한 검토는 어렵다는 입장을 내세웠다. 하지만 지난 18일 5G 주파수 3.5기가헤르츠(㎓)와 28㎓의 대역폭 경매가 총 3조 6183억 원에 낙찰되면서 통신사간 출혈경쟁은 빚어지지 않은 것으로 평가된다. 당초 시장은 낙찰가가 4조 원을 훌쩍 뛰어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6월 말 통신비 원가 자료가 공개되면 이통사들은 더욱 수세에 몰릴 것으로 보인다. 과기정통부는 2세대(2G)·3세대(3G) 통신비 원가자료는 물론 4세대 롱텀에볼루션(4G LTE) 통신비 원가자료까지 공개키로 결정했다. 지난 5월 시민단체가 새로 접수한 4G 원가 정보 공개 청구서를 지난 4월 대법원 판결대로 처리키로 한 것. 특히 영업통계 보고서에 기재된 ‘원가보상률’은 이통사들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해당 수치는 일정 기간 동안의 매출을 원가로 나눈 값으로 통신비 인하 여력을 보여줄 수 있다. 원가보상률이 100%를 넘으면 통신비가 원가보다 높다는 의미다. 3G의 경우 2009년부터 100%를 뛰어넘었으며 4G 원가보상률 추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12일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 정부의 통신요금 인하 조치로 SK텔레콤과 KT의 이동통신 매출은 올해 3~4%, 내년 2% 수준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보편요금제가 도입될 경우 이통사 매출은 5~10%까지 감소할 수 있으며, 영업이익은 마케팅 비용을 10~15% 줄인다 해도 SK텔레콤이 29~52%, KT는 23~41%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통신업계는 통신비가 시장 자율경쟁으로 인하돼야 한다고 반박한다. 통신업계 다른 관계자는 “통신비는 시장 수급에 따라 자연스레 책정돼야 시장경제도 활성화되고 산업도 발전하는 선순환이 나타날 수 있다”며 “정부가 좀 더 합리적인 판단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시민사회단체는 통신비를 시장논리로 풀어선 안 된다고 주장한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 소장은 “통신서비스는 공공재적 성격을 띠고 있을 뿐 아니라 정부 허가를 받고 3개 사업자만 운용하는 사업이므로 시장경쟁 체제로 움직인다고 볼 수 없다”며 “최근 정부 정책으로 이통사 수익이 조금 줄어들 순 있으나 최근 5G 투자 등을 고려하면 결코 영업에 악영향을 끼칠 수준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지난해 이통사 3사의 총 매출액은 전년 대비 3.7% 증가한 53조 1867억 원, 영업이익은 0.4% 상승한 3조 7386억 원을 기록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매출액 17조 5200억 원, 영업이익 1조 5366억 원을 기록했다. KT는 23조 3873억 원의 매출액과 1조 3757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했으며 LG유플러스는 12조 2794억 원의 매출액과 8263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이통사들은 수익이 악화됐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조 단위의 영업이익을 거두었다.
이성진 기자 reveal@ilyo.co.kr
‘저렴한 가격 무색’ 알뜰폰 사업자 어쩌나 이동통신사(이통사)의 저가요금제 출시와 보편요금제 도입 가속화로 알뜰폰 사업자들의 입지가 줄어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통사들의 요금이 낮아지면 알뜰폰의 경쟁력으로 꼽힌 ‘저렴한 가격’이 무색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에 따르면 알뜰폰 가입자는 현재 약 700만 명으로, 보편요금제 도입 시 100만~150만 명이 대거 이탈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알뜰폰 사업자들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이통사의 망을 빌려 쓰는 대가로 지불하는 ‘도매대가’를 낮춰야만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지난해 알뜰폰 도매대가 인하 비율은 7.2%포인트에 그쳤다. 당초 목표했던 10%포인트에 못 미친 것이다. 김연학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알뜰폰 사업자가 지금의 위기를 타개하는 방안은 도매대가 인하”라면서도 “그러나 이통사들은 수익 악화를 우려해 이를 무조건 낮춰주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올해 도매대가 인하를 위해 이통사들과 벌써 두 달간 지속적으로 협의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성] |